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 11. 27. 21:02



시청앞에 칼바람이 분다
몸을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려니
옆에 덩그러니 잎을 다 떨군 나무가 말한다

어깨를 펴라 더는 움츠리지 말고
지금의 몸서리쳐지는 현실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라

나는 나무들이 이 매서운 겨울을 어찌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 곁에 서서 
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무에 침을 뱉는다
지나가는 개도 오줌을 갈기고
더러는 똥을 누며 욕을 보인다

나는 그게 싫어 뿌리채 뽑혀나갔지만

출렁이는 가지를 회초리 삼아
칼바람을 매질하고 잠재우는 나무는

그 가지속에 움트는 봄을 품고
어깨를 펴고 당당히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대한문 플라타너스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3. 11. 24. 14:40

 오늘 예배 시간 설교 중 나이지리아에서 한 목사가 천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소개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한 최후 심판을 연기했으며 즉시 온 세상에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는 내용이었다. 담임목사님은 교회의 한 장로님이 카카오톡을 통해서 그 내용을 전달해줬고, 그 내용이 목사님께 큰 놀라움과 상당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설교 내용도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각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또한 내 신앙생활의 지향점을 계시록적 그리스도인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고 있기에 오늘의 설교는 참 듣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좋았다. 하지만 그 강조를 위한 내용이 뭔가 미심쩍었다. 



사실 같은 내용을 수일 전 페이스북에서 봤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같은 매체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이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내용마다 조금씩 말이 첨가되고 변형되고 있었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매체가 간소화되고 간편화되면서 정보의 유통은 대단히 빠르지만 내용상의 정확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꼭 출처를 명기하건만, 이 출처란게 아는 장로님, 아는 목사님, 아는 선교사님, 아는 친구, 믿을만한 내 친구 수준이었다. 사실 교회만큼 도시전설이 쉽게 유통되는 곳도 없다. 적당히 신비주의적이고 믿을만한 내용이면 삽시간에 교회 안에 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나이지리아의 어떤 목사가 천사를 만났으며 그 글을 누구에게 전했는가. 해당 글이 Copy & Paste식으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라 했기에 그 정도로 빠르게 전파되려면 인터넷의 힘이 아니면 안될 것이었다. 우선 한국에서 어떻게 이 글이 유통되고 있는지 구글링을 통해 알아봤다. 검색어는 "나이지리아, 목사, 천사의 메시지, 노인, 집사"로 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페이지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교회인 필라등대교회의 목사 칼럼이었다. 2013년 11월 11일 글이다. 같은 내용이 그 교회의 집사님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http://lighthousekumc.org/ministry/?p=960)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칼럼(11/10) “천국에서 있었던 일:한 천사의 메세지”

Posted on November 11, 2013 by webmaster

(천국에서 있었던 일: 한 천사의 메시지)


한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글이 너무나 도전이 되어 함께 나눕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때가 진실로 가깝습니다…


지난주 나이지리아를 여행 중이었던 한 목사님이 바람부는 황량한 길을 홀로 걸어가시던 어떤 노인을 차에 태워드렸습니다. 조금 가던 중에 차안에서 그 노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자네는 어젯밤에 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목사님은 이 노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차를 급하게 세우고는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국에 무슨 일이 있었다니요? 어떻게 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십니까?” 하고 되물었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지난밤 천국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잔인함과 타락함에 화가 너무 나셔서 천사들에게 심판의 나팔을 불으라고 하셨답니다. 천사들은 일제히 나팔을 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을 불려고 하는 순간, 그때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던 성자 예수님께서 “저의 흘린 피를 기억 하소서”하시며 길이 참으시는 성부 하나님께 간청을 하셨었소. 성부 하나님께서는 참 성도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과 악한 자들의 악을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으셨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소…


“내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천사들에게 명하여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세상으로 내려가 나의 심판의 첩경을 평탄케 하며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웠다 증거하라”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이 목사임을 아는 듯한 노인의 말에 놀라운 마음으로 “선생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아십니까?”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대답하기를 “나는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그 천사들 중의 한명이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메세지를 전하시오. 낭비할 시간이 없소, 부탁 드리오” 하고 말 하고는 그 노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곧 오십니다. 제발 회개하십시오. 간청 드립니다. 이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복사해서 붙이고, 나누고, 전화하고, 메일에 적어 보내고, 텍스트를 남기십시오.


제발 한 영혼이라도 구하십시오!!! 나는 나의 본분을 다했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이 말씀을 전할 차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깨어 기도하면서 임박한 심판을 알리는 복음의 증인된 사명을 다합시다!




같은 내용의 글을 같은 2013년 11월 11일, egloos의 한 블로거가 내용을 추가해서 올렸다. 이 분은 교회 청년이 지인분에게 받은 메시지라고 하며 괄호로 "호주 브리스번 한인교회에 계시는 김장호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지"라고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은 "방금 신뢰하는 목사님께 받은 문자"라며 같은 내용의 글을 전하고 있다. 이 분은 그 외에 성경에 나와있는 마지막때에 대한 이야기와 복음에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게재하고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http://sora07.egloos.com/m/3442806




2013년 11월 14일. 아르헨티나 중앙교회 홈페이지에서 같은 내용의 글이 볼리비아의 전강우 목사를 통해 약간의 첨언과 함게 게재되었다.
http://www.chungang.org.ar/?document_srl=137451&mid=mannam_libertad




2013년 11월 17일. 다음의 한 블로거가 필라등대교회의 칼럼을 Copy&Paste한 글을 게재했다. http://blog.daum.net/yunts/16832111



2013년 11월 8일. 노바스코샤 한인장로교회의 게시판에 서인숙님이 같은 내용의 글을 친분이 있는 선교사님을 통해 받아 게재했다.
http://www.halifaxkpc.ca/main/sub.html?Mode=view&boardID=www18&num=2246&page=4&keyfield=name&key=&bCate=



2013년 11월 8일, 페이스북의 컴파스라고 하는 페이지에서 11일의 이글루스의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을 업데이트했다. 김장호 집사로부터 받았다, 신뢰하는 목사님에게 받았다는 말이 여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글루스의 유저가 이와 동일한 내용의 글을 카피해서 올린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pages/%EC%BB%B4%ED%8C%8C%EC%8A%A4-compass/184428221695845




2013년 11월 1일, 하나선교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Esther Lee의 글을 공유하기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Esther Lee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동하여 글을 확인했다. Esther Lee가 업데이트 한 시간은 같은 날이었다. 그런데 이 글부터 글 내용 가운데 단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Esther Lee는 페이스북 친구 김소연님으로부터 카카오톡을 통해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앞선 시기에 카카오톡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내용 이전에 계속해서 공유되고 있는 이 이야기의 원출처인듯한 이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다. 말 그대로라면 Kofi Okyire Appianing이란 이름을 한 이가 처음으로 이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그 시기는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새벽 4시 19분의 일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가지고 다시 구글을 통해 검색했다. 




2012년 10월 20일. 시기가 2013년이 아니라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enson Alexander라는 구글플러스 사용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같은 영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의 글에는 Kofi Okyire Appianing의 이름이 글의 상단에 소개되고 있다. 구글 이메일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양식인 듯 하다. 
https://plus.google.com/115412866933359855828/posts/T9WheWXNdyu





그리고 바로 아래에 구글 그룹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된 글이 등장한다. 2012년 10월 1일의 일이다. 원본의 글이 2012년 9월 21일에 작성된 것이므로 가장 가까운 내용의 글이다. 기대했던대로 포워딩된 이메일 가운데 Kofi Okyire Appianing의 글이 게재되어 있었다. 


----- Forwarded Message -----
From:
 Kofi Okyire Appianing <
kappianing@yahoo.com>
To:
 
Sent:
 Friday, 21 September 2012, 11:19
Subject:
 THE TINE IS NEAR
 

WATCH OUT

THE TIME IS TRUELY NEAR....
A pastor was travelin jst Last week then
he saw an old man n gave him a lift.
 

While they were going the old man said
'my son, do you knw what happened in Heaven last night?
 
The pastor was so terrified and hurriedly parked and asked; 
'Sir, are you sleeping? Abi how did you get the
information about Heaven?
Old man: last night in Heaven God became very angry
wit man and asked the Angels to blow d trumpet. The angels picked up d trumphets and as they were
about to blow it Jesus fell down and begin to plead in
tears and the blood that came out of His hands and body
were very fresh n told God dat His death shouldn't be
in vain. God could not stand d pains of d saint and the
wickedness of the evil ones. So He said "AM GIVING THEM THEIR LAST CHANCE.".
Jesus then turned to the angels and told them to move
down in their numerous numbers to tell the world that
"TH END IS NEAR, JESUS IS COMING VERY SOON".
Man: (sweatin n cryin) sir, how did u knw dis? OLD MAN: I am 1 of the Angels sent 2 Nigeria. Please use
evry medium of communication to send this
message. No time to waste, Please! And the old man
disappeared. Brethren, this story is real, Christ is
coming Soonest. Please REPENT. 

I beg of you...Please pass this message round. 
Copy and paste it, share it, call, email it, text it. 
PLEASE SAVE A SOUL TODAY. 

I Have done my part, 

Its now your turn to spread the Gospel message round. 


반복적인 오타가 보이나 고의적으로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이 발음하는 대로 적은 흔적인 것 같다. 재인용하거나 다시 포워딩할 때 이러한 부분들은 재전송한 이들에 의해 수정되었다. 그러나 'Sir, are you sleeping? Abi how did you get the information about Heaven?'이란 문장에서 Abi란 사람의 이름같은 부분은 삭제되었다. 이 글이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제일 오래된 내용의 글이며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유포가 되기 시작한 지점인 듯 하다. 



원본은 찾았다. Kofi Okyire Appianing이란 사람은 페이스북 개인페이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활동은 2011년 5월 26일이다. 그의 친구들의 프로필을 보면 대체적으로 아프리카 가나 지역의 크리스천들인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kofiokyire.appianing 



그렇다면 이 글이 최초로 번역되어 유포된 것은 어디일까. 구글검색창에서 한 페이지를 넘기니 비슷한 시기에 한국어로도 이 글이 공유된 흔적이 있었다. 



2012년 10월 14일. 가장 오래된 글은 놀랍게도 기독교관련 사이트가 아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크게 회자되었던 그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었다. 이 글 이전에 같은 내용의 글이 번역되어 인터넷에 게재된 것은 없었다. 이 번역자만이 유일하게 아는 누구로부터 받은 글이 아니라 출처를 제시했다. 출처로 게시한 페이지인 END TIMES PROPHECY란 블로그에도 2012년 10월 9일 동일한 내용의 글이 게재되어있으나 ctrl+f로 Nigeria로 검색해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깊숙한데 게재되어 있었다. 

http://www.ilbe.com/index.php?mid=jjal&listStyle=webzine&document_srl=270267473



이 글이 한국어로 유통되기 시작한 곳은 일베저장소였다. 그리고 이 글을 조회한 이들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글의 원본 내용과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글의 내용이 중간에서 바뀐 일 없이 대동소이한 만큼 이 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난 주에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 한 노인이 나타나 목사의 차에 동승하더니 갑자기 천국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운전자는 목사였는데 노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 노인은 자신을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천사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 이 글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워 왔다고 회개를 촉구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하고 있다. 

  • 메시지 전달의 명분은 영혼 구원이다. 다시말해 이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Abi란 이름은 이후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단순한 오타로 간주하여 빼고 전달하고 있다. 



글의 내용의 임박성, 신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요한계시록과 성경 전체에 계시되어있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이 임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숱한 자연재해와 불안정한 국제정세, 날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각박한 세상 등 사람들은 이럴 때일 수록 마지막 때에 대해 주목하게 되는데 이 글이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촉발 시킨 것 같다. 특이할만한 점은 글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글이 전해주는 메시지, 즉 마지막 심판의 때임을 경고했다는 점 때문인지 수많은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글이나 사례들을 읽을 때 언제나 궁금한 점은 어째서 세상으로 보내진 수많은 천사들 가운데 나이지리아의 노인으로 분한 천사의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글 가운데서는 예수가 세상으로 수많은 천사들을 보내어 마지막 때임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전달되고 있지 않다. 인터넷이 전세계에 공급된 마당에 나이지리아의 계시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미심쩍은 일이다. (설마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이들 모두가 천사라는 말은 하지않겠지...) 게다가 그 천사가 전했다는 내용의 핵심 틀은 이미 예수가 공생애를 통해 세상에 전한 말씀과 대동소이하다. 예수님 이후 수많은 전도자들이 전세계에 천년이 넘게 전해왔던 복음과 다를게 없다. 



더군다나 그 목사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며 노인의 정체는 더욱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소설같은 이야기를 믿는다. 게다가 이 글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배운 이들, 항상 성경의 자기정합성과 진리성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진위여부의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다. 



성경의 사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예수의 행적과 제자들의 신비로운 체험은 적어도 위치와 시간이라도 최대한 알 수 있게끔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 나이지리아의 복음은 그조차도 없다. Kofi Okyire Appianing 글을 쓴 2012년 9월 21일 금요일의 지난 주란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최근의 글이라면,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밝힐 수 있는 상대적으로 근시간대의 내용이라면 더욱 자세한 내용들이 밝혀져 있었어야 했다. 



마지막 때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각성과 회개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수적인 자기점검장치와도 같다. 최후 심판의 때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회개는 언제나 촉구해야 하는 것이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이러한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내용에 의존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그 목사가 등장해서 간증을 하더라도 신뢰한다기 보다 그저 그가 경험했던 내용이 성경에서도 수차례 언급되고 있는 말씀을 방증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보다도 이 소문이 더 가치를 발하는 듯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카톨릭도 아닌 개신교측 신도들과 교역자들이 이 나이지리아 천사의 이야기에 흥분하고 믿겨진다는 말을 하는 것은 천사, 성인, 성모숭배를 비판하는 개신교인들 답지 않다. 게다가 한국기독교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단단체들 대부분이 이러한 신비주의적 내용들을 통해 변질된 신앙을 신앙인들에게 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도 많이 나와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기억할 때이다. 



차라리 이 나이지리아 복음보다 글을 읽는 이들에게 오늘 들은 설교의 성경 본문을 전해주고 싶다. 우리 신앙인들이 마지막 때에 준비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신뢰할 말씀이다. 


무화과나무에서 배울 교훈(마 24:32-35; 눅 21:29-33)


28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마 24:36-44)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33    조심하고, 6)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출처] 대한성서공회 http://www.bskorea.or.kr/infobank/korSearch/korbibReadpage.aspx?version=SAENEW&book=mrk&chap=13&sec=1&cVersion=&fontString=12px&fontSize=1


Posted by Cybercat
Movie2013. 11. 21. 17:49



Aningaaq




 영화 'Gravity'를 보신 분이라면 라이언 스톤이 지구로 열심히 조난신호를 보낼 때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응답해준 지구인이 기억날 것이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지만 어떻게든 대화를 이어가는 내용이 참 인상깊었는데, 이 내용이 또 다른 시각에서 영화화되었다. 라이언 스톤의 대화상대가 되어 준 이누이트인 아닝가의 입장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Gravity의 감독인 Alfonso Cuarónd의 아들 Jonas Cuarón이 각본 및 감독을 담당한 단편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http://insidemovies.ew.com/2013/11/20/short-film-gravity-video/를 참조.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11. 19. 02:29


성균관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3년 11월 18일, https://fbcdn-sphotos-g-a.akamaihd.net/hphotos-ak-prn2/1476217_658732564167429_1619916634_n.jpg





 난 울 학교 가야겠다고 맘먹은 이유가 다른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성대를 방문했던 그 해 겨울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었다. 온통 하얗게 물들었던 성대 명륜 교정은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 끼에 이천원하던 다산경제관 지하의 학생식당에서 아주머니께서 푸짐하게 올려준 식판의 밥을 맛있게 먹고, 당시에 선풍적 인기였던 헤이즐넛향 원두커피를 한 컵씩 마시면서 교수회관쪽 출구로 나왔다. 


 그때 마주했던 한겨울속 눈덮인 산사같은 분위기의 교정 모습에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한 편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 펑펑 내리는 함박눈에 서울 시내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고요함에 황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헤이즐넛향 가득한 커피도 마시고 있겠다 완전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이 학교 꼭 와야지. 


 1년 후, 아버지는 내가 왜 굳이 이 학교를 선택했는지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발목까지 수북히 쌓여만가던 눈과 아름다운 교정과 방학중에도 석유곤로에 불 지펴가며 학문에 열두하던 사람들. 눈쌓인 대성로를 내려오면서 나는 첫사랑에 빠진 것 마냥 두근거리는 가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사랑의 감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치열한 눈치작전에 희생된 또 하나의 학생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때의 아름다운 교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새로 들어온 재단은 미적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학생들의 요구하고는 상관없는 토건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금잔디가 파헤쳐지고 학생회관과 법학관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그래도 나는 영 다니기 불편한 퇴계인문관을 사랑했다.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담배냄새와 백오십원 자판기커피냄새가 절어있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그 곳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내 대학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안거지만 그 체력으로 4학년까지 버틴게 대단한거였다. 정신적, 육체적 빈궁함에 무기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전국민이 함께난 IMF라는 겨울을 유독 나는 더 아프게 나고 있었고 은사님의 대학원 진학 종용마저 돈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더 이상 빚지면서 공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은 개판 오분 전이었지만 졸업연기는 불가능한 옵션이었다. 억지로 써낸 눈문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정도였다.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첫 눈이다. 함박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 눈 때문이 아니라 아직 못다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아직도 그 때 겪었던 무기력함의 공포가 나를 막아서지만, 아니 지금도 나를 짓누르고 있지만, 다시 가고 싶다. 비록 첫사랑이었을지언정 내가 사랑했던 것을 다시 잡아보고 싶다. 난 이 학교 꼭 와야지. 꼭.




Posted by Cybercat
정치/사회2013. 11. 19. 01:47



 여러모로 지난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민주주의의 후퇴가 사방팔방에서 목격되고 있다. 그 주체를 굳이 현 정부여당으로 지목하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그들의 힘의 배경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지지자들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단순히 작금의 민주주의의 후퇴가 정치권만의 차원이 아니라 국민들의 일생생활의 차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들어선 반민주, 반민족적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권력의 횡포를 일삼았던 이들의 후예,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 가운데 이들을 열렬히 지지해마지 않았던 자들이 완전히 복귀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피흘리고 고통받아야 했던 수많은 민중들의 실패로 각인되고 곧이어 정치적 무기력증으로 진화되었다. 


 현 야권의 전략부재와 정치자원낭비는 군사독재와 공포정치로의 회귀를 두려워했던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 가운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들은 정치적 대안의 부재와 현저한 군사독재세력의 레짐복귀 가운데 또 다시 할 말을 잃어버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처럼, 무한궤도처럼 무한의 되먹임과정은 여권의 전횡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또 다른 분열을 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때까지는 6월항쟁의 민주국민들의 열망을 짓누르던 남북갈등과 동서갈등이 여권의 주된 정치적 무기였지만, 현 정부가 입각하는 시기부터는 청년층과 중장년층간의 분열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 군사독재시절이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민주주의 의식으로 깨어난 이들간의 분열이었고 반민주와 민주세력간의 대결이었다. 


 그런 가운데 반민주세력의 간발의 승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군사독재 추억팔이정치를 가능케 하는 시발점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측근들을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충신으로 일했던 이들 위주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들의 복귀야말로 2013년 3/4분기부터 4/4분기까지에 이르는 정치적 퇴행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공약은 전격적으로 폐기되고 검경과 국정원의 불법적 전횡은 철저히 가려지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철저히 짓밟히기 시작했다. 모든게 과거와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심각할 것을 항상 예고하고 있다. 


 현재 최고의 이슈는 청와대 경호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국회의사당에서 민주당의 국회의원을 무력으로 제압한 사건이다. 한편에서는 제2의 차지철의 등장이라며 현 정부의 민주주의와 의회에 대한 저열한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비판하고, 한 편에서는 불법주차한 자기 차 걷어차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냐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다. 다소간 어이없는게 차 문을 걷어찬 것은 막가봐야 재물손괴죄로 벌금형을 받을 일이지만 인신을 겁박하고 무력을 행사한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인식 수준이다. 그리고 그 무력행사는 청와대 중요 요인의 경호와는 전혀 관련없이 '국회의원이면 다냐'라는 외침과 함께 일어난 폭력행사다. 상대는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비단 국회와 정부차원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다. 주요언론의 퇴행과 맞물려 민주주의의 확립에 가장 중요한 자유로운 소통의 통로가 된 인터넷 공간에서 정부여당은 조직적으로 권력의 재창출을 위해 군과 권력기관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여론은 기성언론보다 더 파급력이 큰 볼록렌즈효과를 지니고 있어 조금만 크게 이슈가 되더라도 그게 뉴스의 전부인 것 마냥 착각하게 되는 일이 잦다. 그리고 권력은 그것을 철저히 이용하여 권력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오락과 여가생활로 즐기는 인터넷 게임을 통제하려하기 시작했다. 중독자 구제라는 허울을 쓰고 입안되려 하는 이 규제법안은 사실 인터넷게임만이 아닌 중독가능한 미디어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오락을 어느 수준에서 중독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컨센서스조차도 성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려다보니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만화와 동네 오락실을 나쁜 것으로, 없어져야 하는 악으로 규정한 구세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저항을 겪자 그들은 역으로 법안지지청원과 반대하는 네티즌들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조직하려는 듯 하다. 


 이 또한 인터넷과 기성언론의 볼록렌즈효과를 통해 과대평가될 것이고 마침내 입안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우리는 이런 시대착오적, 퇴행적 법안의 입안을 저지할 충분한 무기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들처럼 대량의 여론을 생산해내는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강단있고 용기있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자아내는 '불확실한 미래'와 '경제불황'이라는 공포에 우리가 몸을 움츠렸기 때문이다. 


 과연 미래는 불확실하다. 어느 누구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중받는 삶을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독재정부에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오직 충성된 개들만이,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자들만이 무한한 발전과 인간다운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근근히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경험했고 그것이 그다지 북한의 전제정권과 다를 바 없음을 역사를 통해 체험했다. 그런 세상을 다시 도래케하여 후세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정말로 면목없는 일이다. 그들을 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과 억압받는 고통을 전해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달고도 풍성한 과즙과 과육을 맛본 세대다. 하지만 그 과일을 먹고 나서 씨앗을 종자삼아 다시 심고 기르는 일에는 게을렀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기르는 일을 그만 뒀다. 어쩌면 너무 민주적이었기에 과거독재세력의 재집권을 막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모든 국민들이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보다 군사독재가 더 좋았던 이들이 그 나무에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들을 방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민주적인 행태를 규제하고 파시즘적, 매카시즘적 정치가 다시는 싹을 들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것이다. 


 이제는 깨어난 민주적 국민들이 이 일을 다시 시작할 때이다. 이 땅에 다시 진정한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가 서로 공존하며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다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첫 째,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현 정부여당은 일개 권력층의 집단이익만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대다수의 보수적 국민들의 이상과는 상관없이 권력유지를 위해 파시즘적, 반공주의적, 친일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나 일제에 의해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정부가 오히려 상처를 입히고 있다. 게다가 보수적 가치의 핵심인 작은 정부, 경제사회와 개인의 자유의 확대와는 정반대로 더 큰 규제 확립으로만 치닫고 있다. 국가안보의 근본적 해결보다 임시처방으로, 국내문제 해결보다 국외순방을 통한 이미지만들기만으로, 야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다수당의 횡포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둘 째,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의 출범 또는 현 야당의 변신이 필요하다. 정부여당이 지지받는 이유는 단순히 추억팔이정치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국민들은 정치권이 조용하고 잠잠하기만을 원하는 수준이고 대다수가 또한 그러하다. 박근혜가 조용할 수록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런데 있다. 하지만 규제가 확대되고 억압이 지속될 수록 국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가 필요하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정부가 이렇게 저항을 받고 있는 와중에 야당은 저항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거리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리로 나서려면 혼자서 나서지 마라.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을 조직하고, 야권내 갈등을 봉합하고, 대의를 향해 연합해야 한다. 


 셋 째, 현 사태를 성공적으로 종결시킨 후 다시는 과거의 레짐이 복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니 다시 복귀하더라도 결코 확립된 민주주의를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키고 가꿔야 할 것이다. 다시 뿌리가 드러나고 뽑혀날 위기에 처해져서는 안된다.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감사한 건 내키지 않는 분위기이더라도 야당들이 연합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진 않다. 전장의 적은 하나인데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극히 정상이다. 다양한 소리가 나오고 다양한 입장이 대변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함께 모여 서로 치고 받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여 정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라. 그 내용을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민이든 잘 사용하지 못하는 국민이든 다 알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이러한 정치적 흐름에 합류하여 큰 물결을 만들어 낼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6월항쟁을 비롯한 민주투쟁이 그러하였듯, 다시 거대한 민주주의란 파도를 만들어 내어 새로운 세계를 확립해야 한다. 단순히 현 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데서만 그쳐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확립과 실천을 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야당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기필코 확립될 것이다. 그와 함께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의무도 새 시대에 알맞게 재정의될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자신에 대한 투쟁, 곧 새 시대에 대한 새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치열한 이성적 토론과 이를 통한 국민적 컨센서스 확립을 향한 우리의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 날이 머지 않았고 터널의 끝은 바로 눈 앞에서 빛을 비추고 있다. 이제는 다함께 달려가자. 참된 민주주의의 확립의 기쁨을 함께 향유할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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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oughts2013. 11. 12. 18:01





 "21세기 중국이 세계를 주도할 것인가"란 주제로 토론을 진행해 큰 주목을 받았던 뭉크 토론회(Munk Debate)에서 회원들에게 반가운 연락을 해왔다. 다가오는 11월 15일 저녁 7시부터 8시 반, 그러니까 한국 시간으로 11월 16일 오후 5시부터 6시 반까지 새로운 토론을 진행한다. 이번 토론 주제는 "The End of Men"(남자의 종말)에 관한 것이다. 회원들은 유·무료 회원여부를 불문하고 무료 인터넷 중계를 볼 수 있다. 회원에게 발신되는 전용메일에 첨부된 링크를 통해 이메일 주소를 등록하면 생중계 이전에 회원에게 이메일로 생중계 채널 정보를 알려줄 것이다. (※메일이 전송된 시기는 16일 오전8시경이었다. 미국시간은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다. _-;;;)


 이날 패널로는 "The End of Men"을 저작한 Hanna Rosin과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Maureen Dowd가 현대사회 전반에 걸친 남성의 권력과 위상의 감소에 대해 이야기 할 것이다. 반대 패널로는 How to be a Woman의 저자 Caitlin Moran과 Foreign Policy와 Prospect로부터 "세계 100대 지식인"중 하나로 손꼽히는 Camille Paglia교수가 참여한다. 

 토론을 시청하기 전에 TED에서 Hanna Rosin이 자신의 저서와 같은 제목으로 강연을 한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좋겠다. Subtitle을 한국어로 설정해놓으면 한국어 자막이 나오므로 편하게 볼 수 있다. 



[출처] http://hannarosin.com/hannas-ted-talk-on-the-end-of-men/



반대 패널로 참여하는 Caitlin Moran의 영상은 없지만 그의 개인 홈페이지가 있으므로 간략히 참고해 볼 만 하다. 


http://www.caitlinmoran.co.uk/index.php/category/blog/



토론은 아마도 여성 위상의 상승, 그리고 남성의 자리를 대체하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와 남성들의 상대적 박탈에 대해 격론이 오고 갈 것이다. 단순히 생각해봐도 우먼파워가 상당히 강해지긴 했지만 그게 남성의 종언을 선언할 만큼 현저한 것인지 언뜻 느낌은 잘 오지 않는다. 적어도 구조적 변화에 있어서는 동의할 수 있긴 하겠지만 말이다. 


남자로서 다소간 섬뜩하게 느껴지는 주제이긴 하지만 현대사회에 있어서 남성과 여성의 역할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3. 11. 12. 13:50



카르마 경영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출판사
서돌 | 2005-09-1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카르마-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진다.카르마는 업(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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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전에 이나모리 카즈오의 "카르마 경영"이란 책으로 서평을 올렸다. 책 내용에 대한 서평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온 세상에 들어볼 수 있을 만한 좋은 말들은 정말 많이 모아놓은 책이기에 버릴 수 없는 내용들을 조금이라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버지께서 이 책을 권하신 이유는 그 좋은 말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늦게나마 짐작해본다. 


이나모리 카즈오가 생각한 현대는 자본주의에 의해 개인화되고 개인의 영달을 위해 이기주의적으로 사는 것이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세상이다. 이와 같은 인식은 21세기를 앞두고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대에 많은 지식인들이 우려하던 내용과 동일하다. 그 시대를 20대로 살아온 나도 이기주의가 팽배한 세상의 직간접적인 피해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하다. 


연탄재를 비웃지 말라던 어떤 시인의 부르짖음에서 알 수 있었던 것 처럼 우리는 참 뜨겁게 누군가를 사랑하기가 힘든 세상에 살고 있다. '나'만이 존재하고 '나'만이 보이는 것의 전부이다보니 '너'가 없고 '나와 다르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구조 속에서 서로를 할퀴며 살고 있는 게 우리네 모습이다. 이는 유사문화권에 속해있는 일본과 한국이 공통적으로 겪은 것이다. 


그는 이런 이기적인 세상에서 성공한 유별난 사람중 하나다. 일본에서 가장 성공한 경영인 세 명 가운데 하나로 손꼽힐 정도라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 셋 중에서도 가장 나은 사람이다. 치밀한 자기성찰, 인생 전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 이타적인 사상으로 남을 이롭게 하고 더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하고자 하는 그의 삶이 담긴 이 책을 읽을 때 어느 누가 감동하지 않을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사고방식에 대한 그의 생각이었다. 


인생(일)의 결과=사고방식×열의×능력


이 등식을 보여주며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이라고 역설한다. 열의와 능력은 항상 양의 값을 지니지만 사고방식만큼은 음의 값을 지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등식은 곱셈으로 이뤄져있어 사고방식이 음의 값, 즉 부정적이라면 결코 인생의 결과는 양의 값을, 긍정적인 결과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책 전반에 걸쳐 거짓말 하지 않기, 타인에게 피해주지 않기, 정직하게 행동하기, 욕심 부리지 않기, 자기 것만 생각하지 않기 등 어린 시절에 선생이나 부모에게 배웠으나 어른이 되어서는 잊어버리고 마는 단순한 규범들을 경영지침으로 삼아 성공의 길로 나아갔다. 그는 결코 경영학도나 세라믹에 정통한 공학도가 아니었음에도 교세라라는 최고의 세라믹 기업을 경영한 이다. 힘들고 어려울 때 야쿠자와 같은 조직 밑에서 일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다고 하지만, 모두 부동산에 투자하며 일확천금을 누릴 때 유혹도 많았지만 그는 '정직하게 땀흘려 일해 버는 것'만이 정도(正道)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기본에서 만큼은 타협하지 않는 그의 자세가 지금의 성공신화를 만드는 배경이었던 것이다. 


일본도, 한국도 돈을 좇아 가다 실패한 사람들로 수두룩하다. 많은 경영인들이 돈이 몰리는 곳이라면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며 돈과 권력을 얻기 위해서라면 신의성실함을 버리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 가운데 많은 노동자들은 고통을 겪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그가 경영했던 교세라와 KDDI는 건실한 기업으로 서있다. 그 기업의 노동자들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는 이 책을 통해 알 도리가 없으나, 튼튼한 기업 가운데 충분한 복지를 누리며 살고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개인의 통찰이 공동체의 성공으로 이어지기는 정말 힘든 일이다. 나 한 사람을 온전히 만들기도 힘든데 작게는 십수명, 크게는 몇만명에 달하는 기업의 노동자들 모두가 함께 뜻을 모아 전력으로 달리더라도 성공할까 말까한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나모리 카즈오는 보편적인 도덕을 기준으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룰을 세워 일관적으로 회사를 경영하며 존경을 받는 경영인이 되었다. 뿐만아니라 사회에도 그 열매를 환원할 줄 아는 지혜를 보여준다. 이 모두 현대 사회가 기업에 요구하는 기본적인 덕목이며 이나모리 카즈오는 벌써 수십년전 부터 이를 실천해왔다. 


아버지께서 이 책을 권하신 건 이러한 삶의 자세를 자식들에게도 배우게 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비록 아버지의 아들 딸은 지금은 별볼일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은 나는 이 책을 통해 배운 것을 삶을 통해 실천하며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고 싶다. 부모님의 입장에서 자식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 만큼 기쁘고 좋은 일이 어디 있을까. 


Posted by Cybercat
Books2013. 11. 12. 12:32




부도밭을 지나며


-정호승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눈 내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누군가 걸어간 길은 있어도


발자국이 없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


끝내는 작은 발자국을 이룬


당신의 고귀한 이름을 불러본다


부도 위에 쌓인 함박눈을 부르듯


함박눈! 하고 불러보고


부도 위에 앉은 작은 새를 부르듯


작은 새! 하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사람들은 오늘도 검은 강물처럼 흘러가


돌아오지 않지만


더러는 강가의 조약돌이 되고


더러는 강물을 따라가는 나뭇잎이 되어


저녁바다에 가닿아 울다가 사라지지만


부도밭으로 난 눈길을 홀로 걸으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린다


누가 줄 없는 거문고를 켜는 소리가


보인다 저 작은 새들이 눈발이 되어


거문고 가락에 신나게 춤추는 게 보인다


슬며시 부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맑은 미소가 보인다




※부도(浮圖): [불교]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


Posted by Cybercat
Books2013. 11. 12. 12:15



카르마 경영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출판사
서돌 | 2005-09-1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카르마-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진다.카르마는 업(業)이...
가격비교글쓴이 평점  




이나모리 카즈오(稲盛和夫) 전 교세라 회장의 「카르마경영カルマ経営」을 읽었다. 원래는 아버지께서 동생에게 먼저 읽으라고 권해주신 책인데 동생이 영 읽을 시간이 안되다보니 내게 왔다. 삼성의 누가 읽었네 CEO들이 강력추천한다네 하는 그럴싸한 겉포장이야 경영일반서적이 갖춰야할 덕목인 듯하다. 경영, 경제와 같은 실용학문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께서 어쩌다 이 책을 집으셨는지는 도통 말 수가 적으신지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왠지 우연히 집어 읽었던 책으로부터 상당한 통찰력을 얻으신 덕에 평생 안하셨던 독서권장을 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단숨에 읽어내려 두 시간 반 정도에 다 읽을 정도의 밀도를 가진 책이다. 중반 이후로부터는 거의 동어반복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서 강조하는 식의 내용이며 나중에는 은퇴후 불교에 귀의하면서 깨달은 점을 설파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경영인들이 왜 많이 읽었는지 알 것 같다. 서양의 경영일반지침서들이 알려주는 경영의 정도(正道)와는 다른 동양적인, 자기성찰적인, 불교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자기정진, 조화, 이타성 등 개인적인 윤리, 도덕적 성장의 차원을 회사라는 공동체를 너머 전인류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다면 성공한다고 이나모리 카즈오는 독자들을 설득한다. 과연 개인과 자회사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대다수의 기업주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길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돌아다니는 온갖 좋은 말들은 다 여기다 가져다놓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한 편에서 느낀건 여전히 그가 구시대적인 시각에서 노동과 개인의 행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나모리 카즈오는 과거 일본인들이 가졌던 근면성을 상기시키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정진이며 행복을 향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정시퇴근하고 안락히 노는 것을 비판하며 그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까지 한다. 그것은 이나모리 카즈오 개인의 경영인으로서의 성공에 대한 철학일 뿐 상당수의 노동자들의 것은 아니다. 경영인으로서의 비전을 가진 그는 행복하고 성공했겠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개인이 꿈꾸던 것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불행하게 산다는 점을 그는 경영인 답게 간과한다. 야근야근열매를 먹으며 메말라가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단위시간당 생산성은 OECD국가중 하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노동자들에 대한 선한 대우, 함께 더 나은 회사를 만들어 사원복지가 좋게 하자고 설득하는 그의 모습, 퇴임후 일관적으로 보여줬던 이타적인 자세, 모두를 위한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성취 등 이 시대의 CEO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디테일한 덕목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한국에서는 몇몇 대기업 임원진들이 숱한 물의를 일으키고도 배짱이지만, 이나모리 카즈오가 이야기하는 몇몇 사례들을 통해 그가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혜택과 지지를 아낌없이 보낸 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인격과 방향성, 자기개발노력은 분명히 직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은 거의 불교서적이다. 일반화하기 힘든 개인적 성찰에 관한 장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도 수미일관적으로 자기성찰과 일생을 통해 배운 것들을 통해 '성공하는 경영'이란 '도덕적이고 정직한 경영'이란 주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맹목적인 CEO들이 경영은 안하고 자기수행에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돈 버는 사람들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는게 위안이 된다. 


많은 경영일반 베스트셀러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도 읽는 이로 하여금 '내가 잘하면 다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기 뱃속만 채우는 대기업임원들에게 따끔한 회초리와 같은 책이다. '나만 잘 되면 돼'라는 과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구호처럼 많은 임원들이, CEO들이 이기주의적인 경영을 한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삼성의 누구는 이 책이 그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을게 분명하다. 여전히 많은 CEO들이 남을 위한 경영보다는 나와 가족을 위한 경영을 한다. 그런 가운데 감히 그는 남을 위하며 살고, 보편적인 도덕 기준 가운데 모두를 위해 경영하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경영인들이 경영의 태도를 바꿔나간다면 존경받으며 크게 성장하는 열매를 맛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Posted by Cybercat
Music2013. 11. 10. 14:41





Michael Bublé - "You Make Me Feel So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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