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고 열흘 째, 이제까지의 우리 이야기.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 열흘 째다. 조수간만의 차가 줄어들었던 사흘 동안 인양된 피해자 시신의 수만 해도 백 여구가 넘는다. 실종자 가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진도체육관에서 스티로폼 한 장 담요 한 벌에 의지해 매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며 구조자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일 주일이 지나고부터는 여의치 않은 듯 하다. 지난 23일, 그러니까 사고 후 1주일이 되는 날 부터는 아이들의 얼굴이라도 제대로 알아볼 수 있게 빠른 수색을 요청하는 절규에 가까운 부르짖음이 터져나왔다.
현장에서 매일같이 방송하는 고발뉴스와 팩트TV와는 달리 주요언론들은 검증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속보 경쟁을 하거나 해경측 발표만으로 한 주 내내 같은 내용을 방송하다 실종자 가족들의 항의에 부딛혀 이제는 제대로 리포트도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당국의 허둥대는 모습과 투명하지 못한 행정으로 SNS에서는 사람들의 추측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유언비어가 유포되었고 경찰은 엄단하겠다는 자세를 보였다. 실제로 너댓명이 본보기로 구속이 된 상황. 다른 한 편 정부 여당인사들은 사건 이후 거의 매일같이 실언과 방만한 행동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사과를 거듭하는 모양새였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던 그들의 실언 중 정점은 극우인사인 지만원씨에 의해 정점을 찍었다. 그는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종북몰이와 함께 그들의 '제2의 5·18폭동'을 준비하라는 발언으로 국민들의 공분을 샀다. 유언비어 유포로 실형을 받은 시민들과는 달리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실형을 받은 것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고 현장인 진도에서의 정부와 관계당국의 행태는 한심함의 극을 달렸다. 초동대처 당시 허둥댔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종합대책본부가 마련된 이후에도 투명하고 신속하게 상황을 정리하지 못한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실종자 가족들은 미적지근한 정부의 대처에 분노하여 청와대로 행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정홍찬 국무총리의 행동이었다. 그는 청와대를 향해 항의 행진하는 실종자 가족들을 만류하러 나갔다가 차 안에서 세 시간 동안 고립되고 경찰측은 실종자 가족들을 제압하려 전투경찰 300여명을 신속히 투입하는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을 저질렀다. 서남수 교육부장관은 실종자 가족들 앞에 마련된 응급처치장소를 치우고 사발면을 먹는 것으로,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안전행정부 직원이 기념사진을 촬영하려 했던 것으로 실종자 가족들과 국민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이 정도까지 되면 실종자 가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의 태도라도 갖춰야 하건만 인터넷라이브영상 가운데 현장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사복경찰들이 실종자 가족들을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돕지는 못할 망정 이들을 컨트롤 하고 제압하려 했던 당국의 태도는 비난받아 마땅할 만한 행동이다.
더 큰 문제는 이를 대하는 청와대의 자세였다. 청와대의 김장수 정부안보실장은 정부는 재난 컨트롤 타워가 아니라면서 이번 사건의 책임으로부터 선을 긋는 모양새를 보여 사람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면서도 제3자처럼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세월호 선장을 '살인자'로 지목하며 비난하는 등 대통령답지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해외 언론은 박대통령의 '살인자'발언을 인용하며 '서구 사회에서 지도자가 그런 발언을 했다면 그 자리에 버티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비판을 실었다. 다른 한 편, 한 언론을 통해서 밝혀진 '해양수산부 재해대책매뉴얼'에서는 엄연히 대통령이 재난구호의 최종 책임자로 표시되어있는 것이 밝혀져 큰 논란을 샀다.
일본 지하철에 실린 월간 문춘의 표제
"한국침몰선 일본의 지원거절, 300명을 죽게 내버려 둔 박근혜의 대죄"
구조작업에 참여중인 민·관·군 합동수사본부는 소극적인 태도로 오늘까지도 실종자 가족들로 뭇매를 맞고 있다. 민(民) 자격으로 구조작업에 참여중인 언딘Undine은 사실 인양전문업체이고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에 고용되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일 주일 동안 이어져온 구조작업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채로 진행되었다는 의심을 살 만한 대목이다. 게다가 언딘의 텃세로 구조경력이 풍부한 민간잠수부들이 구조작업에 참여하지 못하고, 이종인 알파잠수대표의 다이빙벨은 투입못하게 하면서 자신들은 강릉소재 모 대학의 소형잠수벨을 가지고 와 사용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실종자 가족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나기까지 이른다. 실종자 가족들은 합동대책본부의 대표들을 항의방문하여 밤늦은 시간까지 지금 사태에 대한 투명한 해명을 요구하고 해경청장은 직접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의 다이빙벨을 투입하여 구조작업을 하라고 지시한다. 그러나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의 트윗에 따르면 현장 해경과 언딘의 훼방과 날씨 문제로 실패한 것으로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하고 있다.
서주호 @seojuho 대통령 취임식에서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정부 역량을 집중할 것 입니다"라며 국민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겠다면서 수천만원의 예산을 들여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꾼 박근혜 정부의 재난 대처는 최악이었다. pic.twitter.com/ATNp4wqg06
지난 목요일인 24일을 기점으로 실종자 구조작업을 마무리 해달라던 실종자 가족들의 요청은 민간잠수부들의 항의성명과 언딘과 해경간의 관계가 언론에 알려지면서 다시 한 번 구조작업에 착수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민간잠수부들이 돌아오고, 퇴짜맞았던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도 그의 다이빙벨과 함께 돌아왔다. 그러나 다시 물살이 거세어지고 날씨는 험악해졌다. 좋은 날씨 다 지나가니 이들에게 '해볼테면 해봐라'는 식의 태도가 아니냐는 말은 곧 구조현장의 해경과 언딘의 태도에서 사실로 밝혀졌다. 이상호 기자의 트윗에 의하면 언딘과 해경의 비협조적 태도와 날씨로 이종인 대표와 잠수부들은 항구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에 실종자 가족들은 분노하며 직접 감시단으로 현장에 가려고 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건을 목도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노란리본을 달아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안산올림픽기념공원에 임시로 마련된 분향소에 찾아 고인들의 명복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다른 한 편에서는 더 이상 침묵하면 또 다시 이런 슬픈 일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거라는 희생자 부모의 글이 널리 퍼져 사람들의 공감을 샀다. 과연 우리들은 어떻게 이 사건 이후를 대처해나가야 할 것인가. 사건에 책임이 없다는 정부, 분노하는 사람들과 실종자 가족들에게 종북몰이와 온갖 더러운 말을 내뱉는 이들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우리들은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큰 위험에 처해 있다.
2.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
사람들은 언젠가는 세월호 사건을 잊을 것이다. 우리가 멀게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씨월드화재참사, 세모유람선사고, 대구지하철참사, 대구지하철가스폭발참사, 가깝게는 지난 2월 코오롱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등 대형 사고들을 잊은 것처럼. 이런 사고가 터질 때 마다 사람들은 안전을 부르짖으며 정부와 유관기관들이 대책을 세우기를 요청한다. 그러나 안전은 사실 생활에서의 사소한 부분에서의 실천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은 잊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개인이 실천하지 않는 안전수칙을 정부와 유관기관들이 관심이나 줄까.
우리나라의 안전불감증은 개인 단위에서 부터 시작해서 정부에 이르기까지 뿌리가 깊다. 안전은 여러모로 불편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이익, 즉 돈, 시간, 편리함 때문에 룰을 쉽게 어기고 이것을 당연시하는 것은 개인 단위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조금 더 빨리 가려고 보행자는 무단횡단을, 운전자는 과속과 신호위반을 한다. 불법유턴과 끼어들기는 기본이다. 안전띠가 불편해 대충 걸쳐놓거나 클립으로 느슨하게 해놓는다. 아이들 부모들은 유아용좌석따위 없이 아이를 안고 운전하거나 옆자리에 앉혀놓는다. 건너편 운전자야 어쨌든 HID조명을 달아 뽀대를 과시한다. 안전모를 쓰지 않은 오토바이 운전자를 찾는 것만큼 쉬운 일도 없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 화물차들은 과적을 하고 차량안전점검을 건너뛴다. 불을 다루는 현장에 소화기를 비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 자동차에도 소화기를 비치한 경우는 찾기 힘들었던 것 같다. 공사현장에서는 돈을 더 아낄려고 골재와 철골을 빼돌리고, 공사기한에 맞춰야 한다며 안전수칙따위 무시하고 인부들을 부리다가 사고를 낸다. 민방위때나 예비군에서 강조하는 안전수칙과 재해대책은 그냥 바람결에 흘려보낸다. 가르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열의가 없다. 열심히 참여하려는 사람에게는 세상이 이렇게나 평화로운데, 돈벌기 바쁜데 그걸 할 새가 어디있냐며 핀잔을 준다.
안전수칙은 자기 자신과 다른 이들의 소중한 생명을 위해 모두가 꼭 지켜야 하는 것이다. 생명은 한 번 잃으면 돌이킬 수 없는 것이기에 안전수칙준수가 아무리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이익이 안된다 하더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개인들이 무관심한 안전수칙이 정부와 유관기관들의 철저한 안전대책과 재해대책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민간의 안전의식이 이렇게 느슨할 때 정부는 다른데 더 신경을 쓰게 되는게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그 결과가 이번 세월호 사고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정부때 완화된 선박연령기준, 안전점검방식이 선박회사의 수익상승으로 이어졌겠지만 결과적으로 선박의 부실화, 무리한 운영, 그리고 마침내 대형사고로 이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돈이 최고, 부자되는게 최고였던 부끄러운 시절이 그 안전을 강조했던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면서도 고쳐지지 않아 크게 터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지난 규제완화끝장토론 이후 이러한 안전관련 규제들을 더 완화할 계획이었다고 하니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를 견제할 여론, 즉 개개인의 안전의식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원천적으로 정부의 잘못이 없다는 면죄부를 주는 말이 아니다. 정부는 인민으로부터 정치적 권한을 위임받은 정체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의 그들의 실정은 결코 면죄부를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은 여론이 생기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약한 야당, 그들에게 이익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여전히 부자되는게 최고의 미덕으로 통하기에 '안전규제같은거 돈 더 벌기 위해 없어져 주면 어때'라며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에 정부가 안전관련규제를 더 철폐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적하는 언론은 있었지만 정부에 반대하면 종북으로 몰려 피해를 입을까봐 두려운 사람들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모두가 그저 이 힘든 시기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3. 안전한 나라는 내 손으로부터 시작된다.
안전한 나라는 박근혜가 만들어주지 않는다. 막말과 비상식적 행동을 일삼았던 그의 수하에 있는 이들이 만들어주는게 아니다. 안전한 나라는 우리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다. 일상에서 매일같이 안전에 대한 노력이 있고 또한 이에 대한 여론이 크게 형성되어야 정치인들이 움직이고 정부가 대책을 세운다. 그런게 전무한 현재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가 이를 바꾸려 할까.
한 때 우리나라에도 대형재난과 관련한 매뉴얼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 시기에 만들어진 NSC위기관리센터는 이명박이 없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때는 아예 재난대책에 대해 청와대는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으로 분리됐다. 대형재난시 관계부처 장관들간의 적극적 협의 하에도 일이 될까 말까한 상황인데 안전행정부 장관이 중앙재난대책본부장이다. 뉴스매체들은 강력한 컨트롤 타워가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라며 비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안전에 있어서 매 순간 개인 차원에서 스스로 지키며 다른 이들을 보호하고 아끼고 배려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가차원에서의 안전대책과 재난구호대책에 대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결과물을 지속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어정쩡하고 부족하면 호되게 비판하여 제대로 만들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의 목숨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이의 목숨, 어린 자녀들의 목숨이 언제 어떻게 사라질 지 모른다. 세월호 참사를 그저 슬퍼하는데서 그치지 말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협조하고 나서야 할 때다. 이것이 그들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는 우리의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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