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2014.01.07 23:18




이 책을 만난건 지난 12월 28일 토요일이었다. 추운 날씨에 밖에서 덜덜 떨며 촛불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화장실에 들를 겸 해서 교보문고에 간 탓이었다. 역시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다르다고 했던가. 화장실에서 따순 물에 손 까지 씻고 나니 훈훈한 서점 공기에 좀 더 몸을 맡겨보기로 했다.  게다가 서점에 가면 기어코 책 한 권은 사고 나오는 성격이었던지라 그저 신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마음이 영 채워지지 않았다.




나는 고발한다

저자
에밀 졸라 지음
출판사
책세상 | 2005-05-1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격문의 꽃,〈나는 고발한다!〉 우리는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시대...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사실 나는 신간보다는 오랜 기간 사람들 사이에서 읽히는 고전을 좋아한다. 고전은 탁상전시용 양장본으로 나온 것들도 많지만 그보다는 문고본으로 출간된 쪽이 구비된 내용면이나 범주면에서 더 충실하다. 예전에는 페이퍼백이라고 불필요한 두꺼운 겉포장과 허벌나게 넓은 자간, 쓸데없는 삽화 등 불필요한 편집을 최대한 절제한 책들도 많이 나왔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윤이 많이 남지 않아서일까. 확실히 여백의 미학이 담긴 책들 - 글자수보다 공백이 더 많은 책들이 훨씬 많으니. 새로 간행된 그 유명한『총, 균, 쇠』도 23,000원때의 편집이 아닌 두꺼운 양장본 편집과 표지디자인으로 바뀌어 재간행되면서 자그마치 34,000원으로 뻥튀기를 했으니 할 말은 다했다. 안그래도 책 안읽는 사람들이 많은데 한 권이라도 이윤이 최대한 남게 만들어야 하는게 출판사의 생존전략일 수 밖에 없다. 


어쨌든 나는 문고본 서가 앞에 섰다. 서있는것만으로도 내 지식의 양이 늘어나는 느낌이 든다. 그 중 보통 길어야 300여페이지 정도의 분량으로 편집된 도서출판 책세상의 문고본에 눈길이 갔다. 촛불시위를 하고 온 터라 한 눈에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의 소설가인 에밀 졸라의 저서는 사실 고교시절에 스치듯 지나간게 전부였던지라 기억이 가물가물했었지만 이름만큼은 기억났던게 다행이었다. 뽑아드니 표지에 간략히 이 책의 내용이 설명되어 있었다. 


1894년부터 1906년까지 12년에 걸쳐 진행된 드레퓌스 사건은 프랑스 국민을 좌우대결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 인종 차별 문제, 그리고 국가 폭력, 언론을 통한 여론 조작에 문제를 제기한 최초의 현대적 사건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에도 빈번하게 인용되고 있다. 이러한 드레퓌스 사건의 중심에는 에밀 졸라가 있다. '나는 고발한다!'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글로 국가 권력에 대항하고 당시 여론의 향방에 큰 영향을 미쳤던 졸라는 시대의 증인이자 실천하는 지식인의 표본으로 평가받는다.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으려는 것을 말한, 진실을 진실이라고 외친 졸라의 용기는 그가 쓴 시론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드레퓌스 사건과 관련된 졸라의 시론들을 모은 이 책은 행동하는 지식인 졸라의 면면을 보여줌과동시에 오늘날 지식인이 가져야 할 시대와 사회, 역사에 대한 의무와 역할을 가늠하게 해준다. 


- 에밀 졸라, 유기환 옮김, <나는 고발한다>, 책세상, 2005

표지1면의 책 설명





이 책을 읽는데 거의 1주일이 걸렸던 것 같다. 연말연시였던지라 분주하게 보냈던 탓도 있지만 이 책을 보는 내내 한국의 정치적 현실이 계속해서 교차해서 보였기 때문이다. 당장에 도식적으로 이 책의 배경국가인 프랑스를 대한민국으로 바꾸고, 드레퓌스 사건을 관권부정선거사건이나 국정원의 서울공무원간첩만들기사건으로, 유대인에 대한 인종차별문제를 종북이나 빨갱이 낙인찍기 문제로 바꿔서 읽어도 하등 글 흐름에 문제가 없어보일 정도일 정도였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Degradation_alfred_dreyfus.jpg알프레드 드레퓌스(Alfred Dreyfus) 대위가 군적박탈을 당하는 장면.



드레퓌스 사건


드레퓌스 사건은 당시 프랑스 내부에 있었던 온갖 부조리가 한 번에 터져나온 것이었다. 


드레퓌스 사건은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프랑스의 보불3차전쟁 패배 이후 독일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던 프랑스에는 표심에 전전긍긍하는 정치인들, 강성한 군부, 반유대주의, 언론의 선정주의와 왜곡편파보도가 일상에 흘러넘치고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는 자유, 정의, 박애의 정신이 흘러넘치는 나라이며 그들의 혁명을 통해 전유럽에 자유와 혁명의 기치를 전파한 국가이다. 그러나 그들의 실상은 지속된 전쟁으로 그 권한이 막강해진 군부에 의해 전사회적으로 보수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드레퓌스라는 군인이 스파이혐의로 고발된다. 나라를 적국에 팔아넘겼다는 비난을 들으며 드레퓌스는 군법정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군적박탈과 종신유배를 선고받게 된다. 그러나 재판과정에서 확인할 수 없는 비밀문서를 근거로 그의 유죄를 판단했고, 그조차도 에스테라지라는 이에 의한 가짜조작문서로 판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드레퓌스의 무죄를 확신하는 이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나 군부의 정치적 이유, 즉 군부가 흔들려서는 국방에 문제가 생긴다는 판단때문에 군법정에 군부가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문서조작으로 유죄가 판단될 것이 확실했던 에스테라지는 오히려 무죄판결을 받게 되었다. 드레퓌스가 일방적으로 이런 일을 당할 수 있었던 건 그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가 확산 일변도였던 것은 친귀족적인 자본가 유대인들에 대한 부르주아지들의 증오심이 배경이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드레퓌스는 참 알맞게도 알자스 로렌 출신의 유대인이었던 것이다. 



http://en.wikipedia.org/wiki/File:J_accuse.jpg르로르지 1면에 게재된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




에밀 졸라의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


죄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그에게 말할 수 없는 모욕을 심어준 군, 정부, 그리고 언론에 대해 에밀 졸라는 분노하고 르 로르, 르 피가로 등의 잡지를 통해 지속적으로 기고를 하며 드레퓌스의 무죄를 위해 싸워왔다. 그 과정에서 그는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당하고 드레퓌스처럼  유죄를 선고받으며 영국으로 망명하게 된다. 그 후 1년간 드레퓌스 사건의 본말이 세상에 새로이 드러나자 에밀 졸라는 용감히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러나 드레퓌스는 르네에서의 재심에서조차 유죄를 선고받게 되며 에밀 졸라는 또 다시 분노하게 된다. 이후 에밀 루베 대통령이 드레퓌스와 에밀 졸라를 사면하게 된다. 문제는 사면의 전제는 유죄를 확증짓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면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곧 자신의 유죄를 시인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위 드레퓌스파들은 사면에 대해 거세게 저항했다. 그러나 에밀 졸라는 1902년 의문의 가스 중독으로 사망하게 되고 그가 사망한지 4년이 지난 1906년이 되어서야 드레퓌스의 무죄선고가 이뤄졌다. 에밀 졸라에 대한 완전한 복권은 1908년 의회의 결정으로 그의 유해를 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장된 팡테옹으로 이장하는 것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범죄를 저지른 군부와 그에 동조했던 이들은 끝까지 처벌되지 않았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위키백과(한글)의 내용



지식인 - 지적활동과 사회참여


이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에밀 졸라의 날카로운 판단력이었다. 그가 <나는 고발한다! - 공화국 대통령 펠릭스 포르 씨에게 보내는 편지>에 공개한 모든 내용들이 후에 사실로 드러났다는 점이다. 저자도 해제(解題)에서 지목한 것처럼 그의 정보력과 판단력의 면밀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비난과 살해위협, 그리고 재정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에밀 졸라는 당대의 지식인으로서 당당히 정의를 위해 싸웠다. 


그런데 사실 당시에 '지식인'이라는 말은 경멸의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고 한다. 다음의 내용을 보자. 


넷째, 드레퓌스 사건이 보여준 또 하나의 현대적 양상은 지식인의 정체성 확립과 사회참여 전통의 마련이었다. 드레퓌스파 식자들은 발언을 주고받고 행동을 조직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하나의 사회 집단을 형성했는데, 반드레퓌스파 진영에서 이들을 다소 경멸적으로 일컬어 '지식인'이라고 했다. 그 이전에도 지식인이란 단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현대적 의미, 즉 지적활동(사유의 영역)과 사회참여(실천의 영역)을 결합시키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게 된 것은 바로 드레퓌스 사건을 계기로 해서이다. 드레퓌스 사건 이후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양심에 따른 지식인의 사회 참여가 '필요'의 차원이 아니라 '의무'의 차원으로 승화되었다. 이를테면 지금 이 시각 미국의 세계화, 아니 세계의 미국화를 위해 전쟁도 불사하는 미국, 그 미국을 필사적으로 거부하는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일반적 분위기는 저 멀리 드레퓌스 사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p. 224~225,「해제-드레퓌스 사건과 지식인의 양심」中



그러나 에밀 졸라는 지식인으로서의 역할, 즉 진실을 밝혀내고 온 세상에 그것을 전파하는 일에 충실했다. 글을 쓰는 이였기 때문에 그는 이 사명에 대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글쓰기를 통해 세상에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을 전하려 모든 것을 걸었다. 그는 그 과정 중에서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르 로르지에 게재된 <쉐네르 케스트네르>라는 기고문의 마지막 부분이다. 



만일 정치적 이유가 정의의 도래를 지연시킨다면,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을 후퇴시키고 악화시키는 새로운 과오가 되리라.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리라. 


p. 29




에밀 졸라의 이 고결한 선언은 향후 그의 투쟁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진실을 위해 싸우는 지식인! 자신의 이익도 되지 않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진실과 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을 선언하고 온힘을 다해 이 사건에 뛰어들었다. 순간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는 과연 어떠한가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고발한다>와 현재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건들, 특히 국정원과 군부에 의해 주도된 관권부정선거의 현저한 문제, 철도사영화에 대한 정부의 거짓과 우익인사들의 선동에도 많은 지식인들은 입을 다물고 또 더러는 정부기관의 연구지원금이 끊길까봐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있다. 개인의 안위와 영달이 우선인 개인주의가 팽배한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안에 자리잡고 있었던 정의와 진실의 힘이 터져나오는 것은 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표창원, 권은희, 윤석열, 채동욱 등 진실을 희구하는 이들에 의해 사건의 본질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철도사영화와 관해서는 코레일 내부에서도 계속해서 휘슬블로워가 등장하고 있다. 정부 여당에 의해 조작은폐되어온 사건들에 대해 본질이 드러나는 것은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진실이 전진하고 있고, 아무것도 그 발걸음을 멈추게 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의 문제에 대해서 고심하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과연 소설가 답게 그의 글은 읽기 쉽고 가슴에 크게 남는다.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은 p.207부터 시작되는 드레퓌스 사건의 역사적 배경과 진행과정을 먼저 읽고 보는 것이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수려한 번역 또한 이 책의 장점이다. 종종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를 번역서들이 흘러넘치는 요즘에 이런 번역이 깔끔하게 잘 된 책을 만나는 건 정말 행운이다. 


개인적으로는 책 내용중 이 구절이 가장 가슴에 와닿았다. 잘 읽어보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대로 적시한 것 같아 소름이 돋을 것이다.  


당신이 진실을 매장해봤자 소용없습니다. 진실은 땅속에서 전진하며, 어느 날 문득 도처에서 발아하며, 마침내 거대한 복수의 초목으로 자라날 것입니다. 또한 더욱 나쁜 것은 당신이 청소년들의 정의감을 흐려놓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청소년들의 풍기 문란을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처벌이 없다면, 범죄도 없는 셈이지요. 도대체 당신은 거짓과 부패 속에서 자란 청소년들이 무엇을 배우기를 바랍니까? 국민에게는 교훈이 필요한데, 당신은 오히려 국민의 양심을 어둠 속에 몰아넣어 끝없이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p. 187, <공화국 대통령 에밀 루베 씨에게 보내는 편지>中



과연 대한민국에 이 말을 들을만한 사람은 누구일까.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말에 대하여 어떤 생각을 할까.






Posted by Cyberc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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