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 9. 12. 00:57



Patrick Witty

No copyright infringement intended.

패트릭 위티가 2001년 9월 11일 아침 9시 59분 911사건 당시 뉴욕에서 촬영한 사진.
군중들이 놀란 표정으로 뉴욕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타워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쳐다보고 있다.

패트릭 위티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진 가운데 안경을 쓴 정장 차림의 Benjamin Tabile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Read more: http://lightbox.time.com/2013/09/11/help-identify-this-photo-the-moment-the-towers-fell/#ixzz2efC67EWr



나는 정확히 12년 전 오늘, 세계무역센터의 남쪽 터워가 무너져내리기 시작하는 순간에 이 사진을 찍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든 뉴요커들은 맨하탄 아래 파크로우와 비크먼 거리에 서서 하나같이 공포에 질려 있었다. 그 이후로 이 사진은 전세계의 신문과 잡지에 수십번 게재되었었지만 나는 이 사진에 등장하는 이들의 이름은 알 도리가 없었다. 나는 이들의 정체를 알아낼수 있을까 하는 바램에 작년에 페이스북과 트위터에 이 사진을 올렸다. 10,000번 이상 공유된 뒤에 나는 이제 그들 중 두 사람을 알아낼 수 있었다. 


에드워트 태빌은 내게 연락해서 사진 한 가운데 안경을 쓰고 있는 남자인 벤자민 태빌이 자기 아버지라고 전했다. 벤자민은 그 날 세계무역센터에 면접을 보러 가는 길이었었지만 여차저차 늦었던 상황이었다고 한다. 

벤자민 태빌은 말했다. "지하철에서 나오자 마자 빌딩이 화염에 휩싸여 있는걸 발견하고는 어리둥절해 하고 있었다. 나는 완전히 충격에 빠졌었다. 하마터면 여객기가 충돌할 때 저 빌딩에 있을 뻔 했으니."

나는 이 사진에 등장한 모든 이들을 알고 싶다. 이 사진에 등장한 이를 아는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 바란다. 
patrick_witty@timemagazine.com



Patrick Witty, 타임지의 국제사진편집장의 TIme Lightbox 기고문
Twitter: @patrickwitty




 911사건은 그저 우방국이 사상 처음으로 본토에 공격을 당한 사건으로 회자된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 덕에 군 생활이 반 년간은 고생스러웠지만, 그만큼 미군과 미국인들의 충격과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중동으로 달려갔던 미군 전우들 가운데 몇몇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대가로 이들이 얻은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2011년 오사마 빈 라덴이 사실되고나서도 알 카에다의 존재감과 위력은 여전히 서방국가들을 테러의 두려움 가운데로 몰아넣고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알 카에다는 이른바 '성전'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그들이 위하고 있다던 인민들의 삶을 더 낫게 하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시리아 공습에 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회의가 러시아의 보이콧으로 무산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시리아 정부가 반군에 대해 독가스 공격을 벌인 것에 대해 본보기를 보여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다. 서방국들도 그와 같이 나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것 같다. 이는 또 다른 화학무기 보유국인 북한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도 해석되기 때문에 미국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국가들은 여러 방법으로 시리아 공습을 지지하기도 했다. 한국은 이들 중 가장 공개적이자 적극적으로 지지표명을 한 나라 중 하나다. 


 200만 시리아 난민들의 처우가 개선되지 못하고 더욱 악화 일로에 놓여 있는 것이 안타깝다. 아랍연맹이 시리아 정부의 축출을 위한 서방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요구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지만 시리아에 대한 서방국가들의 무력개입이 또 다시 알 카에다와 같은 극렬분자들의 테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공습이 과연 알 아사드 정권을 축출해낼 수 있는 충분한 위력이 될 지도 의문이다. 이런 가운데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리아 평화를 위해 서방국가들은 전쟁이 아닌 평화적인 수단을 강구하라고 강변하였던 것은 매우 적절한 발언이었다. 


 우선은 평화적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무력으로 하면 무엇이 좋단 말인가. 교황의 말마따나 무기장사하는 꼴 밖에 되는게 아닌가. 전쟁은 언제나 Last Resort, 최후의 수단일 뿐이다. 전쟁을 일으키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배워두지 않았던가. 



Posted by Cybercat
Movie2013. 3. 23. 03:02

 

 

자정이 지난 후 30분, 'Zero Dark Thirty'

 

 

 

 

제로 다크 서티 Zero Dark Thirty, 2012 

요약: 미국 |  액션, 드라마 | 2013.03.07  | 15세이상관람가 | 157분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

출연: 제시카 차스테인, 제이슨 클라크, 조엘 에저튼, 카일 챈들러

홈페이지: http://www.zero-dark-thirty2013.kr

 

 

 

영화관에서 내려올 때 쯤 되어서야 겨우 보게 된 "제로 다크 써티". 기본적인 스토리는 작년에 개봉한 "코드네임 제로니모"와 궤를 같이 한다. 다만 "코드네임 제로니모"는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 위한 작전 그 자체에만 집중한 액션블록버스터물이었던지라 FPS게임에서처럼 오사마 빈 라덴을 처단하는 기분이었던 반면, "제로 다크 써티"는 CIA요원들이 오랜 기간동안 알 카에다를 대상으로 고군분투하는 장면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가감없이'

 

그렇다. 코드네임 제로니모에서는 잘다뤄지지 않은 기나긴 과정들이 디테일하게, 그리고 어찌보면 영화를 통해 공개되어봤자 하등 미국에 도움 될 일이 없는 내용들 마저도 이 영화에는 담겨져있다. 2001년 911테러 당시 미군과 함께 복무중이었던 나는 미군들이 실제로 겪었던 고통, 이역만리에서 자기들 국민이 비참하게 죽음을 당한 상황에 당혹해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목도했었다. 함께 근무하던 많은 미군 병사들은 바로 전출신고를 하고 전장으로 달려나갔고 또 몇몇은 시체가 되어 돌와왔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었던 터라 영화의 주인공 마야의 아픔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친구도 없이 오직 알 카에다의 수장인 UBL(오사마 빈 라덴을 짧게 줄여 부르는 말)을 잡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마야의 모습은 안타깝다못해 가슴아프기까지 했다.

 

 

 

 

 

'UBL을 잡기까지 일어난 테러들의 총집합'

 

911을 시작으로 오사마 빈 라덴을 잡기까지 일어난 영국, 스페인, 파키스탄 메리엇 호텔 테러, 뉴욕 차량폭탄 테러시도 등 알 카에다가 한 것으로 지목된 테러들이 모두 담겨있다. 이 영화의 감독이 폭탄제거반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려낸 영화 '허트 로커'의 감독 캐서린 비글로우인 만큼, 이들 테러 장면들 또한 최대한 있는 그대로 과장된 느낌 없이 전달된다. 그래서인지 오사마 빈 라덴 체포작전마저도 대다수 전쟁영화 팬들이 보기에는 상당히 밋밋하게 보일 정도였으리라 생각한다. 대체로 뭔가 막 터지고 피가 튀기고 죽어나가고 영웅적으로 미션을 완수하는 모습이 영화에 담겨야 만족하는 그들에게 이 영화는 플랫하고도 드라이한 느낌 그 자체였을게다.

 

하지만 다들 알다시피 오사마 빈 라덴 체포작전이 결과적으로 암살작전이 되어버린 배경을 이 영화는 충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오사마 빈 라덴이 있을거라는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된 작전이었음을 영화는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서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사실 체포작전일지 암살작전일지도 확인 불가능했던 작전이었던 것이다. 오사마 빈 라덴도, 그리고 그의 거처로 심증이 가는 거처의 내부 구조도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수부대원들은 미군에 비협조적인 파키스탄의 눈을 피해 스텔스 헬기를 통해 침입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후의 내용은 다들 아는 바 그대로다. 이 장면에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은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코드네임 제로니모'에서처럼 번갯불에 쿵딱하는 작전이 아니었음을, 디테일하게 작전을 화면에 담아냄으로써 매우 현실적인 작전 장면을 관객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이런 다큐멘터리 수준까지 끌어올린 현실적 장면은 '허트 로커'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주인공 마야의 변화'

 

 

약해빠진 신출내기 CIA요원 마야는 알 카에다 요원들을 고문하고 원하는 정보를 캐내는 장면에서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거듭되는 테러와 위협, 성과없는 CIA팀의 활동 가운데 조금씩, 그러나 매우 조용히 마야는 변해간다. 영화 중반 즈음 마야는 그의 선배들처럼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잡혀온 알 카에다 요원들을 심문한다. 직접적으로 영화에서 보여주지는 않지만 더 이상 이런 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마야를 회유하는 선배의 말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마야의 변한 모습으로 미루어 알 수 있다. 이미 미국은 소모적인 테러와의 전쟁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는 모습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알 카에다 핵심인물들을 체포하고자 하는 의지가 많이 사라져있는 상황에서 마야는 위아래 물불 안가리고 자신만의 고독한 전쟁을 치루게 된다. 주변 동료들의 죽음을 어쩔수 없이 지켜보면서 그녀는 변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작전의 성공, 그리고 마야의 눈물'

 

 

역사적인 사건이니 만큼 이 작전이 어떻게 끝났는지 다들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 사건의 한 가운데 서있었던 마야는 마지막에 말없이 눈물을 흘린다. 10년간의 고통스러운 추적 끝에 기어이 동료들의 복수를 해냈다는 마음에 눈물을 흘렸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왠지 그건 아닌 것 같은 그런 눈물이었다. 이제 뭐하지 하는 생각에 흘리는 눈물도 아닌 것 같다. 사실 눈물을 흘리기까지 마야의 음울한 표정은 오사마 빈 라덴의 사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계속 이어져 온다. 이 한 사람을 잡기 위해 그녀가, 그녀의 동료가, 그리고 알 카에다 요원들이 겪어야 했던 비인간적인 사건들. 인간의 존엄성을 포기해야만 이 작전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참한 현실 속에 한 여자가 서있었던 것이다.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시선'

 

 

'허트 로커'에서도 동일하게 감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쟁의 참혹함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켜가느냐에 감독은 주목하고 있다. 그렇기에 상당수의 많은 전쟁물팬들이 기대하는 파괴적이고 화려하다 못해 비현실적이기까지한 전쟁장면은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에서는 얻어내기 힘들다. 다만 감독의 작품들이 일관적으로 던져주는 메시지는 '이게 현실이에요'라는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 속에서는 실제로 영웅도, 진짜 용감한 사람도, 가해자도 없으며 모두가 피해자일 나름이라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는 '블랙호크다운' 등을 통해 미국의 넓디 넓은 오지랖이 가져다 준 전쟁의 참상을 영화로 담아냈던 올리버 스톤 감독의 전쟁영화들과는 차별화 되는 현실감각이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뉘앙스를 가진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영화 '제로 다크 써티'는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이번 돌아오는 일요일까지 상영된다. 조금 더 미리 봤었더라면 하는 바램이 있었지만...아무래도 기대함과 간절함이 있는 상태에서 봤기에 이만큼 감상하고 올 수 있었던게 아닐까. 대체적으로 영화 트레일러나 광고가 너무 영화를 꾸며대는 바람에 영화관객들이 전혀 다른 기대감을 가지고 영화를 보고 혹평을 하는 일들이 많다. 그 혹평들과는 상관없이, 이 영화는 수작이다. 이미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영화이니 기회가 닿는대로 꼭 감상해보기 바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죽음, 오퍼레이션 넵튠 스피어(영어: Operation Neptune Spear)로도 알려진 이것은 2011년 5월 2일에 실행된 미국의 오사마 빈라덴 사살 작전이다. CIA가 작전을 주도했으며, 네이비 씰의 대테러 전문인 데브그루 25명이 블랙호크 헬기 4대에 탑승해 작전에 참여했다. 빈 라덴의 CIA 암호명이 제로니모였다.

파키스탄 현지시간 2011년 5월 2일 01시 00분, (5월 1일, 20:00 UTC, 16:00 EDT)에 작전이 시작되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른 주말과 같이, 이 날에도 워싱턴 DC 인근의 앤드류스 공군기지에서 골프를 쳤으며, 9홀까지 4시간 가량 골프를 치고 중도에 복귀하여, 동부시각 16시에 작전이 시작되었고, 백악관 지하벙커에서 네이비 씰 요원의 헬멧 카메라를 통해 위성 생방송을 시청하였다.

아보타바드의 파키스탄 정보기관의 안가에 거주 중이던 빈 라덴을 네이비 씰이 현장사살했다. 아보타바드는 수도 이슬라마바드의 북쪽 51km에 있는 인구 12만 명의 도시이며,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와 육군 2사단의 사단 본부가 위치해 있다. 빈라덴이 살던 집은 보통 가옥보다 8배나 큰 3층짜리 대규모 주택이었으며, 파키스탄 육군사관학교에서 불과 100미터 떨어져 있었다. 3년 전부터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알 카에다는 파키스탄이 배신을 한 것이라면서 제1차 보복목표는 파키스탄이며 그 다음이 미국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미국은 파키스탄 정부 몰래 한 작전이며, 미국 헬기들이 작전을 수행하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우연히 파키스탄 전투기가 출격하지 않은 것이지, 파키스탄 정부의 협조가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파키스탄과 빈 라덴의 관계와 관련해서는, 2001년 911 테러 직전에, 파키스탄의 원자력 위원회 책임자들이 오사마 빈 라덴에게 핵무기를 제조하거나 획득할 방법에 대해 조언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압둘 카디르 칸 박사와 함께 이들이 가택연금된 적이 있다.[1] 2001년 11월 10일, 파키스탄 영자신문 "새벽(Dawn)"의 인터뷰에서, 빈 라덴은 "핵무기와 화학무기를 갖고 있으며 이를 사용할 준비도 돼있다"고 경고했으며,[2] 2002년 12월 15일, 미국 뉴스 전문 인터넷 사이트 월드 넷 데일리알 카에다가 1998년 옛 소련 비밀경찰(KGB) 출신인 체첸 마피아로부터 3,000만 달러를 주고 핵배낭 20개를 구입했다고 보도했다.[3]

CRS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빈 라덴을 잡기 위해 10년간 430조 원을 썼으며, 간접비용을 포함하면 1000조 원을 넘게 썼다고 한다.[4]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C%98%A4%EC%82%AC%EB%A7%88_%EB%B9%88_%EB%9D%BC%EB%8D%B4%EC%9D%98_%EC%A3%BD%EC%9D%8C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