Thoughts2012. 10. 19. 23:08

최근들어서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하게 사는 것인가.

행복이 아닌 다른 것을 좇아 가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행복을 추구하지만 생활고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사람과

행복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행복하게 살고 싶지만 그걸 찾을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행복한가.

임성민 아나운서의 강연100도에서의 스피치를 보고

행복하지 못한 삶이 어떻게 사람을 힘들게 하는지

그리고 결과적으로 행복이란 것을 찾기 위해

몸을 던지는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우연히 다가온 기회를 잡은 전직 아이돌가수 출신의 강사도 그렇다.

그는 자신에게 드러난 새로운 길을 걷기 위해

주저하지 않고 자신을 던졌다.

 

그리고 행복한 길을 걷고 있다는 그들의 말에 담겨있는

공통적인 메시지가 있다.

 

주저하지 말자.

두려워하지 말자.

과감히 자신을 던지고

온 힘을 다해 행복한 삶을 살아가자.

 

생각해보면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사는 한 길을 사는 것.

그게 행복하게 사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지 싶다.

 

 

Posted by Cybercat
Movie2012. 10. 2. 03:07

  오늘은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왔다. 영화관 입장때부터 A열부터 끝까지 가득 차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배경으로한 픽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적 허구와 역사 그 자체가 가지는 사실의 간극이 너무 큰 게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픽션이 현실인 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도 한심스럽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영화적 허구는 허구이니 재미로 볼 수 있는 것은 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광해를 이 때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걸까.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했던걸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관람후에는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영화가 던져주는 감동에 젖어 있었을 정도니까.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 던져주는 한 단서로부터 시작된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광해군을 꼭 닮은 광대. 그리고 그가 그를 대신해서 정사를 펼친다. '정치'가 가져다주는 더러운 현실로부터 광해군의 대역은 한 편으로는 절망하고 한 편으로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영화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광해는 사대주의에 저항한 유일한 군왕이며 신민들을 위해 과단한 결단을 내린 몇 안되는 개혁가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개혁적 발로는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적인 정치이데올로기를 가진 우리가 광해군을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바라고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어쩐지 두렵게 느껴진다. 유시민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직 우리는 근대적 왕정제에 익숙한 사고를 하는 존재다. 이미 절차적(형식)민주주의가 여느 선진국보다도 확고히 보장되어있는 나라이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대통령을 말할 때 '왕'을 대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이와 같은 역사적 허구를 다루는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투영이 된다. 이 시대에는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정치적 분열을 통합시키고 신민들을 이롭게 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왕이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의 뜻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취합되고 고찰된 뒤 현실에 반영되는 민중 정치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이런 영화를 통해 '역시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어야 해'라는, 조선시대사극으로부터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최정점인 대통령에 대한 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건 왠지 경계하고 싶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정치적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개선의 요구, 그리고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너무 오바하지는 말자...)

 

 영화의 깊이는 영화가 제작되는 현실이 얼마나 적절히 녹아들어가 있느냐에 따라서도 결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적 허구를 통해 관객들은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욕구를 해소하며, 더러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9월 개봉작인 '간첩'과 '광해-왕이 된 남자'는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느끼는 정치-경제적 박탈감을 적절히 녹여낸 수작들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간첩'에서는 자본에 물들은 우리네 모습과 시대착오적인 '간첩'이란 소재의 정치적 개그가,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는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바램이 투영되어있다. 우리가 이 영화들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던 건 이런 깊이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2. 9. 26. 03:07

  

 

 

 오늘은 황장엽이 '남한에 5만의 간첩이 있다'고 한 것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영화 "간첩"을 보고 왔다. 올해는 대선도 있고 안그래도 시대착오적 반공주의자들 덕분에 애먼 시민들 간첩소리 들었던게 몇 년 전 이야기인데, 참 민감한 시기에 이런 영화가 개봉되나 했었다. 그래서 보나마나 그런 사람들 간지러운데 긁어주는 영화려니 했었기에 9월달에 볼 영화 리스트에선 제외시켰던 영화였다. 하지만 역시 편견은 금물. "광해"가 은근 매진행렬이었던지라 차선책으로 "간첩"을 선택했던건데, 보고나서는 "아, 정말 재미있었다. 한 번 더 봐도 괜찮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보는 내내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나왔고, 액션장면에서는 다들 팝콘 씹는 일도 없이 집중하게 될 정도로 몰입도가 상당한 영화였다.

 

 사실 영화를 보면서 어쩌면 보기 불편한 장면들이 나오지 않을까 내심 마음의 방어를 하면서 봤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의외의 시니컬함을 내포하고 있었을 줄이야. 영화 전반적으로 간첩들의 대사는 남한의 경제적 어려움에서 오는 투덜거림, 그리고 소위 "좌빨들이 수꼴이라 부르는 자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이었는데, 잘 생각해보니 그런 말들을 북한간첩들이 하고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게 아닌가. 한우를 애지중지 키우는 간첩이 미국산 쇠고기를 먹는걸 반대하고 한미FTA를 반대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인터넷검색만 하면 웬만한 내용은 다 검색이 되는 시대에 간첩이 할 일이 없다면서 '박정희때가 좋았지'하며 너털웃음을 짓는 노인 간첩의 아련한 추억은 소위 수꼴이라 불리는 자들의 내러티브를 대놓고 비꼬는 장면이다. 아니 어쩌면 양측을 모두 비꼰게 아닐까. (아니면 내가 배배꼬아서 생각한 나머지 잘못판단한걸까.)

 

 어쩌면 감독은 평범한 시민들이 간첩소릴 들었던 것을 가지고 진짜 그들이 간첩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으로 제작했던 것 같다. 솔직히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이 해봤자 얼마나 하겠으며, 웬만한 정보가 인터넷에 도는 마당에 간첩질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말도 안되는 소리로 영화를 만드니 이런 재미있는 영화적 현실이 펼쳐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웃음을 전달해준다. 웬만하면 나쁘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는 나조차도 '참 재미있게 봤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괜찮았던 영화였다. 간첩이란 제목에 껄끄러움을 느꼈던 분들에게도 추천해본다. 액션장면도 상당히 좋다. 총격전에선 히트를, 격투전에서는 본 시리즈를 연상케 했을 정도니. (카메라 워크는 그런쪽은 아니지만.) 아니, 내 평가보다 여기 출연하는 명배우들의 라인업만 봐도 이 영화는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이지 않을까.

 

 

 

'간첩신고 보다 무서운 건 물가상승?'

전세값에 쫓기고, 복비 10만원에 목매고, 소 키우기 바쁜 사람들이 간첩이란다. 어제까지 내 이웃, 동료, 가족으로 평범하게 살아온 이들에게 북의 지령이 내려진다. 먹고 살기 바쁜데 지령수행까지 해야 할 판이다. 한동안 끊긴 지령으로 본인의 간첩인지도 잊고 사는 이들의 좌충우돌 이중 첩보생활이 시작된다.

영화 '간첩'은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어둡고 비장한 간첩의 이미지를 벗어나 먹고 살기도 바쁜 생활형 간첩들의 사상 초월 이중 작전을 그린 리얼 첩보극을 그렸다.

최근 '연가시'로 흥행배우 대열에 합류한 배우 김명민은 이번 영화로 2연속 흥행을 노린다.김명민은 극중 머리 회전이 빠르고 말솜씨가 탁월한 암호명 '김과장' 역을 맡았다. 간첩들의 리더로 타고난 재주를 발휘 비아그라 밀수와 불법판매를 하며 가족들을 부양하는 인물을 표현한다.

전작에서 보여준 '캐릭터 맞춤 몸연기'는 없지만 김명민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편안한 생활 연기가 묻어나는 캐릭터다.

전작 '왕의남자', '전우치', '부당거래' 등 다양한 장르의 영화에서 개성강한 연기를 보여준 배우 유해진은 영화에서 먹고 살기 바쁜 이들에게 지령을 전달하러 내려온 북한 최고의 암살자로 암호명 '최부장'으로 등장해 세련되면서도 강렬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이 영화의 홍일점인 배우 염정아는 지도 파악 능력을 살려 부동산 중개인으로 밥벌이를 하고 있는 암호명 '강대리' 역을, 변희봉은 북에서 맨손으로 헤엄쳐 내려온 간첩계의 산증인인 암호명 '윤고문' 역으로 극의 흥미를 더한다.

이번 영화로 첫 스크린 데뷔에 오른 정겨운은 뛰어난 해킹 실력을 갖췄으나 남파 후 귀농을 선택해 소를 키우며 FTA 반대 시위에 앞장서는 '우대리' 역으로 변한다.

우민호 감독은 "대중들에게 두려운 존재로만 인식되고 있는 간첩들이 남북 관계가 원만해진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작품을 구상했다며 "간첩들도 사람이고, 아버지고, 어머니고, 노인이고, 청년이며 우리와 똑같이 고민하고 살아가는 인간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영화 제작의도를 밝혔다.

간첩의 틀을 파괴한 러얼 첩보극 영화 '간첩'은 추석 개봉예정이다.

 

 

 

- Youtube 노컷뉴스 영상에 등록된 내용

 

p.s. "간첩 화이팅!이라니"...ㅋㅋㅋ

 

p.s. 2. 생각해보니...오늘 트윗에서 배우 변희봉님의 성함을 변희재라고 썼었구나. 아...이게 무슨 망신이냐...ㅠ.ㅠ 죄송합니다. 그나저나...변희재...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

 

 

 

다음 기대작인 007스카이폴. 오래전부터 007시리즈 팬이었기에 사람들이 아무리 007시리즈를 별로라고 해도 나는 꼭 본다.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2. 9. 23. 13:50

 

구글링으로 사과 사진을 찾아보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색이 진한 사과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먹었던 사과는 위의 사과처럼 붉은 빛이 덜하고 당도가 낙과한 것이더라도 매우 달았다.
물론 그 중에는 신맛만 가득한 것도 있었지만...항상 큰집에서 공수해왔던 사과.
이제는 시장 가서 꼭 사서 먹는 과일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가을 태풍으로 낙과를 판매하고자 하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상품가치가 없는 낙과를 제외하면 내다팔 것이 없을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안그래도 가을태풍 지나고 다가오는 추석 즈음에는 농산물소비자가가 턱도 없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공급도 부족하고, 고가의 제수음식을 피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지갑상태가 겹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힘든 가을이 되지 싶다.

  내가 어렸을 때 문경 큰집에서는 과수원을 했다. 기억에는 사과나무만 끝없이 넓은 과수원에 백여그루 이상 있었던 것 같다. 이 정도 되면 다들 그 달고 맛있는 최상급 문경사과를 원없이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나를 부러워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추석을 지내고 오면 우리집엔 낙과한 사과, 상품가치가 없는 사과들만 쌀푸대 하나 가득했다. 간혹가다 심하게 멍울지지 않은 녀석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깎아먹기도 뭐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골에 갔을 때 조차도 소반에 나오는 건 상품가치 없는 녀석을 골라서 접시에 담은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사과맛을 알아왔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우리 큰집은 문경에 있고 큰 과수원에서 사과를 매년 가을마다 전해준다고 자랑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던가. 나는 친구 녀석이 간식거리로 가져온 최상급 경북능금을 입에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껍질 채로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진 그 놀라운 달콤함과 진한 향기는 이제까지 내가 먹어왔던 그런 사과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속이 상했다. 왜 나는 과수원을 하시는 큰아버지한테 이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는거였을까.

  그 해 가을, 시골에 내려가서 나는 처음으로 투정을 부렸다. 왜 항상 다 떨어진 사과만 주냐고. 은근 다혈질인 큰어머니는 특상품 먹고 싶으면 돈내고 먹으라고 농담반 진담반 툭 던지셨다. 잠시 후, 큰아버지는 조용히 내다팔려던 사과를 가지고 오셨다. 친구가 줬던 사과맛보다 더 달고 향이 진했다. 어디서 냄새를 맡고 왔는지 꿀벌이 날아와 쪼개놓은 사과 반쪽에 앉았다.

  나이가 든 이제사 안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농촌의 부가사업거리라고는 정부가 추천해주는 것들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벼농사만으로는 조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네 자녀를 부양하기 힘들었던 큰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착굴됐던 탄광에서도, 과수원에서도 눈코뜰새 없이 일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다 나는 왜 낙과한 사과만 주냐고 투덜거렸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다녀오면 매일같이 사과를 깎아주시다가 보름쯤 지나면 달콤한 사과잼을 만들어 주셨었다. 우유식빵 두 장 사이로 듬뿍 발라주시던 사과잼, 그 향긋함. 이제는 그때처럼 사과를 먹을 일이 없다. 연로하신 큰아버지는 십수년전 과수원을 그만 두시고 큰어머니와 함께 문경특산 오미자 한과사업을 벌여서 수억원대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따금 사과대신 한과를 올려보내시지만 우리집은 꼭 사서 가지고 온다. 그 수고를 이제는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23. 02:18

 

 

 

 

오늘은 <덕수궁프로젝트> - 덕수궁미술관전을 보고 왔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가을 날씨를 지금 아니면 만끽하기 힘들기에, 조금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하던 차에 알게 된, 정말 괜찮은 현대미술전시회다. 가슴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이 곳 경운궁(덕수궁)에서 작가들의 역사적 상상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가를 초점으로 관람하면 더욱 이해하기 쉬운 전시회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 번에 몰아서 보게 되었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 봐야하는 비디오아트, 설치미술을 감상할 때는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내가 예술적 시각이 충만하다면 한 번만 봐도 느낌이 올텐데 왠지 모르게 최근에는 그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작품당 5분 정도는 들이고 있다. 이런 태도는 사진을 볼 때 참 유용하고 좋다.

 

안 좋은 습관이 든 건 딱 하나, 감상을 노트하지 않는 습관이랄까. 글로 표현해낸다는게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진 게 언제였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다음부터는 조금씩이라도 기록을 해야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관람객중 하나가 보여줬던 건데, 입장시 받을 수 있는 브로셔를 노트로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되어있고 하니 조금 더 깊이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가장 인상깊게 봤던 건 서도호 작가의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이란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모이는 바람에 전부를 감상하지를 못했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영두 퍼포머가 검은 보료 세 채 위에서 취하는 모든 몸사위가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에서 군주의 신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고종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불안"[각주:1]을 표현해준다.

 

여기서 작품 감상 전부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배경과 오버랩되는 이들 작품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아마 이 곳에 오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리라. 단지 가슴아픈 역사라고만 해놓고 어딘가 자신의 기억속 한 켠에 처박아두고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 과거야 어찌됐던 상관없다는 태도로 살아온게 지난 수십여년간의 우리들의 삶 아니었던가. 이제는 이렇게 예술로도 재발견되고, 역사적으로도 재발견된다는 것이 적잖이 큰 위로가 된다.

 

수준급의 예술 작품들이다. 그 의의를 찾아내는데는 평범한 관람객으로서는 알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잠시간 머무르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에 대한 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가족단위로 찾아온 분들이 꽤 됐었는데, 여전히 자녀들이 여기저기 시끄럽게 뛰어다니도록 내버려두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도 할 말은 없다. 직원에게 제지받을 때까지 전화를 받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조심해야겠다.



 

 

 

노란 불빛이 보이는 곳은 석어전. 이수경 작가의 <눈물>, 김영석 작가의 <Better Days>를 만나볼 수 있다. 건너편으로 덕흥전이 보인다. 하지훈 작가가 <자리>라는 작품으로 이 곳에서 벌어진 변형과 왜곡을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전각에서 펼쳐지는 설치예술품들은 직접 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밖에 나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말을 맞이해서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 역시 밤9시까지 개장하는 곳인지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오늘은 전통음악콘서트가 개최되는 날이었던지라 나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계속 입장하고 있었을 정도.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깊이있게 감상하고 가야겠다. 오랜만에 카메라에 필름도 로딩해서 가봐야겠다.

 

 

 

 

 

  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프로젝트" 안내서 中 1. 서도호, 함녕전,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을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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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21. 02:35

 오늘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종로로 향했다. 최근에는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잡곡밥을 챙겨먹는다. 흰쌀밥보다 훨씬 맛있고 좋다. 식사를 하고 나니 어제부터 시작한 일 때문에 홈페이지 제작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형으로부터 전화. 아무래도 제대로 일이 시작되려면 다함께 모여서 준비를 해야지 안그러면 일 자체가 붕 떠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오후 4시경에 광화문역 도착. 이제는 익숙하다. 핸드폰 배터리가 50%가량 남아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 곳에서 필리핀산 치키타바나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 5시까지 지난 번에 샀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를 읽었다. 확실히 지도가 없이 역사책을 본다는게 조금은 벅차다. 그리고 이제까지 알던 서양고대사-중세사의 개략이 이제는 가물가물한게 문제. 책 중반으로 갈 수록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필리핀산 치키타 바나나. 크리미하고 향이 진해서 좋다. 누가 여기서 바나나를 시켜먹냐고 그러는데, 사실 향취가 제대로 된 녀석을 마트에서 골라먹는게 쉬운일이 아니란 걸 생각한다면, 1,200원 들여서 여기서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마호메트와 사를마뉴"를 보면서 참고했던 게르만족의 로마제국침략도. 훈족의 서진만 없었다면 아마 로마는 멸망하지 않고 오래토록 지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5시가 지나서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미처 보지 못한 "열도의 아리랑" 제2부 - 니시키에로 보는 근대 일본의 왜곡된 시선을 관람했다. 니시키에란 비단을 이용한 다색판화. 생산성이 좋아서 그림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이 배포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일제는 적극적으로 조선반도는 원래 일본땅이라는 허구의 역사를 일본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일제에 저항하는 모든 것에 대해 증오심을 갖게 했다. 신화속의 존재인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벌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제물포조약의 빌미가 되었던 임오군란의 왜곡, 러일전쟁의 왜곡 및 한반도내 모든 전쟁에서 조선인의 피해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등 니시키에는 일제의 프로파간다를 대중들에게 심어주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였다. 가장 놀랐던 부분은 화투와 비슷한 카드게임, 그리고 주사위보드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에게까지 일제는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대한제국과도 전쟁중이라는 인식을 보편화시키는데 일제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강덕상 재일역사학자가 평생에 걸쳐 모은 니시키에를 한데 모아서 어떻게 그들이 어떻게 역사왜곡을 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니시키에를 전부 보고나서 바로 옆의 제1전시관의 영상관으로 들어가 강덕상 선생님의 다큐를 다시 한 번 시청했다. "일본의 천황제는 조선을 무시하지 않는 한 존속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낮시간에는 이 곳에 견학을 온 학생들, 50년대의 장년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와서 이 전시회를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 그 중 일본인과 함께 온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조용했던 터라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함께 있는 한국인도 한국근대사를 이렇다하게 일본어로 전달하기 힘들었던게 아닐까. "한국인들에게 이 시기의 일본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서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 강덕상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것은 다 이러한 역사적 왜곡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나오는 길에 관동대지진에 관련된 부분을 사진찍어왔다. 이번에 읽는 책을 완독하고 나서 관동대지진과 대학살사건에 대한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물론 강덕상 선생님이 쓰신 책도.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근처의 경희궁으로 갔다. 저녁 늦게까지 개장하는 몇 안되는 고궁중 하나다. 이날 뮤지컬을 하는 것 같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희궁은 일제시절 많이 파괴되어서 지금 남아있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경희궁에서 나와 덕수궁으로 갔다. 사진은 덕수궁의 입구인 대한문. 대한제국의 역사가 서린 유서깊은 곳이다. 내부에서는 너무 어두워서 사진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덕수궁의 역사는 대한제국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덕수궁 주변에는 당시 서구열강들의 대사관들이 있었고, 고종은 영국인 Harding의 설계로 석조전을 건축했다. 이후에 이 곳은 미술관으로 전용되었고 지금도 서쪽 건물은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덕수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창 미술전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봤던 것은 류재하 작가의 중화전을 캔버스로 한 <시간>이란 작품과 이수경 작가의 설치미술인 <눈물>(석어당)이었다. 저녁 늦게 정신없이 왔던 터라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덕수궁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역사정신표현은 한국인이라면 가슴 절절히 전달되고도 남을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운이 좋았던게 덕수궁 풍류전이 개최되는 날이었다. 이날 이벤트는 고종이 커피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한 정관헌에서 개최되었는데, 마침 경기민요 무형문화재인 이춘희 선생님의 창부타령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이춘희 명창을 보게 될 줄이야!

 

 

돌아오는 길에 태극당에 들러 친구가 부탁한 카스테라와 파운드케익을 샀다. 매우 장사하기 싫은 표정의 점원이 참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오랜만에 301번을 타고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먹을까 했었는데 일단은 배가 고파서 근처 분식집에서 오징어 덮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밖에서 먹는 음식들 양이 많게 느껴진다. 오늘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이러니 참...

 

종로에는 참 볼 것이 많다. 우리나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에 그저 그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오늘 이렇게 수확한 것이 많아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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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Movie2012. 9. 19. 04:25

 

 

 어제는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를 보고 왔다. 역시 논란이 될 만한 그의 작품. 첫 시작부터 껄끄러운 장면들로부터 시작하는 그의 영화는 친숙해지기 힘들다. 간단히 말해 두 번 이상 보기가 힘든 영화라 해야할까. 돈이 사람을 파괴하는 과정, 돈때문에 자멸해가는 인간의 세계가 2시간 동안 그려진다. 칼 맑스가 생각났다. 자본에 의한 철저한 인간소외. 자본 앞에서는 모두가 가해자이자 피해자이다. 돈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 증오, 분노, 복수 그 모든 것이라는 극중 대사가 소름끼치도록 공감되었던 건 대학수업때 들었던 자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있었던 수업 이후 처음이었다. 이 영화는 유일하게 내가 본 김기덕 감독 작품 가운데 카타르시스란 것을 느껴본 작품이다.

 

 극 중 등장하는 사람들 중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다들 죽은 자들과 다름없는 어두운 삶을 살아간다. 그런 이면에 모정을 가장한 복수의 화신이 등장하고 고리대금업으로 사람들을 쥐어짜던 고아인 주인공은 어머니를 찾았다는 기쁨에 구원을 얻는 듯 하다.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스토리가 진행되지만, 이 영화는 비극이다. 주인공은 어미인줄 알았던 자가 사실은 자신을 가장 비참하게 만든 복수의 화신이었음을 알고 죽음을 택한다. 그렇게 이 극에 등장하는 이들은 지옥같은 자본의 소외로부터 구원을 얻는다. 극중 자주 등장하는 교회 건물 배경은 이처럼 바닥인생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구원이란 어떤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바닥으로는 다가오지 않는 복음.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의 울부짖음. 그리고 일개 정치인의 야욕에 의해 복구된 청계천에 얽힌 사람들의 마지막 인생. 우리가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알고 싶지 않았던 세계를 김기덕감독은 여과없이 있는 그대로,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그려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의 탄성에는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에 대한 놀라움과 공포가 담겨있었다. 아마 다들 이 영화가 황금사자상을 받았기 때문에 호기심에 와서 봤으리라. 낮시간에 영화를 볼 만큼 한가하고 넉넉한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세상은 결코 알려지지도, 비춰지지도 않았었을테니.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고나서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쩌면 그들보다도 내가 더 놀라고 힘들어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두 번은 못볼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여운이 너무 강하게 남아 다음 영화로 쉽게 넘어가질 못하겠다.

 

 

 

 

이제는 착실하게 포인트를 모아서 VIP도 되고 영화적 식견도 쌓아가봐야겠다. 이제까지 너무 남는 것 없이 그냥 넋놓고 즐기기만 했던 것 같다.

 

 

 

언제나처럼 스타벅스에서 얼 그레이 한 잔. 오늘은 새로운 파트너가 응대를 했다. 말이 참 느려서 신기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한 시간 정도 오랜만에 스케쥴러에다 끄적거리면서 앞으로 월급을 타면 어떻게 할 지 곰곰히 고민을 했다. 물론 이를 위해서 성실하게 일을 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들어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인지 모르겠다. 내일은 꼭 체중계 건전지를 사야지 안그러면 체중관리, 체력관리가 하나도 안될 것 같다.

그나마 최근에 꾸준히 걸어서 그 날 먹은 만큼은 움직여주는 것 같다. 가까운 강남보다 종로쪽이 훨씬 많이 걸으면서 볼 게 많다. 영화를 보는 날 말고는 그냥 5호선 타고 종로로 나가있는게 내 건강에 훨씬 좋지 않을까.

 

 

오늘은 그래도 영화를 봐야지 했었다. 하지만 너무 늦게 외출한 탓에 귀가시간 전에 끝나는 영화시간에 맞추지를 못했다. 앞으로도 영화를 꾸준히 볼 계획이라 메가박스 멤버십카드를 발급받고 반디앤루니스로 향했다. 거기 가면서 이제까지 연락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돌리고 언제나처럼 내 발길이 머무는 서양사코너에서 어물쩡거리기를 삼십여분. 결국 몇 개월째 집어들지 못했던 앙리 피렌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라는 책을 샀다. 서양중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서양의 중세가 시작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에 대한 답변이 이 책에 담겨있으리라. 대학4년내내 집중해왔던 서양중세사였건만 졸업한지 한참 지난 지금에는 중요 연대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을 발견한 것은 오래 전 책 속에 몰래 끼워놓은 만원을 찾아낸 기쁨이랄까. 생각같아서는 밤새서 다 읽어치우고 싶지만 벌써 새벽 네시 반이 다 되어간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15. 02:19

 오늘은 예정했던대로 서울역사박물관 815광복절기념 특별기획전시중인 "열도속의 아리랑"전을 보고 왔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새문안교회방향으로 약 1km도 안되는 거리에 위차한 서울역사박물관. 예전에 외국친구와 함께 서울의 역사를 간략히 보러 왔다가 방대한 자료량에 그만 3시간을 넘게 배회했던 기억이 있었던, 스케일이 상당한 박물관이다. 아니나다를까, 일본어를 할 줄 알기에 준비되었던 사료들에 담긴 일본어자료까지 꼼꼼히 살펴보다 기획전1실만 보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그렇듯 눈대중으로 보고 넘어간다면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한 스케일이리라. 하지만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박물관은 원래 사진촬영이 안되는 곳인지라 오늘 올릴 사진자료는 없다. 그 대신에 브로셔 자료를 촬영해 올린다.

 

 

 

 

 

 

 

 오늘 내가 보고 온 건 Part1 '재일동포 백년의 꿈'이었다. 브로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1. 식민지 국민으로, 2. 타향살이, 3. 차별철폐를 위하여, 4. 언제나 마음은 고향에, 5. 역경을 딛고, 6. 영상관 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에 쉽게 보고 넘어갈 수 없었다. 특히 여섯번째 영상관에서 나오는 재일역사학자가 출연하는 다큐는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 생각해보니...스마트폰으로 노트를 쓸 걸 그랬다. ㅠ.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일본정부가 재일동포들의 귀국을 막고, 이승만정부가 무시했다는 부분이었다. 그게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입북하게 된 원인이었다니...그들은 고국을 그리며 수많은 차별과 냉대를 겪으며 밑바닥 생활을 했건만, 고국은 그들을 무시했다니...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고교 역사시간때 들었던 관동대지진사건에 대해 오늘은 자세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五十円十五銭」(고쥬엔쥬고센). 관동대지진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할 때 조선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말. "조선인을 구분하는 법"이란 일제가 발행했던 자료 중엔 "조선인들은 반탁음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란 내용이 있는데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코쥬엔쥬코센이라고 발음했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서 자경단원들은 아무 죄 없는 6000여명의 조선인들을 학살했고(그나마도 제대로 조사된 수치가 아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재일미대사관직원은 "일본 정부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다. 이런 일본은 야만의 나라임이 분명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직도 전시관 내에 흘러나오던 당시의 가요들, 영상관 다큐에 출연하던 강덕상 선생님의 아리랑이 귀에 선하다. 천천히 돌다 보면 장군의 아들에서 학생들이 합창하는 봉선화도 흘러나온다.

 

 

 

TBS방송에서 소개된 "재일동포 100년사 - 열도속의 아리랑" 영상

 

 

 

"그때를 아십니까"영상에 삽입된 "봉선화", 보고있노라니 화장품 이야기로 흘러간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다녀오신 분이 영상으로 만드신 이번 전시회의 대강

음악은...음...그렇다 치더라도 꼼꼼하게 제작된지라 소개해둔다.

 

Youtube에 검색해보니 "장군의 아들"을 항시 상영해준다.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youtu.be/EidX2DPPSBw

 

연합뉴스 관련자료는 다음과 같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10/0200000000AKR20120810157900005.HTML?did=1179m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님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http://blog.daum.net/mchjun/1438

 

 니시키에(다색판화)로 보는 근대일본의 왜곡된 시선은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질 못했다. 내일이라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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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Movie2012. 9. 14. 02:27

 

 

 

2012. 09. 13. at Megabox Coex. iPhone4. edited on Path.

 

Resident Evil: Retribution과 Bourne Legacy 두 편을 연달아 보고 왔다. 보통 한 편만 보고 차를 마시며 놀다가 귀가하는게 보통이건만, 오늘따라 연달아 두 편을 보고 말았다.

 

Resident Evil은 Bourne Legacy에 비해 짧은 런타임. 예상대로 화끈한 액션에 3D에 최적화된 영상을 보여줬다. 전작에서 이미 3D액션영화로서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기에 이번에도 영화의 퀄리티에 대해 걱정할 것 없이 맘편하게 시청했다. 출연진이 가장 맘에 들었는데, 그 중 주목해야 할 배우는 미셸 로드리게스. 이미 밀리터리영화 매니아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여전사가 다시 등장한다. 액션영화치고는 풍부한 상상력과 제법 탄탄한 스토리라인이 괜찮았다.

 

Bourne Legacy는 메가박스 앱 상의 영화평에서 평가가 극도로 갈렸던 작품. 그래서 호기심에 연달아 보게 되었다. 다 보고나서는 '아, 이래서 사람들의 평가가 갈리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한줄평가처럼 전작의 외전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을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는 액션장면은 전작에 못지않게 화려하고 강렬했다. 하지만 뭔가 기운빠지는 느낌이었달까. 마지막에 본 시리즈의 테마가 흘러나올때 극장내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더 이야기 하면 스포일러가 되니 그만.

 

나오는 길에 느낀건데, Taken2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큰 것 같다. 선거철 들어와서 연일 터져나오는 성폭행 살인사건. 이에 지친 한국인들의 마음을 위로해줄 딸바보아빠 이야기. 과거 향수에 젖어 자식들에게 70년대를 물려주고 싶은 아빠들하고는 다른 정말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온몸던지는 아빠들이 그리운게 아닐까.

 

다음 달에는 노라 존스도 오고, 참 가을 답다는 생각이 든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6. 22. 21:41

1. 여행은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다. 여행이야말로 고뇌하는 젊은이에게 해결책을 주며, 견문을 넓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는 좋은 선생님이다. 나이든 이, 허약해진 이들에게는 일상에 찌든 삶을 잠시 멈추고 한숨 돌리게 함으로서 새로이 힘을 얻게 하는 명의(名醫)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서로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눈을 가리운 큐피트이며, 헤어짐의 아픔을 지니고 떠난 이에게는 누구보다도 가장 따스한 위로를 해주는 좋은 카운셀러다. 이런 좋은 친구를 항상 가까이 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소위 기성(旣成)세대의 구태의연한 삶의 태도를 답습해가는 세상의 99%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역동적으로 인생의 주인되는 삶, 주어진 귀한 생명을 바르게 경영해가는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2. 그래서 사람들은 떠난다. 매 순간마다 그들은 프론티어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몇박 며칠의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그 동안 여행이란 친구가 그들에게 말해준 지혜는 가까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번 더 풍성한 삶의 단계로 끌어 올려준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공기, 새로운 빛. 그 가운데서 호흡하면 호흡할 수록 사람의 내면은 마치 초봄에 내리는 단비를 머금으며 돋아나는 새싹처럼 다시 새로이 갱생된다. 그렇기에 여행하는 사람의 인생은 여행하기 전과 후가 다를 수 밖에 없을게다.

 

3. 내게도 이번 부산여행은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본디 어디론가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을 사랑하던 내가 수년간 책만 죽도록 파고 들었으니 병이 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곤핍해있던 나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도 꾸준히 다녔어야 했던걸까. 4월 오사카 여행으로 몸살이 나 5월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사카에서 얻었던 좋은 기운들로 나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살아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두 번째로 발을 내딛은 곳은 연초부터 꼭 가고자 위시리스트에 넣어놨던 부산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오게 될까.

 

 

 

4. "부산은 마실나가는거지." 학교선배님이 트위터를 통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KTX고속철도로 세시간 정도면 금방 도착하는 가까운 도시가 부산이다. 그게 올림픽대로를 타고 집에서 홍대까지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란게 놀랍다. 그러니 마실나간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개인적으로 부산은 코흘리개 시절 가족들과 함께 피서로 한 번, 군에서 수송작전으로 아시아드경기장까지 한 번, 총 2번 부산을 만났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 다행이도 여러 활동을 통해 함께 만나왔던 좋은 분들이 나오셔서 이번 부산여행을 함께 해주기로 하셨다. 과연 부산은 어떤 곳일까. 그 곳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5. 밤새 잠을 설치고 서울역에서 KTX를 탄 것은 아침10시 30분경. 도착하니 오후 1시쯤이 되었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그녀의 기분 좋은 축복을 받으며 내린 부산역. 마치 인천국제공항의 축소판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눈이 빛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내 뺨을 간질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마치 고양이가 놀랬을때마냥 온 몸의 잔털이 곤두서는게 느껴졌다. 여기가 부산이구나. 혼잣말을 하고 있노라니 김형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역 분수광장에 30분 전부터 나와 기다리셨다고. 함께 만나기로 한 조군은 금방 집에서 출발했다고 하셨다.

 

 

 

6. 여정은 아직 정하지 않은 채로 부산역에서 재회의 감격을 누리고 있노라니 그제서야 시리얼과 우유로 대충 끼니를 때운 배가 나를 우렁차게 불러제낀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게 먹는게 아니겠는가. 우리 셋은 조군이 그렇게 자랑하던 부산의 밀면을 먹기로 했다. 밀면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냉면과 비슷한 음식이다. 함흥냉면처럼 맑은 육수를 내서 시원하게 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해주냉면처럼 뜨겁고 맵다 못해 속이 아릴 정도로 화끈한 비빔냉면이 있듯, 부산에는 매콤하고 감칠맛나는 밀면이 있다. 조군은 개금, 가야, 초량 이렇게 세 군데의 밀면집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개금밀면까지는 버스로 30여분을 가야한다고 해서 일단 부산역앞의 초량밀면집으로 향했다. 

 

7. 김형은 비빔밀면, 조군과 나는 물밀면을 주문했다. 주문한 밀면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조군이 최근에 입수한 Nikkor 85mm 1.8F렌즈의 성능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이다.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관한 지식이 녹슬지는 않았구나. 이 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놀러온 분들이 가득했다. 가장 주목됐던 건 기타까지 들고 찾아온 대학생들. 별 것도 아닌데도 까르르 웃어제끼며 밀면을 뱃속에 채워넣은 그들은 바로 바다로 향해 나가는 듯 했다. 5분쯤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한 밀면이 나왔다. "우리도 촌티내며 사진을 찍어 볼까?"라며 김형이 제안을 했다. 우리도 웃으며 밀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리고 5분도 안돼 밀면그릇 바닥을 봤다. 이 풍성한 양과 깊은 감칠맛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감탄해하던 내게 조군은 "형, 개금이 더 맛깔나요"라며 웃었다.

 

 

 

 

8. 배를 가득 채웠으니 이젠 차를 마셔야지. 우리는 남포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옥상 엔제리너스로 가기로 했다. 일단 바로 뒷골목의 차이나 타운을 지나며 눈요기를 하고나서 1호선을 타고 부산역에서 남포역으로. 지하철은 외견상 서울과 다를게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더 신선하고 좋아보였다. 이게 여행자의 눈일까. 길바닥 조차도 서울보다도 깨끗해보이고 공기도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흐린 날씨가 처음엔 걱정되었는데 그 흐림조차도 내게 행복의 요소가 되어주기까지. 여행하는 이의 마음은 이렇게 풍성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9. 김형과 조군 둘 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는데 과연 남포동은 볼 거리가 참 많은 곳이었다. 가장 놀랬던 것은 남포역 지하아케이드. 마치 난바역 지하아케이드를 보는 듯한 느낌. 오사카때 여행을 같이했던 김형이 오사카가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을만 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 정도로 이 곳의 분위기는 마치 데자뷰를 경험하듯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지하철역과 이어진 통로를 통해서 롯데백화점 옥상정원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방향조차 타카바야시 백화점 입구와 비슷한 느낌이라니.

 

10. 옥상정원은 부산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라운지로 꾸며져 있었다. 한 쪽으로는 영도와 항만지역을, 한 쪽으로는 부산타워와 육지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있었는데 양 쪽이 이어져있지는 않았다. 잠시 둘러보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 곳이 전망이 좋다보니 남산타워 주변 철조망에 걸려있는 사랑의 자물쇠들처럼 여기서도 수백개의 자물쇠들이 진풍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가장 특이했던 것은 진짜 수갑이 자물쇠를 대신해서 걸려있었던 것이었다. 아쉽게도 유일한 촬영수단이었던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해서 사진으로 담지를 못했다.

 

 

 

11.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우리는 엔제리너스커피에서 영도쪽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셨다. 고고학을 전공했던 조군은 역시 전공자답게 부산의 역사를 조곤조건 읊어내며 그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곳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건 영도할매전설. 그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신같은 존재로 여겨지나보다. 영도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모두 풍족하고 넉넉한 삶을 살게 해주지만, 그곳을 떠나면 폭삭 망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그래서 영도사람들은 영도에서 피치못하게 이사를 갈 때엔 영도할매가 못보게 길일을 따져 영도에서 바라보이지 않는 곳으로 밤에 이사를 간다고 한다. 참 질투심 많은 할매로고. 나는 그런 복일랑 필요없으니 그저 이곳에서 좋은 추억이나 주시오 라고 되뇌이며 영도를 바라봤다. 영도(影島)는 한자말 그대로 '그림자섬'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쨍쨍하게 개어있을 때도 영도는 구름이 가득 끼어있거나 안개로 가리워져서 영도라고 한단다. 영도대교는 일제시대때 도개교로 만들어졌다가 배가 다니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이제는 관광목적으로 다시 도개교로 복구과정 중이라고 했다. 그 때가 되면 다시 와봐야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카메라 이야기와 모터쇼 모델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남자들은 남자들이다.

 

 

 

12. 차를 마시며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우리는 백화점에서 내려왔다. 오는 도중에 백화점별관에서 진행되던 천장분수쇼를 보고 근처에 있는 용두산공원으로 향했다. 부산타워가 있는 그곳이다. 인기있는 장소라서 그런지 캐노피가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공원입구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좌우로 붙여진 용두산공원 캐치프레이즈가 참 인상적이었다. "용두산 공원에 오면 사랑이 이뤄집니다." 남자들끼리 가니 사랑이 이뤄질 리가 있나. 피식 웃으면서 이상한 투구를 머리에 쓴 이순신 동상을 지나 최지우가 기다리고 있는 벤치로 향했다. 이 플라스틱모델은 해외팬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리라. 조금은 조악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의외로 보는 각도에 따라 최지우의 얼굴이 투영되는 괜찮은 녀석이었다. 나도 관광객이니 사진을 찍었다. 최지우야 아무렴 어떨까 하면서.

 

 

 

13. 공원건물에는 전망대와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부산타워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조금 기울어져버리는 바람에 부산타워는 한창 공사중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어김없이 자물쇠들이 가득했다. 전망 좋은 곳은 연인들이 많이 찾게 마련. 비둘기들 사이로 너댓 커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었다. 이곳에는 일본인 커플들도 꽤 찾아왔던 것 같다. 자물쇠에 달린 태그에 일본어로 빼곡히 씌어진 것을 읽어보노라니, 아, 사랑은 역시 국적불문이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14. 조군은 부산의 명소들을 항공사진으로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패널 앞에서 이곳 저곳을 보여줬다. 역시 활동력있는 조군. 모터쇼가 있었던 벡스코, APEC국제회의장, 광안리, 해운대 등의 해수욕장, 철새도래지, 광안대교 등등을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하지만 직접 가보는 것만큼은 아니리라. 김형은 한 일 주일 정도면 충분히 부산의 이곳 저곳을 볼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일 주일 일정으로 와봐야지. 그러면 아마 거의 부산 사람이 다 되어서 가지 않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15. 내려오는 길에는 은행나무가 가득했다. 부산시에서 설정한 트레킹코스로 이 길의 이름은 갈맷길. 삼십년수들이 우거진 이 길은 연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리라. 그래도 은행 떨어지는 날에는 피해야지 않을까. 내려가는 길에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와 장난감 강아지를 묶어놓고는 '개조심'간판을 내놓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다 그 센스가 괘씸해서 다시 올라가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주인장을 만나봤다. 의외로 주인아주머니는 "저 개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요"라고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강아지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게 지금와서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게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보면 커피샵이 두 군데 있다. 기억속에 아련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였던가. 잠시 들러서 차를 마시고 갈까 했지만 조금 전에 엔제리너스에서 마신 관계로 서둘러 책방거리로 향했다.

 

 

 

 

16. 보수동 책방거리는 조군이 정기적으로 들르며 사진을 찍는 곳인데 조군의 사진을 보면서 정말 부산에 가면 가보고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서울에는 선진화의 명목으로 계속 이어지는 개발의 여파로 찾아보기 힘든 헌책방 거리. 오밀조밀한 골목에 책방들이 모여 책들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냥 감탄사를 연발하던 내게 김형은 이 곳도 예전처럼 그렇게 활성화되어있진 않다고 말을 덧붙였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 이곳에서는 야채고로케를 먹었다. 오사카신세계거리에서 먹었던 고로케가 생각이 났다. 조군은 고로케에 구멍을 뚫고 야채속이 들어있는 데다 케찹을 쭉 짜넣어서 먹게 해줬다. 좋은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니.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입 안에 퍼지는 야채와 케찹의 향연은 아마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17. 바로 길건너쪽엔 재래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지도를 살펴보니 전체 블럭이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시장골목이었다. 부산은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일본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금방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수입품상점에는 우마이보우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오사카에 가서도 먹어보지 못한 말로만 듣던 우마이보우를 여기서 맛보게 되다니. 달달한 맛을 생각하고 입에 문 순간 확 퍼지는 옥수수내음과 짠 맛. 아...아마이보우가 아니었던게다. 시장을 지나가면서 카라의 STEP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카라의 인기는 대단하구나. 우리는 일본K-POP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샵에도 들렀다. 역시 간판스타는 카라와 곱상하게 생긴 남자배우들. 김형은 카라의 소이카라 광고이미지와 걸즈파워 이미지를 찍어넣은 타올을 구매했다. 어딜 가더라도 팬은 팬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18. 남포동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었던 거리였다. 바닥에 깔린 무대가 공연때엔 위로 올라온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유명배우들의 핸드프린트를 구경하면서 또 놀라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꼬치를 사먹고 있어서 놀라고. 부산에는 어묵꼬치에 떡을 함께 꽂아서 익혀먹는다고 한다. 서울에는 그저 너부데데한 부산어묵을 잘 접어서 꼬치에 꽂은 녀석만 익혀먹는 걸로 알았다고 하니 김형과 조군은 놀라면서 부산어묵은 원래 이렇게 먹는거라고 했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해주면 정말 인기있을텐데. 나중에 트위터를 통해서 학교선배님이 여기서는 꼭 꼬치를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이미 우리는 해운대로 1003번 급행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19. 버스타기전 이야기. 잠시 우리는 자갈치시장에 들렀다. 여기서 뭔가 먹을거는 아니지만 부산에 왔으니 자갈치시장은 보고 가야했기에. 이 날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바다의 모습은 커플들의 천국이었다. 갈매기떼가 커플들이 나눠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 연신 선회비행을 하고 커플들은 꺄르르 웃어제끼며 그 상황을 즐겼다. 사진을 보면 혼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었는데 왜 커플들이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배가 고팠다. 더는 거기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서둘러 해운대로 향했다.

 

 

 

 

 

20. 꽤나 먼 거리였다. 아니 퇴근길이라 사람들이 우격다짐으로 타기 시작하고 느릿느릿 가는 버스 탓에 사람들은 조금씩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열심히 거리를 구경했다. 왜관에서 부산까지 수송작전훈련을 하면서 지나왔던 길도 지나쳤다. 간간히 조군이 주변 풍경을 가리키면서 관광용터치패널에서 보여준 곳들을 꼼꼼히 짚어줬다. 사진으로만 봤던 초고층 아이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벡스코가 보이는 쪽에서는 한동안 우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허윤미 모델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40여분만에 우리는 해운대까지 왔다.

 

21. 바다. 코흘리개 시절때 봤던 그 바다가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해운대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때는 그저 콘크리트로 대충 타설된 거리와 맞닿은 백사장일 뿐이었는데 오늘날의 해운대는 젊음과 문화가 흘러넘치는 거리로 바뀌어있었다. 내 기억의 해운대는 20년 전의 것이었으니 제대로 out of date였던게다. 이날은 날씨가 궂어서 수영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다. 질 수 없었다. 나도 부리나케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내 발목을 시원하게 감쌌다. 그리고 문득 마음속으로 물결치며 달려드는 아련한 그리움... 마냥 겉으로는 바다가 좋은 꼬마녀석들 처럼 파도에 맞춰 소리지르며 펄쩍펄쩍 뛰고 있었지만, 그리운건 그리운게다.

 

 

 

 

22. 그렇게 펄쩍거리며 뛰노는 나를 피사체삼아 김형과 조군은 사진을 찍어줬다. 그러다 조군은 갑자기 크게 울렁거리며 쏟아진 바닷물에 그만 신발이 젖어버렸다. 해운대와서 신발이 젖은건 처음이라며 어이없어하던 조군. 우리는 족욕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간단히 채비를 정리하고 근처 식당가로 향했다.

 

 

 

 

 

 

23. 꼼장어. 서울에서는 주로 훈제식으로 판매되는 꼼장어다. 나도 그런 꼼장어를 기대하고 앉았건만...웬걸 이건 도막이 나있어도 열심히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꼼장어였다.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김형은 '꼼장어는 이렇게 먹어야지 맛있지'라고 하시며 빙긋 웃었다. 조군과 나는 열심히 꿈틀거리는 꼼장어들의 최후를 영상으로 담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훈제된 것 보다 이렇게 먹는게 맛이 좋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무척이나 먹고 싶은 그 매콤한 맛. 우리는 소금구이까지 먹고 마지막으로 밥을 볶아 먹고 나왔다. 값은 꽤 나갔지만 그래도 그 가격에 이 만큼 넉넉하고 풍성히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러웠다. 순간, 부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4. 우리는 과자와 음료를 사들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 왔으니 꼭 맥주를 마시며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면서. 맥주의 탄산이 터지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울리는 그 느낌은 아는 사람만 아는게다. 해운대공원 거리에서는 거리악사들이 나와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런 레파토리도 없이 그저 두들기는 북소리에 한 흑인이 프리스타일랩을 멋들어지게 불러냈다. 옆에서는 저녁공연을 준비하는 밴드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는 다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백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5. 그곳에서 김형은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된 여러 음악들을 들려줬다. 그래도 가장 흥겨운건 카라의 음악이었다. 다같이 응원할 기세로 듣다가 녹음해두려고 생각하니 다른 곡들로 바뀐다. 억지를 부려서 카라의 스피드업을 틀었었는데, 혼자서 즐거웠는지 노래를 따라부른거도 나 혼자였다. 조군은 열심히 맥주캔을 바다를 배경삼아 찍고 있었고, 또 다시 파도의 습격을 받았다.

 

26. 너무나도 소중했던 백사장에서의 시간. 그녀에게 보내려고 우리 이러고 놀고 있다며 히히거리며 녹음한 파일에는 파도소리가 잔잔히 녹아들어 있었다. 김형과 조군과는 서울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아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이렇게 서로간에 회포를 풀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담에는 꼭 부산 정모를 하자며 일어선 시각이 저녁 11시. 아뿔사, 상경열차가 없구나.

 

27. 부산은 서울보다 대중교통이 일찍 끊긴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김형은 서둘러서 귀가길로. 조군과 나는 다시 부산역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조군은 인스탁스포토프린터로 해운대에서 찍은 내 사진 하나를 출력해줬다! 서울에 올라올 때 마다 해준거도 없는 내게 이렇게 세심하게 해주다니.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다시 모터쇼 이야기와 우연찮게 나온 비밀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눴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조군은 집앞에서 먼저 내리고 나는 부산역 정거장에 내려 숙박할 곳을 찾았다.

 

28. 건너편은 그다지 좋은 시설은 아니라는 조군의 말과, 사람은 아무데서나 누워서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엄격한 가르침이 떠오른 나는 그 곳에서 가장 괜찮아보이는 녀석을 골랐다. 이름하야 토요코-인 호텔. 물론 다른 싼 호텔들은 싱글룸이 없었다. 신기했던건 호텔앞에 하루 숙박비용이 큼지막하게 씌여져있었던 것. 혼자 있으려니 갑자기 피로가 쏟아져 왔다. 토요코-인의 숙박계에 싱글룸 하나를 달라고 하니 스모킹룸 하나가 있다고 한다. 보통같았으면 다른 곳을 찾아서 헤맸겠지만 이미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귀찮은 마음에 그 방을 달라고 했다. 1803호. 아마 잊혀지지 않을 방이지 싶다.

 

29.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예기치 않았던 숙박. 그런데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기록 사진을 찍고, 샤워를 하고, 살짝 허기가 돌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서 먹었다. 호텔에 준비된 물품들을 뒤져보니 편지지가 있었다. 아마 수년전에 넣어진 오래된 것이리라. 볼펜을 꺼내고 편지를 썼다. 그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이 편지는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걸까.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걷잡을 수 없었기에 짧은 시간에 쏟아내버린 수많은 말들. 사실 그렇게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건만, 마치 사춘기를 갓 지난 사내처럼 그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자. 그리고 좋은 꿈을 꿔야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웃음을, 행복을 주고 싶으니까.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자.

 

30. 밤새 에어컨 삐걱이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사투를 벌였다. 정작 잠든 시간은 3시간 정도.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부산을 찾아온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건만, 말을 걸면 서로 친절하게 대답하고 웃어주었다. 혼자 온 여행객들끼리는 뭔가 통하는게 있었는지 한 번씩은 뭔가 유의미한 내용이 담긴 눈빛을 교환하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의 여행객들은 회화를 취미로 하는 동호회의 사람들이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용기를 내서 인사를 던지고 그림에 대해서 물어봤다. 회색 콘크리트로 가득한 풍경이 이렇게 다채롭게 변신할 수 있는 건 아마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1. 전날과는 다른 맑은 날씨. 너무나도 맑은 날씨다. 사진을 찍고 부산역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어딜가나 꼭 가야 성미가 차는 스타벅스. 단지 여기서 잠시간 몸을 담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애정때문일까. 짙은 커피향으로 내 온 몸을 감싸며 KTX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조군이 문자메시지로 신발원(신파유엔)이란 중국식제과점에서 공갈빵과 꽈배기를 꼭 사가라고 했다. 출발 15분전에 나서서 무려 만원어치나 사들고 서울로 가는 열차에 몸을 담았다. 옆자리엔 서울까지 가시는 할머니가 큰 짐을 두 개나 들고 앉으셨다. 그 짐을 머리위 선반으로 올려드리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부산 풍경을 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굿바이 부산. 굿바이, 고마운 사람들. 한동안 서울에 몸담고 있을테니, 그때까지...안녕.

 

 

epiloge.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정착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행을 다녀오며 내가 얻고 또한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안에서 치유되고 나아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한 걸음 내디딜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망각의 세계로 내던져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다시금 돌아온 일상은, 한 편으로는 반갑고도 좋았다. 하지만 이 곳에 영영히 있지는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이제는 모든 것이 어색해졌다. 아프락사스 신화.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하는 새처럼, 나는 정체된 현실이란 껍질을 꺠고 탈피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러한 나를 떠나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것 뿐이다. 살기위해서는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노마드(Nomad)의 삶. 내가 얻은 것은, 아니 되찾은 것은 이 노마드로서의 정체성이다.

  고독한 삶. 아마 우리 노마드들의 일생을 그렇게 표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분명 정착하는 이야말로 누군가에게 애정을 품고 사랑하며 함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것일게다. 하지만 이 노마드들에게도 사랑은 있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살아갈 줄 아는 마음이 있다. 다만 그 사랑때문에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정착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 뿐이리라. 결과적으로 노마드에게 남는 것은 냉철한 이성,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준비된 가방이다.

 우리가 노마드로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정착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여행하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며, 매 순간 새로운 자신으로 발전해나간다. 나이듦이 죽어감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떠남으로서 젊음을 성취해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높은 곳, 가장 외로운 곳, 정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노마드는 정체된 순간의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게 된다. 노마드가 가진 딜레마다.

 하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여행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모든게 달라지리라. 더 힘차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알아가게 되리라. 노마드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이기에.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