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2013. 12. 14. 02:57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조금 더 손보아서 올립니다. 사진은 페이스북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에 게재된 성균관대13학번 신민주 학우의 대자보 사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같은 학교를 06년도에 졸업한 선배 이동우입니다. 신민주 학우의 용기있는 대자보 글에 감동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측의 대자보 및 학생활동에 대한 사보타주는 여전한가 봅니다. 현재 학내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며 신민주 학우에게 답신합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97년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오고 학교 전반적 분위기가 보수화 일변도로 흘러가면서 결국 탈운동권 보수총학까지도 들어서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을 침묵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건 비단 세상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6월혁명세대가 정권을 쥐고 나서는 모든게 민주적으로 잘 풀릴거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문인지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 학점과 출세 이외의 것에는 적잖이 무관심해졌고, 덕분에 뭔가를 개선시켜보고자 했던 학생들의 움직임은 시작조차도 못해보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측의 잘못을 지적하며 총학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저 저는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만 하고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나 학우들의 복지문제에 함께 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고작 학교축제에 연예인 불러 다같이 노는 이벤트 위주의 활동들이 새롭고 더 나아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저는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생인데다 작금의 교내 사정을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 보면, 당시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학교가 학우들의 부르짖음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불의가 현저하지만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학우들이 신민주 학우처럼 부르짖고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많은 학우들은 당장에 기말리포트와 기말시험 준비에, 취업준비에 분주한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은 제가 학교 다닐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졸업하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철도파업에 이어진 수천여명의 부당대량해고, 밀양송전탑사건과 주민들의 잇달은 자살, 정부여당에 반대하면 종북인사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각종 사건들, 총체적 관권부정선거같은 불의로운 사건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아이돌의 노래나 춤, 막장드라마나 소비하고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갈 뿐입니다. 학교에서 보고 들었던 문제들에 침묵하고 인기 연예인이 행사로 오는 축제 정도에 만족하던 습성이 사회에서도 똑같이 발현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음을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종종 부당한 일에 입을 다뭅니다. 왜일까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란 생각 때문입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짓밟혀도 지금 당장은 내가 짓밟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내 안위 하나도 지키기 힘들다는 인식때문에 결국은 내 목을 조르게 될 일들을 당하는 친구들의 일에 침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으로 측은지심을 듭니다. 약자를 측은히 여겨 돕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군자의 기본이요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더욱 부유해질 수록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보다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해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법제화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학문은 더욱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건만, 그 학문을 배워도 그걸 학내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취업도 힘든 현실에 학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의에는 침묵하는 방법에 익숙해집니다. 지금 기말시험 기간처럼. 


 불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부역은 바로 침묵입니다. 불의에 대해선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그 침묵은 당장 지금의 나를 안녕하게 만들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궁극적으로 나를 안녕하게 해줄 정의로운 사회를 파괴하고 말겁니다. 그렇게 침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오늘을 보십시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안녕할 수 있겠는지요.


 신민주 학우님. 그리고 성균관대학생 여러분. 또한 이 글을 볼지도 모를 많은 '안녕하지 못한' 시민 여러분. 이런 현실 앞에 저는 결코 안녕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학우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저는 결코 떳떳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진정으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힘냅시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일때, 그리고 행동으로 나설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성균관대98학번 사학과 졸업생

 이동우 올림



Posted by Cybercat
정치/사회2013. 11. 19. 01:47



 여러모로 지난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민주주의의 후퇴가 사방팔방에서 목격되고 있다. 그 주체를 굳이 현 정부여당으로 지목하는건 어렵지 않은 일이나 그들의 힘의 배경이 되는 건 어디까지나 그들의 지지자들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단순히 작금의 민주주의의 후퇴가 정치권만의 차원이 아니라 국민들의 일생생활의 차원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에 들어선 반민주, 반민족적 집권세력의 정당성을 확립하고 이를 저지하려는 이들에게 무차별적인 권력의 횡포를 일삼았던 이들의 후예, 그리고 그 시대를 살아왔던 이들 가운데 이들을 열렬히 지지해마지 않았던 자들이 완전히 복귀하는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를 확립하는데 피흘리고 고통받아야 했던 수많은 민중들의 실패로 각인되고 곧이어 정치적 무기력증으로 진화되었다. 


 현 야권의 전략부재와 정치자원낭비는 군사독재와 공포정치로의 회귀를 두려워했던 국민들의 뜨거운 지지 가운데에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들은 정치적 대안의 부재와 현저한 군사독재세력의 레짐복귀 가운데 또 다시 할 말을 잃어버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 처럼, 무한궤도처럼 무한의 되먹임과정은 여권의 전횡을 가능케 해주는 가장 큰 배경이 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은 또 다른 분열을 확인했다. 이명박 대통령때까지는 6월항쟁의 민주국민들의 열망을 짓누르던 남북갈등과 동서갈등이 여권의 주된 정치적 무기였지만, 현 정부가 입각하는 시기부터는 청년층과 중장년층간의 분열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과거 군사독재시절이 평화롭고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이들과 민주주의 의식으로 깨어난 이들간의 분열이었고 반민주와 민주세력간의 대결이었다. 


 그런 가운데 반민주세력의 간발의 승리는 21세기 대한민국에 군사독재 추억팔이정치를 가능케 하는 시발점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부분의 측근들을 박정희 대통령 당시에 충신으로 일했던 이들 위주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들의 복귀야말로 2013년 3/4분기부터 4/4분기까지에 이르는 정치적 퇴행을 가장 잘 설명해준다. 공약은 전격적으로 폐기되고 검경과 국정원의 불법적 전횡은 철저히 가려지며 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들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철저히 짓밟히기 시작했다. 모든게 과거와 비슷한 양상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것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심각할 것을 항상 예고하고 있다. 


 현재 최고의 이슈는 청와대 경호원이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끝난 국회의사당에서 민주당의 국회의원을 무력으로 제압한 사건이다. 한편에서는 제2의 차지철의 등장이라며 현 정부의 민주주의와 의회에 대한 저열한 의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비판하고, 한 편에서는 불법주차한 자기 차 걷어차는 사람을 가만 내버려두냐는 식의 비판을 하고 있다. 다소간 어이없는게 차 문을 걷어찬 것은 막가봐야 재물손괴죄로 벌금형을 받을 일이지만 인신을 겁박하고 무력을 행사한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인식 수준이다. 그리고 그 무력행사는 청와대 중요 요인의 경호와는 전혀 관련없이 '국회의원이면 다냐'라는 외침과 함께 일어난 폭력행사다. 상대는 국민을 대변하는 국회의원이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비단 국회와 정부차원에서만 일어나는게 아니다. 주요언론의 퇴행과 맞물려 민주주의의 확립에 가장 중요한 자유로운 소통의 통로가 된 인터넷 공간에서 정부여당은 조직적으로 권력의 재창출을 위해 군과 권력기관을 이용해 여론을 조작했다. 지난 10년간의 민주정부가 애써 만들어 놓은 자유로운 소통의 공간이 권력에 의해 민주주의를 퇴행시키는 도구로 전락한 것이다. 오늘날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의 여론은 기성언론보다 더 파급력이 큰 볼록렌즈효과를 지니고 있어 조금만 크게 이슈가 되더라도 그게 뉴스의 전부인 것 마냥 착각하게 되는 일이 잦다. 그리고 권력은 그것을 철저히 이용하여 권력을 재창출하는데 성공했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국민 대다수가 오락과 여가생활로 즐기는 인터넷 게임을 통제하려하기 시작했다. 중독자 구제라는 허울을 쓰고 입안되려 하는 이 규제법안은 사실 인터넷게임만이 아닌 중독가능한 미디어 전부를 대상으로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개개인의 오락을 어느 수준에서 중독으로 봐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컨센서스조차도 성립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하게 추진하려다보니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만화와 동네 오락실을 나쁜 것으로, 없어져야 하는 악으로 규정한 구세대의 시대착오적 발상이 저항을 겪자 그들은 역으로 법안지지청원과 반대하는 네티즌들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을 조직하려는 듯 하다. 


 이 또한 인터넷과 기성언론의 볼록렌즈효과를 통해 과대평가될 것이고 마침내 입안에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아직 우리는 이런 시대착오적, 퇴행적 법안의 입안을 저지할 충분한 무기를 지니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저들처럼 대량의 여론을 생산해내는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강단있고 용기있는 정치인이 없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이 자아내는 '불확실한 미래'와 '경제불황'이라는 공포에 우리가 몸을 움츠렸기 때문이다. 


 과연 미래는 불확실하다. 어느 누구도 내일을 장담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인간으로서의 존중받는 삶을 살아갈 의무와 권리가 있다. 독재정부에서는 이런 것이 불가능하다. 오직 충성된 개들만이, 입을 다물고 귀를 막고 눈을 가린 자들만이 무한한 발전과 인간다운 행복한 삶의 가능성을 포기한 채 근근히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를 이미 경험했고 그것이 그다지 북한의 전제정권과 다를 바 없음을 역사를 통해 체험했다. 그런 세상을 다시 도래케하여 후세들에게 전해준다는 것은 정말로 면목없는 일이다. 그들을 다시 민주주의에 대한 갈증과 억압받는 고통을 전해준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란 달고도 풍성한 과즙과 과육을 맛본 세대다. 하지만 그 과일을 먹고 나서 씨앗을 종자삼아 다시 심고 기르는 일에는 게을렀다. 형식적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를 기르는 일을 그만 뒀다. 어쩌면 너무 민주적이었기에 과거독재세력의 재집권을 막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모든 국민들이 함께 키워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보다 군사독재가 더 좋았던 이들이 그 나무에 비료를 주고 잡초를 제거하는 일들을 방해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반민주적인 행태를 규제하고 파시즘적, 매카시즘적 정치가 다시는 싹을 들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는 게을렀던 것이다. 


 이제는 깨어난 민주적 국민들이 이 일을 다시 시작할 때이다. 이 땅에 다시 진정한 보수와 진보라는 가치가 서로 공존하며 더 나은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세계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현재 우리의 정치적 현실을 다시 판단해야 할 것이다.


 첫 째,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이 없다. 현 정부여당은 일개 권력층의 집단이익만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대다수의 보수적 국민들의 이상과는 상관없이 권력유지를 위해 파시즘적, 반공주의적, 친일적 행위도 서슴지 않고 있다. 특히나 일제에 의해 상처받은 한국인들의 정부가 오히려 상처를 입히고 있다. 게다가 보수적 가치의 핵심인 작은 정부, 경제사회와 개인의 자유의 확대와는 정반대로 더 큰 규제 확립으로만 치닫고 있다. 국가안보의 근본적 해결보다 임시처방으로, 국내문제 해결보다 국외순방을 통한 이미지만들기만으로, 야권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보다는 다수당의 횡포만으로 일관하고 있다.


 둘 째, 이런 상황에서는 진정한 보수적 가치를 대변하는 정당의 출범 또는 현 야당의 변신이 필요하다. 정부여당이 지지받는 이유는 단순히 추억팔이정치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저 정치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국민들은 정치권이 조용하고 잠잠하기만을 원하는 수준이고 대다수가 또한 그러하다. 박근혜가 조용할 수록 지지를 받는 이유는 그런데 있다. 하지만 규제가 확대되고 억압이 지속될 수록 국민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정치가 필요하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정부가 이렇게 저항을 받고 있는 와중에 야당은 저항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대변해야 한다. 그것이 반드시 거리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거리로 나서려면 혼자서 나서지 마라.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을 조직하고, 야권내 갈등을 봉합하고, 대의를 향해 연합해야 한다. 


 셋 째, 현 사태를 성공적으로 종결시킨 후 다시는 과거의 레짐이 복귀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아니 다시 복귀하더라도 결코 확립된 민주주의를 건드릴 수 없도록 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지키고 가꿔야 할 것이다. 다시 뿌리가 드러나고 뽑혀날 위기에 처해져서는 안된다.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이다. 감사한 건 내키지 않는 분위기이더라도 야당들이 연합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진 않다. 전장의 적은 하나인데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생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극히 정상이다. 다양한 소리가 나오고 다양한 입장이 대변되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함께 모여 서로 치고 받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논쟁하여 정치의 큰 흐름을 만들어내라. 그 내용을 인터넷을 사용하는 국민이든 잘 사용하지 못하는 국민이든 다 알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면 국민들도 이러한 정치적 흐름에 합류하여 큰 물결을 만들어 낼 것임이 분명하다. 지난 6월항쟁을 비롯한 민주투쟁이 그러하였듯, 다시 거대한 민주주의란 파도를 만들어 내어 새로운 세계를 확립해야 한다. 단순히 현 정부의 과오에 대해 사과하고 대책을 마련하라는데서만 그쳐서는 안된다.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확립과 실천을 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야당들이 진정한 민주주의의 실천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참된 민주주의는 기필코 확립될 것이다. 그와 함께 국민의 자유와 권리와 의무도 새 시대에 알맞게 재정의될 것이다. 그것을 만들어나가기 위한 자신에 대한 투쟁, 곧 새 시대에 대한 새 가치를 확립하기 위한 치열한 이성적 토론과 이를 통한 국민적 컨센서스 확립을 향한 우리의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그 날이 머지 않았고 터널의 끝은 바로 눈 앞에서 빛을 비추고 있다. 이제는 다함께 달려가자. 참된 민주주의의 확립의 기쁨을 함께 향유할 그 날이 다가오고 있다.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