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Log2013. 11. 19. 02:29


성균관대학교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2013년 11월 18일, https://fbcdn-sphotos-g-a.akamaihd.net/hphotos-ak-prn2/1476217_658732564167429_1619916634_n.jpg





 난 울 학교 가야겠다고 맘먹은 이유가 다른게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처음 성대를 방문했던 그 해 겨울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었다. 온통 하얗게 물들었던 성대 명륜 교정은 신비로운 기운마저 감돌고 있었다. 지금은 없지만 한 끼에 이천원하던 다산경제관 지하의 학생식당에서 아주머니께서 푸짐하게 올려준 식판의 밥을 맛있게 먹고, 당시에 선풍적 인기였던 헤이즐넛향 원두커피를 한 컵씩 마시면서 교수회관쪽 출구로 나왔다. 


 그때 마주했던 한겨울속 눈덮인 산사같은 분위기의 교정 모습에 나는 홀딱 반해버렸다. 한 편의 수묵화를 보는 느낌. 펑펑 내리는 함박눈에 서울 시내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고요함에 황홀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배도 부르겠다 헤이즐넛향 가득한 커피도 마시고 있겠다 완전 천국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난 이 학교 꼭 와야지. 


 1년 후, 아버지는 내가 왜 굳이 이 학교를 선택했는지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발목까지 수북히 쌓여만가던 눈과 아름다운 교정과 방학중에도 석유곤로에 불 지펴가며 학문에 열두하던 사람들. 눈쌓인 대성로를 내려오면서 나는 첫사랑에 빠진 것 마냥 두근거리는 가슴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 사랑의 감정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치열한 눈치작전에 희생된 또 하나의 학생이 되어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그 때의 아름다운 교정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다. 새로 들어온 재단은 미적감각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학생들의 요구하고는 상관없는 토건사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금잔디가 파헤쳐지고 학생회관과 법학관이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들어섰다. 그래도 나는 영 다니기 불편한 퇴계인문관을 사랑했다. 옛 정취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변환경과 잘 어울리는, 담배냄새와 백오십원 자판기커피냄새가 절어있는, 학생들과 교수들의 열띤 토론이 펼쳐지는 그 곳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지만 내 대학생활은 그다지 순탄치는 않았다. 지금와서 돌아보니 안거지만 그 체력으로 4학년까지 버틴게 대단한거였다. 정신적, 육체적 빈궁함에 무기력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전국민이 함께난 IMF라는 겨울을 유독 나는 더 아프게 나고 있었고 은사님의 대학원 진학 종용마저 돈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더 이상 빚지면서 공부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성적은 개판 오분 전이었지만 졸업연기는 불가능한 옵션이었다. 억지로 써낸 눈문은 차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정도였다. 


 눈이 내렸다. 올 겨울 들어 첫 눈이다. 함박눈이 내릴 때마다 나는 다시 학교에 가고 싶어진다. 아니 눈 때문이 아니라 아직 못다한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에 다시 가고 싶어진다. 아직도 그 때 겪었던 무기력함의 공포가 나를 막아서지만, 아니 지금도 나를 짓누르고 있지만, 다시 가고 싶다. 비록 첫사랑이었을지언정 내가 사랑했던 것을 다시 잡아보고 싶다. 난 이 학교 꼭 와야지. 꼭.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