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2012. 10. 2. 03:07

  오늘은 "광해 - 왕이 된 남자"를 보고 왔다. 영화관 입장때부터 A열부터 끝까지 가득 차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 영화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역사를 배경으로한 픽션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영화적 허구와 역사 그 자체가 가지는 사실의 간극이 너무 큰 게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픽션이 현실인 것 마냥 떠드는 사람들도 한심스럽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영화적 허구는 허구이니 재미로 볼 수 있는 것은 보겠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광해를 이 때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걸까. 그리고 사람들은 열광했던걸까. 한편으로는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영화관에 들어갔지만, 관람후에는 보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영화가 던져주는 감동에 젖어 있었을 정도니까.

 

 이 영화는 역사적 사실이 던져주는 한 단서로부터 시작된 감독의 영화적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광해군을 꼭 닮은 광대. 그리고 그가 그를 대신해서 정사를 펼친다. '정치'가 가져다주는 더러운 현실로부터 광해군의 대역은 한 편으로는 절망하고 한 편으로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영화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광해는 사대주의에 저항한 유일한 군왕이며 신민들을 위해 과단한 결단을 내린 몇 안되는 개혁가로 거듭난다. 그리고 그 개혁적 발로는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실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

 

 민족주의적, 민주주의적인 정치이데올로기를 가진 우리가 광해군을 영화를 통해 엿볼 수 있었던 건 우리가 현실 정치에서 바라고 원하는 바였다. 그러나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생각했던 무엇인가가 어쩐지 두렵게 느껴진다. 유시민이 이야기 했던 것처럼 아직 우리는 근대적 왕정제에 익숙한 사고를 하는 존재다. 이미 절차적(형식)민주주의가 여느 선진국보다도 확고히 보장되어있는 나라이건만, 여전히 사람들은 대통령을 말할 때 '왕'을 대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는 이와 같은 역사적 허구를 다루는 영화에도, 드라마에도 투영이 된다. 이 시대에는 제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정치적 분열을 통합시키고 신민들을 이롭게 했지만,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왕이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다. 국민의 뜻이 민주적 절차를 통해 취합되고 고찰된 뒤 현실에 반영되는 민중 정치다. 이런 점에서 여전히 이런 영화를 통해 '역시 대통령은 이런 사람이어야 해'라는, 조선시대사극으로부터 대한민국 민주정치의 최정점인 대통령에 대한 비전을 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건 왠지 경계하고 싶다. 다만, 우리가 바라는 정치적 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과 개선의 요구, 그리고 올바른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기를 바랄 뿐이다. (...물론 영화는 영화일 뿐, 너무 오바하지는 말자...)

 

 영화의 깊이는 영화가 제작되는 현실이 얼마나 적절히 녹아들어가 있느냐에 따라서도 결정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적 허구를 통해 관객들은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욕구를 해소하며, 더러는 현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9월 개봉작인 '간첩'과 '광해-왕이 된 남자'는 스토리 가운데 우리가 느끼는 정치-경제적 박탈감을 적절히 녹여낸 수작들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 '간첩'에서는 자본에 물들은 우리네 모습과 시대착오적인 '간첩'이란 소재의 정치적 개그가, '광해-왕이 된 남자'에서는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바램이 투영되어있다. 우리가 이 영화들을 보면서 웃을 수 있었던 건 이런 깊이있는 우리 현실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이 아닐까.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