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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9.23 낙과, 그 아련한 추억
Thoughts2012. 9. 23. 13:50

 

구글링으로 사과 사진을 찾아보니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와는 다른, 색이 진한 사과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먹었던 사과는 위의 사과처럼 붉은 빛이 덜하고 당도가 낙과한 것이더라도 매우 달았다.
물론 그 중에는 신맛만 가득한 것도 있었지만...항상 큰집에서 공수해왔던 사과.
이제는 시장 가서 꼭 사서 먹는 과일 중 하나가 되었다.

 

 

  지난 가을 태풍으로 낙과를 판매하고자 하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상품가치가 없는 낙과를 제외하면 내다팔 것이 없을 정도라는 말도 들린다. 안그래도 가을태풍 지나고 다가오는 추석 즈음에는 농산물소비자가가 턱도 없이 높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번에는 공급도 부족하고, 고가의 제수음식을 피할 수 밖에 없는 소비자들의 지갑상태가 겹쳐서 소비자와 판매자 모두 힘든 가을이 되지 싶다.

  내가 어렸을 때 문경 큰집에서는 과수원을 했다. 기억에는 사과나무만 끝없이 넓은 과수원에 백여그루 이상 있었던 것 같다. 이 정도 되면 다들 그 달고 맛있는 최상급 문경사과를 원없이 먹을 수 있겠구나 하면서 나를 부러워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추석을 지내고 오면 우리집엔 낙과한 사과, 상품가치가 없는 사과들만 쌀푸대 하나 가득했다. 간혹가다 심하게 멍울지지 않은 녀석들이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 깎아먹기도 뭐한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시골에 갔을 때 조차도 소반에 나오는 건 상품가치 없는 녀석을 골라서 접시에 담은 것이었고, 나는 그렇게 사과맛을 알아왔다. 그래도 친구들에게 나는 항상 우리 큰집은 문경에 있고 큰 과수원에서 사과를 매년 가을마다 전해준다고 자랑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였던가. 나는 친구 녀석이 간식거리로 가져온 최상급 경북능금을 입에 물어볼 기회가 있었다. 껍질 채로 베어 물었을 때 느껴진 그 놀라운 달콤함과 진한 향기는 이제까지 내가 먹어왔던 그런 사과가 아니었다. 왠지 모르게 속이 상했다. 왜 나는 과수원을 하시는 큰아버지한테 이런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는거였을까.

  그 해 가을, 시골에 내려가서 나는 처음으로 투정을 부렸다. 왜 항상 다 떨어진 사과만 주냐고. 은근 다혈질인 큰어머니는 특상품 먹고 싶으면 돈내고 먹으라고 농담반 진담반 툭 던지셨다. 잠시 후, 큰아버지는 조용히 내다팔려던 사과를 가지고 오셨다. 친구가 줬던 사과맛보다 더 달고 향이 진했다. 어디서 냄새를 맡고 왔는지 꿀벌이 날아와 쪼개놓은 사과 반쪽에 앉았다.

  나이가 든 이제사 안 것이지만, 당시만 해도 농촌의 부가사업거리라고는 정부가 추천해주는 것들 말고는 거의 없다시피했다. 벼농사만으로는 조부모님과 아내, 그리고 네 자녀를 부양하기 힘들었던 큰아버지는 일제시대때 착굴됐던 탄광에서도, 과수원에서도 눈코뜰새 없이 일을 하셨던 것이다. 그런데다 나는 왜 낙과한 사과만 주냐고 투덜거렸던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학교다녀오면 매일같이 사과를 깎아주시다가 보름쯤 지나면 달콤한 사과잼을 만들어 주셨었다. 우유식빵 두 장 사이로 듬뿍 발라주시던 사과잼, 그 향긋함. 이제는 그때처럼 사과를 먹을 일이 없다. 연로하신 큰아버지는 십수년전 과수원을 그만 두시고 큰어머니와 함께 문경특산 오미자 한과사업을 벌여서 수억원대 연매출을 올리고 있다. 이따금 사과대신 한과를 올려보내시지만 우리집은 꼭 사서 가지고 온다. 그 수고를 이제는 모르는 바가 아니기에.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