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Log2013. 8. 7. 02:12




 일본 여행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여러 점포를 들락거리며 겪었던 점원들의 친절함에 관한 것이었다. 비록 가게 나름이긴 하지만 대체로 스미마셍 한 마디로 시작되는 이런 저런 질문에 끝까지 책임지고 알려주려 노력한다. 이런 점원들의 노력이 매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지사.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스타벅스 커피 에비스 가든 플레이스 타워점에서 느꼈던 것이었다. 뜨거운 여름, 땀에 흠뻑 젖어 지친 얼굴로 시원한 음료 하나를 주문했다. 그런 내게 밝은 미소와 Thank You 한 마디를 써서 건네주는 점원의 친절함은 시원한 그린티프라푸치노 한 잔보다 더 시원한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웬만한 스타벅스 매장의 서비스는 동종 업계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는다. 같은 돈 주고 마시는 커피라면 개인마다 다른 취향의 차이는 차치하고서라도 함께 가는 이와 기분좋게 마시고 싶은 나로써는 항상 스타벅스를 즐겨찾게 된다. 그리고 그 친절함을 일본에서도 경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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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onal Log2013. 8. 6. 04:19


며칠간 일본에서의 여정 가운데 TV를 볼 시간이 그다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TV를 켜면 나왔던, 기억에 선명히 남았던 광고 몇 개를 Youtube에서 찾아서 올린다. 사실 기억나는건 더 많은데 Youtube에서 찾을 수 있는게 많지 않았다. 





日清食品 カップヌードル「氷入れすぎた」水原希子

TV만 켜면 나왔던 그 광고 첫 번째. 화장품, 명품선전에만 나오는 미즈하라 기코인줄 알았는데 이런 광고를 찍다니! 그래서인지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나저나...이 컵라면, 꽤 맛있다. 







Sapporo Premium Alcohol Free - Keisuke Kuwata - Saegusa Kokoro

TV만 켜면 나왔던 광고 그 두 번째. 케이스케 쿠와타의 걸쭉한 노래와 코믹한 영상이 일품. 두 세번 보다보니 노래가 외워질 정도. 일본에는 한낮에도 맥주 광고가 가능한가보다. 담배도 자판기에서 파는 나라인 만큼 미성년자의 흡연/음주 문제에 있어서 자신이 있는 것 같다. 실제는 뭐 어느 나라나 그렇듯 술담배하는 미성년자가 있긴 하겠지. 어쨌거나 삿포로가 무알콜 맥주를 광고할 정도면 정말 자신있나보다.







30s 新垣結衣 CM KOSE コーセー 雪肌精 「すっぴん、がんばる」篇

TV만 켜면 나왔던 광고 그 세 번째. 아라가키 유이의 화장품 광고. 그냥  아...하고 넋을 놓고 보게 되는 그 광고.
맨얼굴이 좋아. 갑자기 들으면 곤란하긴 하지...그래서 요녀석을 바르며 홧팅하자는 광고. 





SUZUKI ワゴンR「発電エコカー」渡辺謙

인셉션에 등장했던 와타나베 켄의 스즈키 왜건R 발전에코카 광고.
이거 말고도 다양하게 있는데 와타나베 켄의 광고가 제일 호소력 있었던 것 같다. 



이 외에도 뭘 먹으면 아줌마가 막 젋어지는 애니메이션 광고도 있었는데 그건 못찾았다. 일본 광고를 다 알아들을 정도로 실력이 좋아졌어야 했는데...1년을 다른 언어에 쏟아부은 결과 지금은 그냥 폐 안끼칠 정도. 어쨌거나 일본 광고는 참 재미있다. 한국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벤치마킹할만한 좋은 광고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한국에도 일본풍 광고가 보이기도 하는데, 광고가 크리에이티브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카피의 영역이기도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8. 6. 03:34




:::Nike+를 이용해서 계측한 연간 러닝 데이터:::




  문명의 발전 덕분에 이제는 달리면서 GPS와 무빙센서를 통해 자신의 달리기 데이터를 꾸준히 기록할 수 있다. 굳이 Nike+제품을 이용하지 않아도 안드로이드폰 유저들은 이와 관련된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아 이용하면 비슷한 정도의 기록은 가능하지 싶다. 그러나 대체로 최신 안드로이드폰이 한 손에 쥐고 뛸 정도로 작은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주머니나 암밴드를 사용해야하지 싶다. 그런데...안드로이드폰용 암밴드가 있었던가...아이폰이나 아이팟은 이런 면에서 참 좋은 것 같다. 나는 대체로 아이팟을 이용해서 뛴다. GPS기능이 없긴 하지만 꽤 정확하게 거리측정도 해주고 특히나 만보계가 있어서 뛰기 싫은 날에는 적당히 걸으면서도 이용이 가능해서 좋다. 하지만 아이폰을 이용한다면 더욱 구체적이고 쓸모있는 정보를 기록하며 뛸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암밴드를 사지 않아서 일단은 손에 쥐고...oTL...


 6월 하반기부터 뛰기 시작해서 벌써 8월이다. 3개월째 러닝을 하니 이제는 안뛰면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 정도다. 하지만 며칠째 더위먹어서 헤롱거린 결과 8월 러닝은 그다지 많지 않지 싶다. 그리고 운동화는 정말 내 발이 맞는 제대로 된 것을 구해야겠다. 지금 신고 있는 녀석도 나쁘진 않지만 계속 이것만 신고 달리다보면 쿠션감이 점점 안좋아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달리기 속도는 점점 개선되고 있다. 적어도 평균 6분/km 선이다. 사실 이 평균속도는 달리기 기록 초반과 후반에 마무리 걷기까지 기록하기 때문에 그런거고 실제로는 3~5/km대로 달리고 있다. 가을철에 있을 마라톤대회의 10km부문에 참여할 목적으로 달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달에는 적어도 3분/km대로 속도를 늘려야겠다. 


 아울러 몸무게도 더 줄여야겠다. 현재 84kg. 일본여행 후 86kg까지 급격히 불어난 몸무게를 원래대로 돌려놓지 못하면 몸이 배겨나지 못할게 뻔하다. 9월이 되기 전까지 80kg대로 조정하는게 목표. 적당히 먹고 단백질 위주로 식사를 하니 벌써 몸에서 반응이 온다.


 아직까지는 스쿼트나 런지같은 다리근육을 강화하는 운동은 하지 않고 있다. 다음 러닝때부터 15개씩 3세트로 해둬야겠다. 웨이트는...덤벨 사기 귀찮으니 2L 물통을 양손에 쥐고 해볼까 생각 중이다. 섭씨4도의 순수한 증류수 1L가 1kg이니...대충 2L는 2kg이라고 보고 하면 될 듯 하다. 


 건강상태는...그다지 양호하지 못하다. 토, 일요일 양일간 더위에 시달려서 그런지 오늘 기어이 비상신호가 왔다. 덕분에 푹 쉬었지만 내일은 어떨지 걱정이다. 벌써 새벽3시니 아침 러닝은 물건너갔고 아무래도 저녁 러닝을 해야겠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8. 6. 02:43

 한참 날씨가 좋았던 봄에는 영화도 보러 다니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곤 했는데 날씨가 더워지고 나서부터는 그렇게 잘 다니던 영화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간단히 커피 마시는 것도 그만큼 되었다. 


  이건 필력 탓인가. 아니면 날씨 탓인가.


  필력을 탓하자니 내 머리속에, 마음속에 담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달리 설명할 방도가 없어진다. 날씨를 탓하자니 방에 에어컨도 떡 하니 갖춰놓은 괜찮은 조건에서 꾸준히 해보고자 했던 것을 다시 하지 못하는 사태가 '또' 벌어진 것을 설명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게으르게 삶을 산 것도 아닌 나름 치열했던 수개월 이었건만.


  확실히 영화평을 쓰면서 새로운 시도를 한 건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영화도 좋고 저 영화도 좋은 무난한 성격에 평이란 것을 하는게 상당히 어렵게 느껴졌던게 사실이다. 게다가 영화블로거들이 얼마나 많은가. 어떤 이는 그 길로 전문영화평론가의 길을 걸어갈 정도라 하니 처음 시작한 나로서는 기가 죽을만 한 일이다. 그렇다고 그렇게까지 잘 쓸 필요는 없는 그저 그런 영화감상문 정도로만 그치는 블로그를 만들자니 기껏 공들여놓고 뭐하는건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보다 결정적으로는 여전히 '생각이 다른 자'는 '적'이란 식으로 반응하는 이들이 많은 이 분야의 특성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별점 다는거에도 심각한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많은 판국에 기나긴 시간과 공을 들여 블로그평을 쓰면 뭐하나 싶었다. 뭐 그렇게까지 반응을 일으킨 글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해보니 페이스북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브랜드 커피와 관련해서 개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비난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요지였는데, 달린 댓글은 하나같이 '나는 믹스커피가 좋아요'였다. 브랜드 커피를 마시는 것은 비난받아도 된다는 소리인가. 그렇게 뚜렷하게 요지를 써놨건만 돌아오는 대답은 이런식이니 진지하게 글 쓸 맛이 나나. 게다가 개중에는 '브랜드 커피를 마심으로써 가난해진다'면서 '가난을 선택해놓은 주제에 복지정책에 불만이 많다'는 어딘가 모자란게 많은 반응도 있었다. 이렇게 말을 써서 좀 그렇지만...병신같아서 그냥 차단. 


  무슨 글이나 말을 쓰거나 하든 간에 조심해야 할 것이 글을 쓰는 테크닉에 관련된 것 뿐만은 아닌 것 같다. 그 글을 보는 사람들이 누구며, 또한 그들이 어떤 반응을 할 지 까지도 생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언제부터 글을 쓴다는 것이 이런 것이 되어버렸나. 언제까지나 조곤조곤히 자기의 생각을 꾸준히 써나가며 그에 공감하는 이들과 친분을 쌓고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한 것이 소셜미디어의 본래 목적이다. 그러나 이제는 매사 전투적인 말들에 치여 살고 있다.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심지어 블로그조차도 안전지대는 되지 못한다. 


  물론 이 곳처럼 인기가 없으면 상관없겠지만.


  이쯤 되면, 인터넷이 발명되기 훨씬 전부터 PC를 끼고 살고 또 지금도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만큼, 이 곳(?)에서의 생활도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꾸준함과 논리정연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많은 이들과 행복하게 생각을 주고 받는 장으로 만들어가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발전의 장, 행복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 


  그러려면...세상에 대해 많이 움츠려들었던 내 마음부터 열어봐야겠다. 



2013년 8월 6일. 새벽.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23. 02:18

 

 

 

 

오늘은 <덕수궁프로젝트> - 덕수궁미술관전을 보고 왔다. 생각보다 빨리 다가온 가을 날씨를 지금 아니면 만끽하기 힘들기에, 조금 더 열심히 다녀야겠다 하던 차에 알게 된, 정말 괜찮은 현대미술전시회다. 가슴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이 곳 경운궁(덕수궁)에서 작가들의 역사적 상상력이 어떻게 발휘되고 있는가를 초점으로 관람하면 더욱 이해하기 쉬운 전시회로 다가올 것이다.

 

오늘은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출발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한 번에 몰아서 보게 되었는데, 시간과 공을 들여 봐야하는 비디오아트, 설치미술을 감상할 때는 좋은 태도는 아닌 것 같다. 물론 내가 예술적 시각이 충만하다면 한 번만 봐도 느낌이 올텐데 왠지 모르게 최근에는 그게 잘 다가오지 않는다. 그래서 한 작품당 5분 정도는 들이고 있다. 이런 태도는 사진을 볼 때 참 유용하고 좋다.

 

안 좋은 습관이 든 건 딱 하나, 감상을 노트하지 않는 습관이랄까. 글로 표현해낸다는게 너무나도 어색하게 느껴진 게 언제였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쨌거나 다음부터는 조금씩이라도 기록을 해야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오늘 관람객중 하나가 보여줬던 건데, 입장시 받을 수 있는 브로셔를 노트로 사용하는 방법인 것 같다. 작품에 대한 설명도 되어있고 하니 조금 더 깊이 관람할 수 있지 않을까.

오늘 가장 인상깊게 봤던 건 서도호 작가의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이란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너무 모이는 바람에 전부를 감상하지를 못했던게 아쉬움으로 남는다. 정영두 퍼포머가 검은 보료 세 채 위에서 취하는 모든 몸사위가 "국가 존망의 위기 상황에서 군주의 신분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고종이라는 인물의 내적 갈등과 불안"[각주:1]을 표현해준다.

 

여기서 작품 감상 전부를 소개할 수는 없지만, 역사적 배경과 오버랩되는 이들 작품에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아마 이 곳에 오는 한국인이라면 모두 동일하게 느끼는 것이리라. 단지 가슴아픈 역사라고만 해놓고 어딘가 자신의 기억속 한 켠에 처박아두고 사는 게 우리들의 모습이다. 이제는 먹고 살기 힘든 세상, 과거야 어찌됐던 상관없다는 태도로 살아온게 지난 수십여년간의 우리들의 삶 아니었던가. 이제는 이렇게 예술로도 재발견되고, 역사적으로도 재발견된다는 것이 적잖이 큰 위로가 된다.

 

수준급의 예술 작품들이다. 그 의의를 찾아내는데는 평범한 관람객으로서는 알아내기는 힘들겠지만, 잠시간 머무르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작품에 대한 예를 지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가족단위로 찾아온 분들이 꽤 됐었는데, 여전히 자녀들이 여기저기 시끄럽게 뛰어다니도록 내버려두는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나도 할 말은 없다. 직원에게 제지받을 때까지 전화를 받고 있었으니... 앞으로도 조심해야겠다.



 

 

 

노란 불빛이 보이는 곳은 석어전. 이수경 작가의 <눈물>, 김영석 작가의 <Better Days>를 만나볼 수 있다. 건너편으로 덕흥전이 보인다. 하지훈 작가가 <자리>라는 작품으로 이 곳에서 벌어진 변형과 왜곡을 형상화하여 보여준다. 전각에서 펼쳐지는 설치예술품들은 직접 안에 들어가서 볼 수 있도록 되어있다.

 

 

밖에 나오니 벌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주말을 맞이해서 많은 이들이 이 곳을 찾아왔다. 역시 밤9시까지 개장하는 곳인지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았다. 특히 오늘은 전통음악콘서트가 개최되는 날이었던지라 나가는 길에도 사람들이 계속 입장하고 있었을 정도.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깊이있게 감상하고 가야겠다. 오랜만에 카메라에 필름도 로딩해서 가봐야겠다.

 

 

 

 

 

  1.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프로젝트" 안내서 中 1. 서도호, 함녕전, <함녕전 프로젝트-동온돌, 덕수궁 함녕전>을 참고.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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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21. 02:35

 오늘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종로로 향했다. 최근에는 어머니께서 준비해주신 잡곡밥을 챙겨먹는다. 흰쌀밥보다 훨씬 맛있고 좋다. 식사를 하고 나니 어제부터 시작한 일 때문에 홈페이지 제작업체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리고 형으로부터 전화. 아무래도 제대로 일이 시작되려면 다함께 모여서 준비를 해야지 안그러면 일 자체가 붕 떠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오후 4시경에 광화문역 도착. 이제는 익숙하다. 핸드폰 배터리가 50%가량 남아서 스타벅스로 향했다. 그 곳에서 필리핀산 치키타바나나와 아메리카노를 주문. 5시까지 지난 번에 샀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를 읽었다. 확실히 지도가 없이 역사책을 본다는게 조금은 벅차다. 그리고 이제까지 알던 서양고대사-중세사의 개략이 이제는 가물가물한게 문제. 책 중반으로 갈 수록 속도가 더디긴 했지만, 그래도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매우 즐거웠다.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필리핀산 치키타 바나나. 크리미하고 향이 진해서 좋다. 누가 여기서 바나나를 시켜먹냐고 그러는데, 사실 향취가 제대로 된 녀석을 마트에서 골라먹는게 쉬운일이 아니란 걸 생각한다면, 1,200원 들여서 여기서 사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오늘 "마호메트와 사를마뉴"를 보면서 참고했던 게르만족의 로마제국침략도. 훈족의 서진만 없었다면 아마 로마는 멸망하지 않고 오래토록 지속되었을 지도 모른다.

 

 

 

5시가 지나서 바로 서울역사박물관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지난번에 미처 보지 못한 "열도의 아리랑" 제2부 - 니시키에로 보는 근대 일본의 왜곡된 시선을 관람했다. 니시키에란 비단을 이용한 다색판화. 생산성이 좋아서 그림애호가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많이 배포되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서 일제는 적극적으로 조선반도는 원래 일본땅이라는 허구의 역사를 일본국민들에게 심어주고 일제에 저항하는 모든 것에 대해 증오심을 갖게 했다. 신화속의 존재인 진구황후가 삼한을 정벌했다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제물포조약의 빌미가 되었던 임오군란의 왜곡, 러일전쟁의 왜곡 및 한반도내 모든 전쟁에서 조선인의 피해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키는 등 니시키에는 일제의 프로파간다를 대중들에게 심어주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였다. 가장 놀랐던 부분은 화투와 비슷한 카드게임, 그리고 주사위보드게임을 통해서 아이들에게까지 일제는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대한제국과도 전쟁중이라는 인식을 보편화시키는데 일제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강덕상 재일역사학자가 평생에 걸쳐 모은 니시키에를 한데 모아서 어떻게 그들이 어떻게 역사왜곡을 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니시키에를 전부 보고나서 바로 옆의 제1전시관의 영상관으로 들어가 강덕상 선생님의 다큐를 다시 한 번 시청했다. "일본의 천황제는 조선을 무시하지 않는 한 존속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낮시간에는 이 곳에 견학을 온 학생들, 50년대의 장년들, 그리고 외국인들도 와서 이 전시회를 꼼꼼히 살펴보고 갔다. 그 중 일본인과 함께 온 사람도 있었던 것 같은데 조용했던 터라 그들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 아무래도 함께 있는 한국인도 한국근대사를 이렇다하게 일본어로 전달하기 힘들었던게 아닐까. "한국인들에게 이 시기의 일본사람들은 다 나쁜 사람들이에요"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물론 전부 다 그렇지 않다는 건 서로 잘 알고 있었으리라. 강덕상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것은 다 이러한 역사적 왜곡을 바탕으로 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나오는 길에 관동대지진에 관련된 부분을 사진찍어왔다. 이번에 읽는 책을 완독하고 나서 관동대지진과 대학살사건에 대한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다. 물론 강덕상 선생님이 쓰신 책도.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근처의 경희궁으로 갔다. 저녁 늦게까지 개장하는 몇 안되는 고궁중 하나다. 이날 뮤지컬을 하는 것 같았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경희궁은 일제시절 많이 파괴되어서 지금 남아있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경희궁에서 나와 덕수궁으로 갔다. 사진은 덕수궁의 입구인 대한문. 대한제국의 역사가 서린 유서깊은 곳이다. 내부에서는 너무 어두워서 사진촬영을 제대로 할 수 있었던게 그다지 많지 않았다. 덕수궁의 역사는 대한제국과 그 궤를 같이 한다. 덕수궁 주변에는 당시 서구열강들의 대사관들이 있었고, 고종은 영국인 Harding의 설계로 석조전을 건축했다. 이후에 이 곳은 미술관으로 전용되었고 지금도 서쪽 건물은 덕수궁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덕수궁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한창 미술전이 계속되고 있다.

오늘 덕수궁 프로젝트에서 봤던 것은 류재하 작가의 중화전을 캔버스로 한 <시간>이란 작품과 이수경 작가의 설치미술인 <눈물>(석어당)이었다. 저녁 늦게 정신없이 왔던 터라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보진 못했지만, 덕수궁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들의 역사정신표현은 한국인이라면 가슴 절절히 전달되고도 남을 좋은 작품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운이 좋았던게 덕수궁 풍류전이 개최되는 날이었다. 이날 이벤트는 고종이 커피를 즐겼던 곳으로 유명한 정관헌에서 개최되었는데, 마침 경기민요 무형문화재인 이춘희 선생님의 창부타령을 들을 수 있었다. 내 눈으로 직접 이춘희 명창을 보게 될 줄이야!

 

 

돌아오는 길에 태극당에 들러 친구가 부탁한 카스테라와 파운드케익을 샀다. 매우 장사하기 싫은 표정의 점원이 참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오랜만에 301번을 타고 친구가 일하는 곳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먹을까 했었는데 일단은 배가 고파서 근처 분식집에서 오징어 덮밥을 먹었다. 그런데 이제는 밖에서 먹는 음식들 양이 많게 느껴진다. 오늘 그렇게 많이 다녔는데도 이러니 참...

 

종로에는 참 볼 것이 많다. 우리나라 역사가 살아 숨쉬는 곳이기에 그저 그 곳에 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다. 오늘 이렇게 수확한 것이 많아서 너무 기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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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9. 15. 02:19

 오늘은 예정했던대로 서울역사박물관 815광복절기념 특별기획전시중인 "열도속의 아리랑"전을 보고 왔다. 광화문역에서 내려 새문안교회방향으로 약 1km도 안되는 거리에 위차한 서울역사박물관. 예전에 외국친구와 함께 서울의 역사를 간략히 보러 왔다가 방대한 자료량에 그만 3시간을 넘게 배회했던 기억이 있었던, 스케일이 상당한 박물관이다. 아니나다를까, 일본어를 할 줄 알기에 준비되었던 사료들에 담긴 일본어자료까지 꼼꼼히 살펴보다 기획전1실만 보는데 2시간 반이 걸렸다. 아마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그렇듯 눈대중으로 보고 넘어간다면 1시간 반 정도면 충분한 스케일이리라. 하지만 내가 어디 그런 사람인가.

 

 박물관은 원래 사진촬영이 안되는 곳인지라 오늘 올릴 사진자료는 없다. 그 대신에 브로셔 자료를 촬영해 올린다.

 

 

 

 

 

 

 

 오늘 내가 보고 온 건 Part1 '재일동포 백년의 꿈'이었다. 브로셔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1. 식민지 국민으로, 2. 타향살이, 3. 차별철폐를 위하여, 4. 언제나 마음은 고향에, 5. 역경을 딛고, 6. 영상관 으로 구성되어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이기에 쉽게 보고 넘어갈 수 없었다. 특히 여섯번째 영상관에서 나오는 재일역사학자가 출연하는 다큐는 소장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 생각해보니...스마트폰으로 노트를 쓸 걸 그랬다. ㅠ.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일본정부가 재일동포들의 귀국을 막고, 이승만정부가 무시했다는 부분이었다. 그게 수많은 재일동포들이 입북하게 된 원인이었다니...그들은 고국을 그리며 수많은 차별과 냉대를 겪으며 밑바닥 생활을 했건만, 고국은 그들을 무시했다니...그래도 아직까지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 하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고교 역사시간때 들었던 관동대지진사건에 대해 오늘은 자세한 자료를 확인할 수 있었다.「五十円十五銭」(고쥬엔쥬고센). 관동대지진때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을 학살할 때 조선인들을 찾아내기 위해 사용했던 말. "조선인을 구분하는 법"이란 일제가 발행했던 자료 중엔 "조선인들은 반탁음을 잘 발음하지 못한다"란 내용이 있는데 대부분의 조선인들은 코쥬엔쥬코센이라고 발음했다고 한다. 이를 이용해서 자경단원들은 아무 죄 없는 6000여명의 조선인들을 학살했고(그나마도 제대로 조사된 수치가 아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재일미대사관직원은 "일본 정부는 이런 사태를 지켜보고만 있다. 이런 일본은 야만의 나라임이 분명하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직도 전시관 내에 흘러나오던 당시의 가요들, 영상관 다큐에 출연하던 강덕상 선생님의 아리랑이 귀에 선하다. 천천히 돌다 보면 장군의 아들에서 학생들이 합창하는 봉선화도 흘러나온다.

 

 

 

TBS방송에서 소개된 "재일동포 100년사 - 열도속의 아리랑" 영상

 

 

 

"그때를 아십니까"영상에 삽입된 "봉선화", 보고있노라니 화장품 이야기로 흘러간다.

 

 

 

 

서울역사박물관에 다녀오신 분이 영상으로 만드신 이번 전시회의 대강

음악은...음...그렇다 치더라도 꼼꼼하게 제작된지라 소개해둔다.

 

Youtube에 검색해보니 "장군의 아들"을 항시 상영해준다.

링크는 다음과 같다. http://youtu.be/EidX2DPPSBw

 

연합뉴스 관련자료는 다음과 같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8/10/0200000000AKR20120810157900005.HTML?did=1179m

 

강덕상 재일한인역사자료관장님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http://blog.daum.net/mchjun/1438

 

 니시키에(다색판화)로 보는 근대일본의 왜곡된 시선은 시간이 없어서 다 보질 못했다. 내일이라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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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6. 22. 21:41

1. 여행은 인생의 가장 좋은 친구다. 여행이야말로 고뇌하는 젊은이에게 해결책을 주며, 견문을 넓히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들을 배우고 깨닫게 해주는 좋은 선생님이다. 나이든 이, 허약해진 이들에게는 일상에 찌든 삶을 잠시 멈추고 한숨 돌리게 함으로서 새로이 힘을 얻게 하는 명의(名醫)다. 사랑에 빠진 이들에게는 서로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는 눈을 가리운 큐피트이며, 헤어짐의 아픔을 지니고 떠난 이에게는 누구보다도 가장 따스한 위로를 해주는 좋은 카운셀러다. 이런 좋은 친구를 항상 가까이 하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소위 기성(旣成)세대의 구태의연한 삶의 태도를 답습해가는 세상의 99%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달리. 역동적으로 인생의 주인되는 삶, 주어진 귀한 생명을 바르게 경영해가는 삶을 누리며 살아간다.

 

2. 그래서 사람들은 떠난다. 매 순간마다 그들은 프론티어가 되어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몇박 며칠의 여행은 순식간에 지나가겠지만, 그 동안 여행이란 친구가 그들에게 말해준 지혜는 가까이 한 사람의 인생을 한 번 더 풍성한 삶의 단계로 끌어 올려준다. 새로운 사람, 새로운 장소, 새로운 공기, 새로운 빛. 그 가운데서 호흡하면 호흡할 수록 사람의 내면은 마치 초봄에 내리는 단비를 머금으며 돋아나는 새싹처럼 다시 새로이 갱생된다. 그렇기에 여행하는 사람의 인생은 여행하기 전과 후가 다를 수 밖에 없을게다.

 

3. 내게도 이번 부산여행은 그런 의미로 다가온다. 본디 어디론가 새로운 곳을 탐험하는 것을 사랑하던 내가 수년간 책만 죽도록 파고 들었으니 병이 날 수 밖에 없었으리라. 반복되는 일상으로 곤핍해있던 나를 살릴 유일한 방법은 여행을 떠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행도 꾸준히 다녔어야 했던걸까. 4월 오사카 여행으로 몸살이 나 5월 한 달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나마 오사카에서 얻었던 좋은 기운들로 나는 인생의 새로운 단계를 살아나갈 수 있는 첫 걸음을 내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두 번째로 발을 내딛은 곳은 연초부터 꼭 가고자 위시리스트에 넣어놨던 부산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나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버리고 오게 될까.

 

 

 

4. "부산은 마실나가는거지." 학교선배님이 트위터를 통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KTX고속철도로 세시간 정도면 금방 도착하는 가까운 도시가 부산이다. 그게 올림픽대로를 타고 집에서 홍대까지 왕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란게 놀랍다. 그러니 마실나간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개인적으로 부산은 코흘리개 시절 가족들과 함께 피서로 한 번, 군에서 수송작전으로 아시아드경기장까지 한 번, 총 2번 부산을 만났다. 하지만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가에 대해서는 하나도 몰랐다. 다행이도 여러 활동을 통해 함께 만나왔던 좋은 분들이 나오셔서 이번 부산여행을 함께 해주기로 하셨다. 과연 부산은 어떤 곳일까. 그 곳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5. 밤새 잠을 설치고 서울역에서 KTX를 탄 것은 아침10시 30분경. 도착하니 오후 1시쯤이 되었다.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그녀의 기분 좋은 축복을 받으며 내린 부산역. 마치 인천국제공항의 축소판같은 느낌이었다. 다시 눈이 빛나고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움직임을 눈에 담기 시작했다. 새롭고 신기한 것들이 내 뺨을 간질거리며 스쳐 지나갔다. 마치 고양이가 놀랬을때마냥 온 몸의 잔털이 곤두서는게 느껴졌다. 여기가 부산이구나. 혼잣말을 하고 있노라니 김형에게 연락이 왔다. 부산역 분수광장에 30분 전부터 나와 기다리셨다고. 함께 만나기로 한 조군은 금방 집에서 출발했다고 하셨다.

 

 

 

6. 여정은 아직 정하지 않은 채로 부산역에서 재회의 감격을 누리고 있노라니 그제서야 시리얼과 우유로 대충 끼니를 때운 배가 나를 우렁차게 불러제낀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게 먹는게 아니겠는가. 우리 셋은 조군이 그렇게 자랑하던 부산의 밀면을 먹기로 했다. 밀면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냉면과 비슷한 음식이다. 함흥냉면처럼 맑은 육수를 내서 시원하게 내는 것이 있는가 하면 해주냉면처럼 뜨겁고 맵다 못해 속이 아릴 정도로 화끈한 비빔냉면이 있듯, 부산에는 매콤하고 감칠맛나는 밀면이 있다. 조군은 개금, 가야, 초량 이렇게 세 군데의 밀면집이 유명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도착한 시간이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고, 그 중 가장 유명한 개금밀면까지는 버스로 30여분을 가야한다고 해서 일단 부산역앞의 초량밀면집으로 향했다. 

 

7. 김형은 비빔밀면, 조군과 나는 물밀면을 주문했다. 주문한 밀면이 나오기까지 우리는 조군이 최근에 입수한 Nikkor 85mm 1.8F렌즈의 성능에 감탄하며 카메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행이다. 아직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에 관한 지식이 녹슬지는 않았구나. 이 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부산으로 놀러온 분들이 가득했다. 가장 주목됐던 건 기타까지 들고 찾아온 대학생들. 별 것도 아닌데도 까르르 웃어제끼며 밀면을 뱃속에 채워넣은 그들은 바로 바다로 향해 나가는 듯 했다. 5분쯤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한 밀면이 나왔다. "우리도 촌티내며 사진을 찍어 볼까?"라며 김형이 제안을 했다. 우리도 웃으며 밀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리고 5분도 안돼 밀면그릇 바닥을 봤다. 이 풍성한 양과 깊은 감칠맛을 나는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감탄해하던 내게 조군은 "형, 개금이 더 맛깔나요"라며 웃었다.

 

 

 

 

8. 배를 가득 채웠으니 이젠 차를 마셔야지. 우리는 남포동에 있는 롯데백화점 옥상 엔제리너스로 가기로 했다. 일단 바로 뒷골목의 차이나 타운을 지나며 눈요기를 하고나서 1호선을 타고 부산역에서 남포역으로. 지하철은 외견상 서울과 다를게 없었는데 왠지 모르게 더 신선하고 좋아보였다. 이게 여행자의 눈일까. 길바닥 조차도 서울보다도 깨끗해보이고 공기도 더욱 신선하게 느껴졌다. 더구나 흐린 날씨가 처음엔 걱정되었는데 그 흐림조차도 내게 행복의 요소가 되어주기까지. 여행하는 이의 마음은 이렇게 풍성해질 수 밖에 없는 것일까.

 

 

9. 김형과 조군 둘 다 카메라를 들고 나왔는데 과연 남포동은 볼 거리가 참 많은 곳이었다. 가장 놀랬던 것은 남포역 지하아케이드. 마치 난바역 지하아케이드를 보는 듯한 느낌. 오사카때 여행을 같이했던 김형이 오사카가 그렇게까지 신기하게 느껴지지 않았을만 했다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그 정도로 이 곳의 분위기는 마치 데자뷰를 경험하듯 내게 다가왔다. 우리는 지하철역과 이어진 통로를 통해서 롯데백화점 옥상정원으로 향했다. 들어가는 방향조차 타카바야시 백화점 입구와 비슷한 느낌이라니.

 

10. 옥상정원은 부산 전역을 조망할 수 있는 라운지로 꾸며져 있었다. 한 쪽으로는 영도와 항만지역을, 한 쪽으로는 부산타워와 육지쪽을 조망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있었는데 양 쪽이 이어져있지는 않았다. 잠시 둘러보다보니 어디서 많이 본 익숙한 장면이 펼쳐졌다. 이 곳이 전망이 좋다보니 남산타워 주변 철조망에 걸려있는 사랑의 자물쇠들처럼 여기서도 수백개의 자물쇠들이 진풍경을 연출해내고 있었다. 가장 특이했던 것은 진짜 수갑이 자물쇠를 대신해서 걸려있었던 것이었다. 아쉽게도 유일한 촬영수단이었던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해서 사진으로 담지를 못했다.

 

 

 

11. 한바퀴 둘러보고나서 우리는 엔제리너스커피에서 영도쪽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셨다. 고고학을 전공했던 조군은 역시 전공자답게 부산의 역사를 조곤조건 읊어내며 그 자리에서 바라보이는 곳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다. 특히 가장 기억에 남는건 영도할매전설. 그 할머니가 어떤 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수호신같은 존재로 여겨지나보다. 영도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은 모두 풍족하고 넉넉한 삶을 살게 해주지만, 그곳을 떠나면 폭삭 망하게 만든다는 이야기. 그래서 영도사람들은 영도에서 피치못하게 이사를 갈 때엔 영도할매가 못보게 길일을 따져 영도에서 바라보이지 않는 곳으로 밤에 이사를 간다고 한다. 참 질투심 많은 할매로고. 나는 그런 복일랑 필요없으니 그저 이곳에서 좋은 추억이나 주시오 라고 되뇌이며 영도를 바라봤다. 영도(影島)는 한자말 그대로 '그림자섬'이라고 한다. 다른 곳은 쨍쨍하게 개어있을 때도 영도는 구름이 가득 끼어있거나 안개로 가리워져서 영도라고 한단다. 영도대교는 일제시대때 도개교로 만들어졌다가 배가 다니지 않으면서 그 기능을 상실했지만, 이제는 관광목적으로 다시 도개교로 복구과정 중이라고 했다. 그 때가 되면 다시 와봐야지. 그리고 우리는 다시 카메라 이야기와 모터쇼 모델들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남자들은 남자들이다.

 

 

 

12. 차를 마시며 핸드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우리는 백화점에서 내려왔다. 오는 도중에 백화점별관에서 진행되던 천장분수쇼를 보고 근처에 있는 용두산공원으로 향했다. 부산타워가 있는 그곳이다. 인기있는 장소라서 그런지 캐노피가 설치된 에스컬레이터가 공원입구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좌우로 붙여진 용두산공원 캐치프레이즈가 참 인상적이었다. "용두산 공원에 오면 사랑이 이뤄집니다." 남자들끼리 가니 사랑이 이뤄질 리가 있나. 피식 웃으면서 이상한 투구를 머리에 쓴 이순신 동상을 지나 최지우가 기다리고 있는 벤치로 향했다. 이 플라스틱모델은 해외팬들을 위해 만들어놓은 것이리라. 조금은 조악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의외로 보는 각도에 따라 최지우의 얼굴이 투영되는 괜찮은 녀석이었다. 나도 관광객이니 사진을 찍었다. 최지우야 아무렴 어떨까 하면서.

 

 

 

13. 공원건물에는 전망대와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부산타워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가 있다. 조금 기울어져버리는 바람에 부산타워는 한창 공사중이라고 한다. 주변에는 어김없이 자물쇠들이 가득했다. 전망 좋은 곳은 연인들이 많이 찾게 마련. 비둘기들 사이로 너댓 커플들이 도란도란 이야기 중이었다. 이곳에는 일본인 커플들도 꽤 찾아왔던 것 같다. 자물쇠에 달린 태그에 일본어로 빼곡히 씌어진 것을 읽어보노라니, 아, 사랑은 역시 국적불문이로구나 하는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14. 조군은 부산의 명소들을 항공사진으로 볼 수 있는 터치스크린패널 앞에서 이곳 저곳을 보여줬다. 역시 활동력있는 조군. 모터쇼가 있었던 벡스코, APEC국제회의장, 광안리, 해운대 등의 해수욕장, 철새도래지, 광안대교 등등을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다는게 신기했다. 하지만 직접 가보는 것만큼은 아니리라. 김형은 한 일 주일 정도면 충분히 부산의 이곳 저곳을 볼 수 있을거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일 주일 일정으로 와봐야지. 그러면 아마 거의 부산 사람이 다 되어서 가지 않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15. 내려오는 길에는 은행나무가 가득했다. 부산시에서 설정한 트레킹코스로 이 길의 이름은 갈맷길. 삼십년수들이 우거진 이 길은 연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있으리라. 그래도 은행 떨어지는 날에는 피해야지 않을까. 내려가는 길에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와 장난감 강아지를 묶어놓고는 '개조심'간판을 내놓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무심코 지나치려다 그 센스가 괘씸해서 다시 올라가 아이스크림을 사면서 주인장을 만나봤다. 의외로 주인아주머니는 "저 개 때문에 손님들이 많이 찾아요"라고 방긋방긋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셨다. 강아지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게 지금와서는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가게에서 조금 더 내려오다보면 커피샵이 두 군데 있다. 기억속에 아련한 재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스트로 피아졸라였던가. 잠시 들러서 차를 마시고 갈까 했지만 조금 전에 엔제리너스에서 마신 관계로 서둘러 책방거리로 향했다.

 

 

 

 

16. 보수동 책방거리는 조군이 정기적으로 들르며 사진을 찍는 곳인데 조군의 사진을 보면서 정말 부산에 가면 가보고 싶었던 그런 곳이었다. 서울에는 선진화의 명목으로 계속 이어지는 개발의 여파로 찾아보기 힘든 헌책방 거리. 오밀조밀한 골목에 책방들이 모여 책들 특유의 냄새를 풍기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냥 감탄사를 연발하던 내게 김형은 이 곳도 예전처럼 그렇게 활성화되어있진 않다고 말을 덧붙였다. 조금은 슬픈 이야기. 이곳에서는 야채고로케를 먹었다. 오사카신세계거리에서 먹었던 고로케가 생각이 났다. 조군은 고로케에 구멍을 뚫고 야채속이 들어있는 데다 케찹을 쭉 짜넣어서 먹게 해줬다. 좋은 곳에서 이렇게 맛있는 걸 먹을 수 있다니. 한 입 한 입 먹을 때마다 입 안에 퍼지는 야채와 케찹의 향연은 아마 잊혀지지 않을 좋은 추억이 될 것만 같았다.

 

 

 

 

17. 바로 길건너쪽엔 재래시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입구에 설치된 지도를 살펴보니 전체 블럭이 남대문이나 동대문처럼 시장골목이었다. 부산은 일본과 가깝기 때문에 일본에서 생산되는 공산품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으면 금방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아니나다를까. 수입품상점에는 우마이보우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오사카에 가서도 먹어보지 못한 말로만 듣던 우마이보우를 여기서 맛보게 되다니. 달달한 맛을 생각하고 입에 문 순간 확 퍼지는 옥수수내음과 짠 맛. 아...아마이보우가 아니었던게다. 시장을 지나가면서 카라의 STEP도 들을 수 있었다. 역시 카라의 인기는 대단하구나. 우리는 일본K-POP팬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샵에도 들렀다. 역시 간판스타는 카라와 곱상하게 생긴 남자배우들. 김형은 카라의 소이카라 광고이미지와 걸즈파워 이미지를 찍어넣은 타올을 구매했다. 어딜 가더라도 팬은 팬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18. 남포동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BIFF(부산국제영화제)가 개최되었던 거리였다. 바닥에 깔린 무대가 공연때엔 위로 올라온다는 말에 깜짝 놀라고, 유명배우들의 핸드프린트를 구경하면서 또 놀라고.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꼬치를 사먹고 있어서 놀라고. 부산에는 어묵꼬치에 떡을 함께 꽂아서 익혀먹는다고 한다. 서울에는 그저 너부데데한 부산어묵을 잘 접어서 꼬치에 꽂은 녀석만 익혀먹는 걸로 알았다고 하니 김형과 조군은 놀라면서 부산어묵은 원래 이렇게 먹는거라고 했다. 서울에서도 그렇게 해주면 정말 인기있을텐데. 나중에 트위터를 통해서 학교선배님이 여기서는 꼭 꼬치를 먹고 가라고 하셨는데, 이미 우리는 해운대로 1003번 급행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19. 버스타기전 이야기. 잠시 우리는 자갈치시장에 들렀다. 여기서 뭔가 먹을거는 아니지만 부산에 왔으니 자갈치시장은 보고 가야했기에. 이 날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바다의 모습은 커플들의 천국이었다. 갈매기떼가 커플들이 나눠주는 과자를 먹기 위해 연신 선회비행을 하고 커플들은 꺄르르 웃어제끼며 그 상황을 즐겼다. 사진을 보면 혼자서 온 사람들도 꽤 많았었는데 왜 커플들이 그렇게 눈에 띄었는지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배가 고팠다. 더는 거기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었기에 우리는 서둘러 해운대로 향했다.

 

 

 

 

 

20. 꽤나 먼 거리였다. 아니 퇴근길이라 사람들이 우격다짐으로 타기 시작하고 느릿느릿 가는 버스 탓에 사람들은 조금씩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열심히 거리를 구경했다. 왜관에서 부산까지 수송작전훈련을 하면서 지나왔던 길도 지나쳤다. 간간히 조군이 주변 풍경을 가리키면서 관광용터치패널에서 보여준 곳들을 꼼꼼히 짚어줬다. 사진으로만 봤던 초고층 아이파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벡스코가 보이는 쪽에서는 한동안 우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던 허윤미 모델의 이야기를 잠깐 나누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40여분만에 우리는 해운대까지 왔다.

 

21. 바다. 코흘리개 시절때 봤던 그 바다가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해운대는 많이 변해있었다. 그때는 그저 콘크리트로 대충 타설된 거리와 맞닿은 백사장일 뿐이었는데 오늘날의 해운대는 젊음과 문화가 흘러넘치는 거리로 바뀌어있었다. 내 기억의 해운대는 20년 전의 것이었으니 제대로 out of date였던게다. 이날은 날씨가 궂어서 수영이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맨발로 바닷가를 거닐었다. 질 수 없었다. 나도 부리나케 신을 벗고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포말이 내 발목을 시원하게 감쌌다. 그리고 문득 마음속으로 물결치며 달려드는 아련한 그리움... 마냥 겉으로는 바다가 좋은 꼬마녀석들 처럼 파도에 맞춰 소리지르며 펄쩍펄쩍 뛰고 있었지만, 그리운건 그리운게다.

 

 

 

 

22. 그렇게 펄쩍거리며 뛰노는 나를 피사체삼아 김형과 조군은 사진을 찍어줬다. 그러다 조군은 갑자기 크게 울렁거리며 쏟아진 바닷물에 그만 신발이 젖어버렸다. 해운대와서 신발이 젖은건 처음이라며 어이없어하던 조군. 우리는 족욕장이 있는 곳으로 가서 간단히 채비를 정리하고 근처 식당가로 향했다.

 

 

 

 

 

 

23. 꼼장어. 서울에서는 주로 훈제식으로 판매되는 꼼장어다. 나도 그런 꼼장어를 기대하고 앉았건만...웬걸 이건 도막이 나있어도 열심히 꿈틀거리는 살아있는 꼼장어였다. 무척이나 신기해하는 나를 보며 김형은 '꼼장어는 이렇게 먹어야지 맛있지'라고 하시며 빙긋 웃었다. 조군과 나는 열심히 꿈틀거리는 꼼장어들의 최후를 영상으로 담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훈제된 것 보다 이렇게 먹는게 맛이 좋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간에도 무척이나 먹고 싶은 그 매콤한 맛. 우리는 소금구이까지 먹고 마지막으로 밥을 볶아 먹고 나왔다. 값은 꽤 나갔지만 그래도 그 가격에 이 만큼 넉넉하고 풍성히 먹을 수 있다는 게 정말 부러웠다. 순간, 부산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24. 우리는 과자와 음료를 사들고 다시 바다로 향했다. 바다에 왔으니 꼭 맥주를 마시며 파도소리를 들어야 한다면서. 맥주의 탄산이 터지는 소리와 파도소리가 함께 울리는 그 느낌은 아는 사람만 아는게다. 해운대공원 거리에서는 거리악사들이 나와 각종 악기를 연주하고 있었다. 아무런 레파토리도 없이 그저 두들기는 북소리에 한 흑인이 프리스타일랩을 멋들어지게 불러냈다. 옆에서는 저녁공연을 준비하는 밴드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우리는 다시 파도가 넘실거리는 백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5. 그곳에서 김형은 자신의 핸드폰에 녹음된 여러 음악들을 들려줬다. 그래도 가장 흥겨운건 카라의 음악이었다. 다같이 응원할 기세로 듣다가 녹음해두려고 생각하니 다른 곡들로 바뀐다. 억지를 부려서 카라의 스피드업을 틀었었는데, 혼자서 즐거웠는지 노래를 따라부른거도 나 혼자였다. 조군은 열심히 맥주캔을 바다를 배경삼아 찍고 있었고, 또 다시 파도의 습격을 받았다.

 

26. 너무나도 소중했던 백사장에서의 시간. 그녀에게 보내려고 우리 이러고 놀고 있다며 히히거리며 녹음한 파일에는 파도소리가 잔잔히 녹아들어 있었다. 김형과 조군과는 서울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너무 짧아서 항상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이렇게 서로간에 회포를 풀게 되어 너무나도 행복했다. 담에는 꼭 부산 정모를 하자며 일어선 시각이 저녁 11시. 아뿔사, 상경열차가 없구나.

 

27. 부산은 서울보다 대중교통이 일찍 끊긴다고 한다. 아침 일찍 출근해야하는 김형은 서둘러서 귀가길로. 조군과 나는 다시 부산역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조군은 인스탁스포토프린터로 해운대에서 찍은 내 사진 하나를 출력해줬다! 서울에 올라올 때 마다 해준거도 없는 내게 이렇게 세심하게 해주다니. 사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더할나위 없는 정말 좋은 선물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다시 모터쇼 이야기와 우연찮게 나온 비밀이야기도 두런두런 나눴다. 너무 늦은 시각이라 조군은 집앞에서 먼저 내리고 나는 부산역 정거장에 내려 숙박할 곳을 찾았다.

 

28. 건너편은 그다지 좋은 시설은 아니라는 조군의 말과, 사람은 아무데서나 누워서는 안된다는 부모님의 엄격한 가르침이 떠오른 나는 그 곳에서 가장 괜찮아보이는 녀석을 골랐다. 이름하야 토요코-인 호텔. 물론 다른 싼 호텔들은 싱글룸이 없었다. 신기했던건 호텔앞에 하루 숙박비용이 큼지막하게 씌여져있었던 것. 혼자 있으려니 갑자기 피로가 쏟아져 왔다. 토요코-인의 숙박계에 싱글룸 하나를 달라고 하니 스모킹룸 하나가 있다고 한다. 보통같았으면 다른 곳을 찾아서 헤맸겠지만 이미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각이었다. 귀찮은 마음에 그 방을 달라고 했다. 1803호. 아마 잊혀지지 않을 방이지 싶다.

 

29.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예기치 않았던 숙박. 그런데 오히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졸린 눈을 부릅뜨고 기록 사진을 찍고, 샤워를 하고, 살짝 허기가 돌아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우유를 사서 먹었다. 호텔에 준비된 물품들을 뒤져보니 편지지가 있었다. 아마 수년전에 넣어진 오래된 것이리라. 볼펜을 꺼내고 편지를 썼다. 그 동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들을 써내려갔다. 하지만 이 편지는 어떻게 전달해야 하는걸까. 마음 속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걷잡을 수 없었기에 짧은 시간에 쏟아내버린 수많은 말들. 사실 그렇게 어리숙한 사람이 아니건만, 마치 사춘기를 갓 지난 사내처럼 그러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자. 그리고 좋은 꿈을 꿔야지. 좋아하는 사람에게 웃음을, 행복을 주고 싶으니까.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자자.

 

30. 밤새 에어컨 삐걱이는 소리,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사투를 벌였다. 정작 잠든 시간은 3시간 정도.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으러 내려갔다. 부산을 찾아온 전세계 사람들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건만, 말을 걸면 서로 친절하게 대답하고 웃어주었다. 혼자 온 여행객들끼리는 뭔가 통하는게 있었는지 한 번씩은 뭔가 유의미한 내용이 담긴 눈빛을 교환하는 듯한 분위기도 연출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일본의 여행객들은 회화를 취미로 하는 동호회의 사람들이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 일본어로 용기를 내서 인사를 던지고 그림에 대해서 물어봤다. 회색 콘크리트로 가득한 풍경이 이렇게 다채롭게 변신할 수 있는 건 아마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있기 때문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31. 전날과는 다른 맑은 날씨. 너무나도 맑은 날씨다. 사진을 찍고 부산역 옆에 있는 스타벅스에 가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어딜가나 꼭 가야 성미가 차는 스타벅스. 단지 여기서 잠시간 몸을 담았다는 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깊은 애정때문일까. 짙은 커피향으로 내 온 몸을 감싸며 KTX 출발 시간을 기다렸다. 조군이 문자메시지로 신발원(신파유엔)이란 중국식제과점에서 공갈빵과 꽈배기를 꼭 사가라고 했다. 출발 15분전에 나서서 무려 만원어치나 사들고 서울로 가는 열차에 몸을 담았다. 옆자리엔 서울까지 가시는 할머니가 큰 짐을 두 개나 들고 앉으셨다. 그 짐을 머리위 선반으로 올려드리고, 창 밖으로 지나가는 부산 풍경을 보며 아쉬운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굿바이 부산. 굿바이, 고마운 사람들. 한동안 서울에 몸담고 있을테니, 그때까지...안녕.

 

 

epiloge.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지 정착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여행을 다녀온 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다. 여행을 다녀오며 내가 얻고 또한 버린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 안에서 치유되고 나아졌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내가 한 걸음 내디딜수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으며, 망각의 세계로 내던져버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다시금 돌아온 일상은, 한 편으로는 반갑고도 좋았다. 하지만 이 곳에 영영히 있지는 않으리라는 결심과 함께, 이제는 모든 것이 어색해졌다. 아프락사스 신화. 껍질을 깨고 나와야만 하는 새처럼, 나는 정체된 현실이란 껍질을 꺠고 탈피하지 않으면 죽어버릴 것이다. 내게 주어진 인생을 아름답고 충실하게 살아가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이러한 나를 떠나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것 뿐이다. 살기위해서는 여행을 하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살아간다는 노마드(Nomad)의 삶. 내가 얻은 것은, 아니 되찾은 것은 이 노마드로서의 정체성이다.

  고독한 삶. 아마 우리 노마드들의 일생을 그렇게 표현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분명 정착하는 이야말로 누군가에게 애정을 품고 사랑하며 함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것일게다. 하지만 이 노마드들에게도 사랑은 있다.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살아갈 줄 아는 마음이 있다. 다만 그 사랑때문에 이제까지의 모든 것을 버리고 정착한다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 뿐이리라. 결과적으로 노마드에게 남는 것은 냉철한 이성,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준비된 가방이다.

 우리가 노마드로서 잃어버린 것은 단지 정착에 대한 애틋한 마음만은 아니었다. 끊임없이 여행하는 자는 늙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며, 매 순간 새로운 자신으로 발전해나간다. 나이듦이 죽어감을 의미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떠남으로서 젊음을 성취해낸다.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장 높은 곳, 가장 외로운 곳, 정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역설적이지만, 노마드는 정체된 순간의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게 된다. 노마드가 가진 딜레마다.

 하지만 같은 곳을 향해 나아갈 여행자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부터는 모든게 달라지리라. 더 힘차게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고 알아가게 되리라. 노마드라고 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이기에.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2. 6. 2. 03:14

꿈.

꿈을 다시 꾸고 싶다.

꿈이 있는 사람을 만나고

꿈이 있는 사람과 대화하고

꿈이 있는 사람과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1. 10. 20. 03:31


 항상 가지고 다니는 가방에는 구하라의 사진이 열쇠고리처럼 달려있습니다. 사실은 핸드폰고리로 사용하라고 일본 팬분께서 선물로 주신건데 아시다시피 아이폰에는 핸드폰고리를 걸 수 있는 부분이 없잖아요. 그래서 항상 들고 다니는 가방 한 쪽에 주렁주렁 달아서 들고 다닌답니다. 걸을때 마다 철걱철걱 소리가 나긴 하지만 뭐 사람들이 그렇게 신경을 쓰는 편도 아니고 카밀리아의 상징인 선물들을 항상 지니고 있다는 것이 내심 좋기도 하구요.

 그런데 그 고리들 덕분에 의외의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그제 맡겨놓은 코트를 찾으러 집앞 세탁소를 찾아갔을때였어요. 가방을 카운터 테이블에 올려놓고 바로 코트를 입으려고 부시럭 거리고 있는데 가게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께서 제 가방을 뚫어져라 쳐다보는겁니다. 

 



 "에...뭐 뭍었나요?"
 "아니 이 예쁜 아가씨는 누구에요?"
 "아...그거요...그건..."
 "애인인가부네!"
 "에??? 아니 그게..."
 "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처음이네..."
 
 "아...연예인이에요."
 
 이 아름답고 고결한 분은 연예인이고 제 애인은 아니라는 식으로 말씀드렸는데...의외의 반응이 돌아왔습니다.

 "어머, 그렇구나~! 좋겠네~!"
 "에...에?!!! 아니 그게..."
 "그나저나 이 코트 끈은 이렇게 묶는게 이쁜데...안묶을려구요?"
 "네, 그냥 주머니에..."
 "그럼 그냥 넣으면 되겠네~!"

 그리고 왠지 모르게 후다닥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분위기가 돼서 나왔는데...왠지 등 뒤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어머...저 총각 연예인이랑 사귄대!!"였습니다.

 저는 졸지에 이렇게 그분들에겐 그 사진의 주인공과  사귀는 사람이...어쨌거나 팬이랍시고 가지고 다니던 사진 덕에 이런 소리까지 듣다니...저도 그렇게 상태 나쁜 남자는 아닌가봅니다. 하하핫~☆ >_<;;; ...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마 그 분들 오늘 라디오스타 보면서 그 사진에 나온 연예인을 보셨을텐데...oTL...용 모씨와 만나는 중인 구 모씨란걸 아셨을텐데...OTL........아 이거 그 세탁소 어찌 다시 가나요...(털썩)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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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