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14. 1. 7. 23:18




이 책을 만난건 지난 12월 28일 토요일이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덜덜 떨며 촛불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를 겸 해서 교보문고에 간 탓이었다. 역시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다르다고 했던가. 화장실에서 따순 물에 손 까지 씻고 나니 훈훈한 서점 공기에 좀 더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게다가 서점에 가면 기어코 책 한 권은 사고 나오는 성격이었던지라 그저 신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영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고발한다

저자
에밀 졸라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5-05-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격문의 꽃,〈나는 고발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시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사실 나는 신간보다는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서 읽히는 고전을 좋아한다. 고전은 탁상전시용 양장본으로 나온 것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문고본으로 출간된 쪽이 구비된 내용면이나 범주면에서 더 충실하다. 예전에는 페이퍼백이라고 불필요한 두꺼운 겉포장과 허벌나게 넓은 자간, 쓸데없는 삽화 등 불필요한 편집을 최대한 절제한 책들도 많이 나왔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윤이 많이 남지 않아서일까. 확실히 여백의 미학이 담긴 책들 - 글자수보다 공백이 더 많은 책들이 훨씬 많으니. 새로 간행된 그 유명한『총, 균, 쇠』도 23,000원때의 편집이 아닌 두꺼운 양장본 편집과 표지디자인으로 바뀌어 재간행되면서 자그마치 34,000원으로 뻥튀기를 했으니 할 말은 다했다. 안그래도 책 안읽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권이라도 이윤이 최대한 남게 만들어야 하는게 출판사의 생존전략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문고본 서가 앞에 섰다. 서있는것만으로도 내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느낌이 든다. 그 중 보통 길어야 300여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편집된 도서출판 책세상의 문고본에 눈길이 갔다. 촛불시위를 하고 온 터라 한 눈에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에밀 졸라의 저서는 사실 고교시절에 스치듯 지나간게 전부였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었지만 이름만큼은 기억났던게 다행이었다. 뽑아드니 표지에 간략히 이 책의 내용이 설명되어 있었다.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에 걸쳐 진행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국민을 좌우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 인종 차별 문제, 그리고 국가 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에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현대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드레퓌스 사건의 중심에는 에밀 졸라가 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로 국가 권력에 대항하고 당시 여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던 졸라는 시대의 증인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외친 졸라의 용기는 그가 쓴 시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졸라의 시론들을 모은 이 책은 행동하는 지식인 졸라의 면면을 보여줌과동시에 오늘날 지식인이 가져야 할 시대와 사회, 역사에 대한 의무와 역할을 가늠하게 해준다. 


-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나는 고발한다>, 책세상, 2005

표지1면의 책 설명





이 책을 읽는데 거의 1주일이 걸렸던 것 같다. 연말연시였던지라 분주하게 보냈던 탓도 있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계속해서 교차해서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에 도식적으로 이 책의 배경국가인 프랑스를 대한민국으로 바꾸고, 드레퓌스 사건을 관권부정선거사건이나 국정원의 서울공무원간첩만들기사건으로,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문제를 종북이나 빨갱이 낙인찍기 문제로 바꿔서 읽어도 하등 글 흐름에 문제가 없어보일 정도일 정도였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Degradation_alfred_dreyfus.jpg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대위가 군적박탈을 당하는 장면.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프랑스 내부에 있었던 온갖 부조리가 한 번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보불3차전쟁 패배 이후 독일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프랑스에는 표심에 전전긍긍하는 정치인들, 강성한 군부, 반유대주의, 언론의 선정주의와 왜곡편파보도가 일상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는 자유, 정의, 박애의 정신이 흘러넘치는 나라이며 그들의 혁명을 통해 전유럽에 자유와 혁명의 기치를 전파한 국가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지속된 전쟁으로 그 권한이 막강해진 군부에 의해 전사회적으로 보수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드레퓌스라는 군인이 스파이혐의로 고발된다. 나라를 적국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들으며 드레퓌스는 군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군적박탈과 종신유배를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확인할 수 없는 비밀문서를 근거로 그의 유죄를 판단했고, 그조차도 에스테라지라는 이에 의한 가짜조작문서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는 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군부의 정치적 이유, 즉 군부가 흔들려서는 국방에 문제가 생긴다는 판단때문에 군법정에 군부가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문서조작으로 유죄가 판단될 것이 확실했던 에스테라지는 오히려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드레퓌스가 일방적으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가 확산 일변도였던 것은 친귀족적인 자본가 유대인들에 대한 부르주아지들의 증오심이 배경이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드레퓌스는 참 알맞게도 알자스 로렌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J_accuse.jpg르로르지 1면에 게재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심어준 군, 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해 에밀 졸라는 분노하고 르 로르, 르 피가로 등의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고를 하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위해 싸워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당하고 드레퓌스처럼  유죄를 선고받으며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1년간 드레퓌스 사건의 본말이 세상에 새로이 드러나자 에밀 졸라는 용감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드레퓌스는 르네에서의 재심에서조차 유죄를 선고받게 되며 에밀 졸라는 또 다시 분노하게 된다. 이후 에밀 루베 대통령이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를 사면하게 된다. 문제는 사면의 전제는 유죄를 확증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유죄를 시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위 드레퓌스파들은 사면에 대해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1902년 의문의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고 그가 사망한지 4년이 지난 1906년이 되어서야 드레퓌스의 무죄선고가 이뤄졌다. 에밀 졸라에 대한 완전한 복권은 1908년 의회의 결정으로 그의 유해를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장된 팡테옹으로 이장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군부와 그에 동조했던 이들은 끝까지 처벌되지 않았다.




지식인 - 지적활동과 사회참여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에밀 졸라의 날카로운 판단력이었다. 그가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공개한 모든 내용들이 후에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저자도 해제(解題)에서 지목한 것처럼 그의 정보력과 판단력의 면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비난과 살해위협, 그리고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당당히 정의를 위해 싸웠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 '지식인'이라는 말은 경멸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고 한다. 다음의 내용을 보자. 


넷째, 드레퓌스 사건이 보여준 또 하나의 현대적 양상은 지식인의 정체성 확립과 사회참여 전통의 마련이었다. 드레퓌스파 식자들은 발언을 주고받고 행동을 조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회 집단을 형성했는데, 반드레퓌스파 진영에서 이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일컬어 '지식인'이라고 했다. 그 이전에도 지식인이란 단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현대적 의미, 즉 지적활동(사유의 영역)과 사회참여(실천의 영역)을 결합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해서이다. 드레퓌스 사건 이후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양심에 따른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필요'의 차원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이를테면 지금 이 시각 미국의 세계화, 아니 세계의 미국화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 그 미국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는 저 멀리 드레퓌스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p. 224~225,「해제-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中



그러나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즉 진실을 밝혀내고 온 세상에 그것을 전파하는 일에 충실했다. 글을 쓰는 이였기 때문에 그는 이 사명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전하려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그 과정 중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르 로르지에 게재된 <쉐네르 케스트네르>라는 기고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만일 정치적 이유가 정의의 도래를 지연시킨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을 후퇴시키고 악화시키는 새로운 과오가 되리라.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p. 29




에밀 졸라의 이 고결한 선언은 향후 그의 투쟁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지식인! 자신의 이익도 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진실과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을 선언하고 온힘을 다해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순간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고발한다>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 특히 국정원과 군부에 의해 주도된 관권부정선거의 현저한 문제, 철도사영화에 대한 정부의 거짓과 우익인사들의 선동에도 많은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고 또 더러는 정부기관의 연구지원금이 끊길까봐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안위와 영달이 우선인 개인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정의와 진실의 힘이 터져나오는 것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표창원, 권은희, 윤석열, 채동욱 등 진실을 희구하는 이들에 의해 사건의 본질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철도사영화와 관해서는 코레일 내부에서도 계속해서 휘슬블로워가 등장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의해 조작은폐되어온 사건들에 대해 본질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과연 소설가 답게 그의 글은 읽기 쉽고 가슴에 크게 남는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p.207부터 시작되는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진행과정을 먼저 읽고 보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려한 번역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종종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번역서들이 흘러넘치는 요즘에 이런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된 책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다.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중 이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잘 읽어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적시한 것 같아 소름이 돋을 것이다.  


당신이 진실을 매장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진실은 땅속에서 전진하며, 어느 날 문득 도처에서 발아하며, 마침내 거대한 복수의 초목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또한 더욱 나쁜 것은 당신이 청소년들의 정의감을 흐려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풍기 문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벌이 없다면, 범죄도 없는 셈이지요. 도대체 당신은 거짓과 부패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무엇을 배우기를 바랍니까? 국민에게는 교훈이 필요한데, 당신은 오히려 국민의 양심을 어둠 속에 몰아넣어 끝없이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p. 187, <공화국 대통령 에밀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中



과연 대한민국에 이 말을 들을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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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2013. 11. 12. 12:32




부도밭을 지나며


-정호승




사람은 죽었거나 살아 있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따뜻해야 하고


사람은 잊혀졌거나 잊혀지지 않았거나


그 이름을 불렀을 때 눈물이 글썽해야 한다


눈 내리는 월정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며


누군가 걸어간 길은 있어도


발자국이 없는 길을 스스로 걸어가


끝내는 작은 발자국을 이룬


당신의 고귀한 이름을 불러본다


부도 위에 쌓인 함박눈을 부르듯


함박눈! 하고 불러보고


부도 위에 앉은 작은 새를 부르듯


작은 새! 하고 당신의 이름을 불러본다


사람들은 오늘도 검은 강물처럼 흘러가


돌아오지 않지만


더러는 강가의 조약돌이 되고


더러는 강물을 따라가는 나뭇잎이 되어


저녁바다에 가닿아 울다가 사라지지만


부도밭으로 난 눈길을 홀로 걸으며


당신의 이름을 부르면 들린다


누가 줄 없는 거문고를 켜는 소리가


보인다 저 작은 새들이 눈발이 되어


거문고 가락에 신나게 춤추는 게 보인다


슬며시 부도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 손을 잡아주는


당신의 맑은 미소가 보인다




※부도(浮圖): [불교]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넣고 쌓은 둥근 돌탑.


Posted by Cybercat
Books2013. 11. 12. 12:15



카르마 경영

저자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출판사
서돌 | 2005-09-12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카르마-인생은 마음에 그리는 대로 이루어진다.카르마는 업(業)이...
가격비교글쓴이 평점  




이나모리 카즈오(稲盛和夫) 전 교세라 회장의 「카르마경영カルマ経営」을 읽었다. 원래는 아버지께서 동생에게 먼저 읽으라고 권해주신 책인데 동생이 영 읽을 시간이 안되다보니 내게 왔다. 삼성의 누가 읽었네 CEO들이 강력추천한다네 하는 그럴싸한 겉포장이야 경영일반서적이 갖춰야할 덕목인 듯하다. 경영, 경제와 같은 실용학문과는 거리가 먼 아버지께서 어쩌다 이 책을 집으셨는지는 도통 말 수가 적으신지라 알 길은 없다. 하지만 왠지 우연히 집어 읽었던 책으로부터 상당한 통찰력을 얻으신 덕에 평생 안하셨던 독서권장을 하신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침부터 단숨에 읽어내려 두 시간 반 정도에 다 읽을 정도의 밀도를 가진 책이다. 중반 이후로부터는 거의 동어반복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여서 강조하는 식의 내용이며 나중에는 은퇴후 불교에 귀의하면서 깨달은 점을 설파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니 경영인들이 왜 많이 읽었는지 알 것 같다. 서양의 경영일반지침서들이 알려주는 경영의 정도(正道)와는 다른 동양적인, 자기성찰적인, 불교적인 내용들로 가득하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자기정진, 조화, 이타성 등 개인적인 윤리, 도덕적 성장의 차원을 회사라는 공동체를 너머 전인류에게까지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다면 성공한다고 이나모리 카즈오는 독자들을 설득한다. 과연 개인과 자회사만의 이익을 도모하는 대다수의 기업주들에게 새롭고 신선한 길을 제시하는 책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돌아다니는 온갖 좋은 말들은 다 여기다 가져다놓은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한 편에서 느낀건 여전히 그가 구시대적인 시각에서 노동과 개인의 행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나모리 카즈오는 과거 일본인들이 가졌던 근면성을 상기시키며 '열심히 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정진이며 행복을 향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정시퇴근하고 안락히 노는 것을 비판하며 그것으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까지 한다. 그것은 이나모리 카즈오 개인의 경영인으로서의 성공에 대한 철학일 뿐 상당수의 노동자들의 것은 아니다. 경영인으로서의 비전을 가진 그는 행복하고 성공했겠지만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개인이 꿈꾸던 것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며 불행하게 산다는 점을 그는 경영인 답게 간과한다. 야근야근열매를 먹으며 메말라가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단위시간당 생산성은 OECD국가중 하위권에 속한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노동자들에 대한 선한 대우, 함께 더 나은 회사를 만들어 사원복지가 좋게 하자고 설득하는 그의 모습, 퇴임후 일관적으로 보여줬던 이타적인 자세, 모두를 위한 회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과 성취 등 이 시대의 CEO들이 반드시 갖춰야 할 디테일한 덕목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한국에서는 몇몇 대기업 임원진들이 숱한 물의를 일으키고도 배짱이지만, 이나모리 카즈오가 이야기하는 몇몇 사례들을 통해 그가 '열심히 일하는 직원'에게 더 많은 혜택과 지지를 아낌없이 보낸 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가 일관되게 보여주는 인격과 방향성, 자기개발노력은 분명히 직원들의 존경을 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마지막 장은 거의 불교서적이다. 일반화하기 힘든 개인적 성찰에 관한 장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도 수미일관적으로 자기성찰과 일생을 통해 배운 것들을 통해 '성공하는 경영'이란 '도덕적이고 정직한 경영'이란 주장으로 마무리를 한다. 맹목적인 CEO들이 경영은 안하고 자기수행에 빠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는 대목이기도 하지만, 돈 버는 사람들이 그러기는 쉽지 않다는게 위안이 된다. 


많은 경영일반 베스트셀러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도 읽는 이로 하여금 '내가 잘하면 다 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보여준다. 그러나 자기 뱃속만 채우는 대기업임원들에게 따끔한 회초리와 같은 책이다. '나만 잘 되면 돼'라는 과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의 구호처럼 많은 임원들이, CEO들이 이기주의적인 경영을 한다. 이 책을 읽었다는 삼성의 누구는 이 책이 그저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였을게 분명하다. 여전히 많은 CEO들이 남을 위한 경영보다는 나와 가족을 위한 경영을 한다. 그런 가운데 감히 그는 남을 위하며 살고, 보편적인 도덕 기준 가운데 모두를 위해 경영하라고 주장한다. 이 책을 읽은 많은 경영인들이 경영의 태도를 바꿔나간다면 존경받으며 크게 성장하는 열매를 맛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를 해본다. 



Posted by Cybercat
Books2013. 4. 17. 23:13

 

서경식, 「역사의 증인 재일조선인」, 반비출판사, 2012


작년에 산 책이지만 이래저래 제대로 읽지 못했었는데 오늘 시간을 내어 끝까지 읽었다. 대학시절 근현대사를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일제강점기와 해방기의 조선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접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이 책에는 그때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고통스러운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특별영주권자라는 이름으로 일본에서 차별받고 있는 재일조선인들의 역사를 쉽고 간결한 문장으로 접할 수 있었다.


재일조선인들은 일본국적자가 아니다. 해방이 되면서 일본은 법적으로 일본인이었던 내지(일본본토)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정해버리면서 비극은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남북으로 분단된 조국으로 돌아가기 힘든 상황, 경제적 기반이 전...부 일본에 있기에, 언젠가는 통일정부가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때문에, 귀국하는 배를 폭파시켜버린 일제때문에 결국은 일본에 눌러앉을 수 밖에 없었던 그들. 일본에서 경제활동을 하며 세금납부를 하고 지역사회에 일조하는 삶을 살아감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부는 그들을 외면했고 상당수가 남한 출신이건만 일본에서의 차별을 견디지 못하고 북한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 후에도 남게 된 재일조선인들은 국적이 없는 난민 취급을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편견과 차별을 이겨내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앞으로 이들에 대해 한국정부가 할 일이 많다. 이미 북한은 체제유지를 위해 밖의 일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상황인 만큼, 이들에 대한 적극적이면서 전방위적인 원조는 한국정부에 공이 넘어온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승만-박정희-이명박으로 이어져온 외면의 고리를 끊고 노무현 대통령이 했던 것처럼 이들의 존재를 직시하고 체계적으로 이들의 삶을 더욱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이 책의 저자인 서경식 선생님의 저자 특강 영상

 


이 책은 단지 재일조선인에 대해서만 쓴 책은 아니다. 차별의 근본적 원인을 깊이있고 논리정연하게 파고들어감으로서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책을 함께 찾아가는 가이드북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대학시절 근현대사 강의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우리 민족의 문제 - 이념갈등, 친일파,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등을 조금 더 깊이있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우리가 알아야 했던 바로 그 역사가 이 책에 씌여있다.

 

 

 

Posted by Cybercat
Books2011. 6. 28. 08:28

 아침에 Yes24에서 Neuromancer를 주문했습니다. 영문텍스트는 어렵지 않게 구했지만 서점에 갈때마다 사야지 사야지 하면서도 항상 잊고 오는지라 기억이 난 김에 인터넷서점을 통해서 구했지요. 어렸을때 이미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서 8bit 컴퓨터시절때 게임으로도 나왔던 뉴로맨서. 많은 분들이 뉴로맨서를 뉴-로맨서로 읽어서 로맨스 소설인줄 알고 집어들었다 낭패를 보신듯 한데, 다행히도 저는 그 전에 게임으로 접해서 스무살 되기도 전에 사이버펑크의 세계를 헤엄치고 있었습니다. 덕분에 공각기동대, 블레이드 런너, 매트릭스같은 작품들이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이해되기도 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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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어렸을 때 처음 접했던 건 게임잡지에서 소개된 뉴로맨서의 스토리였습니다. 당시의 게임잡지들은 독자적인 컨텐츠개발로 발간된다기보다 주로 일본과 미국의 게임잡지들을 번역해서 다시 게재하는 식으로 만들어졌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딴에는 게임을 카피해주는 게임샵에 가서 카타로그를 살펴보고 이 게임이 들어오면 꼭 하리라 했었던 게임중 하나였는데 유독 제가 살던 동네에만 들어오지 않아서 안타까워했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게임을 입수하지 못했기에 보상심리로 공략집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기도 했었던 뉴로맨서. 오늘 오후면 택배로 도착하겠네요. 

 당시에는 21세기가 되면 뉴로맨서같은 세상이 펼쳐질지도 모른다고 했었죠. 장기를 팔아 돈을 마련하고 그 대신에 진짜 장기에 가까운 기계로 대체하면서 사람은 더욱 강해지고 빨라지는 반면 컴퓨터와 사람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더욱 혼잡스러운 세상이 올거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런 세상이 다가오고 있는가에 대해선 저도 이렇다할 주장을 펼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상황으로 봐서는 기계부품이 아닌 진짜 재생된 신체로 대체하는 방향으로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고 있는게 아닌가 생각해보네요. 



-뉴로맨서 게임 플레이화면, 설명하는 분들이 참 재미있습니다.-

 어쨌거나, 실제 스토리는 웬만큼 읽어보긴 했지만 우리 말로 잘 번역된 것으로 읽어보고 더 깊이 생각해봐야지 하고 있습니다.
 

아, 참고로 뉴로맨서는 2012년 1/4분기 개봉을 목표로 현재 빈센조 나탈리(영화 「큐브」의 감독)가 영화제작중에 있다고 합니다. 이제서야 뉴로맨서를 영화화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이 생겼다고 해야할까요!
관련내용은 → http://www.slashfilm.com/neuromancer-preproduction/
http://www.planetdamage.com/2011/05/19/neuromancer-finally-in-pre-production-read-more-about-previous-producer-hell/
Posted by Cybercat
Books2010. 3. 12. 00:36


읽는데 1시간, 녹음하는데 1시간...총 2시간이 걸렸습니다.
아...힘들어요. 한 번 들어보실래요?
완전 바보같이 들릴지도 몰라...흙....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