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2013. 12. 20. 02:21




※느즈막하게 서울시청앞 촛불집회에 참여했습니다. 늦은 시간인지라 일단 대강 스케치만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세한 집회 내용은 오마이뉴스의 기사로 갈음합니다.


대선 1년, 거리에 선 시민들 "민주주의가 이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39427




12월 19일은 관권부정선거로 얼룩진 2013년 제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날입니다. 작년 이 날 이 시간쯤 박근혜와 새누리당 선본은 당선을 축하하며 샴페인을 터뜨렸지요. 그로부터 꼬박 1년입니다. 그 대선 이후 며칠 동안 서울시내는 정말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충격적인 침묵이 이어졌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대선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도 속출할 정도로 사회적으로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사람들을 내몰기 시작했습니다. 기뻐했던 건 박통을 지지했던 이들 뿐이었던 것이지요. 


"나의 꿈이 이뤄지는 세상"이란 슬로건을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과 그와 함께 하는 자들이 이끌어온 2013년, 과연 "나의 꿈이 이뤄지는 세상"이었습니다. 다만 그 '나'란 주체가 국민들 개개인이 아니라 박근혜 자신이었던 것은 2013년 내내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이야기해줍니다. 한 해가 다 가는 동안 그가 했던 것은 공약폐기와 종북몰이 뿐이었던 것 같군요. 


어제 12월 19일 서울시청광장에서 개최된 촛불집회는 이런 1년을 되돌아보는 집회였습니다. 비록 이른 시간에 참여할 수는 없었지만, 열심히 지하철을 타고 7시반 즈음 도착을 했습니다. 꼼꼼하게 현장의 사진을 촬영한 것은 아니지만 시청역12번출구로 걸어나와 대한문 앞에서 길을 건너며 바라본 시청광장은 이미 사람으로 인산인해였습니다. 






최대한 접근한게 겨우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 근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시즌이지만 전혀 이를 즐길만한 마음이 들지 않는 2013년 12월이군요.





제가 참여했던 시간부터는 2부 순서였습니다. 

함세웅 신부님, 정봉주 전의원, 그리고 노래를찾는사람들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함세웅 신부님의 발언!


유신군부독재후예들의 회개촉구, 반민족 반민주세력에 대한 규탄과 바른 역사를 세울 것을 촉구하신 함세웅 신부님. 15분 발언대였지만 시간이 모자라 10분 정도로 발언을 줄이셨습니다. 






정봉주 전의원의 발언


"청와대의 올해 사자성어는 대선불복이다. 말만하면 대선불복이래. 문재인 의원이 박 대통령을 '무서운 대통령이 됐다'고 하니 대선불복이래. 특별검사제에 동의해도 대선불복이다. 잘 아는 언어영역 명강사가 대통령 보고 언어영역 빵점이란다."


-정봉주 전의원의 발언, 오마이뉴스 기사中





촛블을 들고 집회에 참여중인 시민 여러분





노찾사와 시민들이 함께 부르는 "광야에서"

많은 시민들이 목소리 높여 불러서 더욱 감명깊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안녕들하십니까" 대학생 학우들과 함께 하려고 했지만 집회에 열중하다보니 서울시 신시청앞 모임시간이었던 8시가 훌쩍 지나가고 있었더군요. 그래서 다음 기회에 함께 하기로 하고 3부집회까지 끝까지 서서 함께 했습니다. 3부가 시작되는 시간 즈음부터는 눈이 내리기 시작했는데 심하게 내리지 않아 오히려 즐기기에도 좋을 정도였습니다. 다만 이때부터는 하도 오래 한 자리에서만 서있어서 그런지 발이 시리기 시작하더군요. 






함세웅 신부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으면 그냥 집으로 갈 뻔 했습니다. 시청광장에 마련된 故유한숙님의 빈소를 찾았습니다. 분향할 향이 다 떨어져 빈소 앞에서 묵념하고 대표로 나와계신 밀양주민분과 악수를 했습니다. 정부와 한전의 막가파식 정책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아픔이 절절히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서울광장도 추울텐데 밀양에는 비닐 한 장에 의지해서 밤새 버티고 계신다고 하는군요. 군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산속 찬 바람이 결코 만만한게 아닙니다. 송전탑건설계획이 폐기될때까지 함께 싸우겠습니다.




이날 집회에서 느낀 점은 국민들의 분노가 들불처럼 퍼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비단 대학생들만이 "안녕들하십니까"라며 움직이는게 아니라 사회각계각층이 현정부의 실정과 관권선거를 규탄하며 나서면서 더 광범위한 정권퇴진운동으로 발전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3부집회때 무대에서 인사하신 각 교계 대표자들의 참여발언은 정말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특히 '우리는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는다'라며 참여의 의미를 역설한 원불교 대표와 '내년 갑오년까지 박근혜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가'라며 외친 천도교 대표분들의 발언에 많은 분들이 호응했던게 기억에 남습니다. 




※촛불집회 참여시 유의하실 점


1. 따뜻하게 준비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촛불집회가 한겨울 늦은 시간에 열리는데다 집회가 열리고 나서부터는 한 자리에 머무르며 집회를 하기 때문에 채비를 단단히 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핫팩, 보온병, 장갑, 목도리, 털모자 등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시면 자칫 감기걸릴 수도 있습니다. 대략 2~3시간 진행되므로 너무 한 자리에 머무르시기보다 조금씩 움직이시면서 열정적으로 참여하시면 훨씬 참여하시는게 수월할 듯 합니다. 



2. 늦게 오시는 분들은 개인촛불과 컵을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는 집회시작때 주최측에서 촛불을 배포하는걸로 아는데 조금 늦게 도착하시는 분들은 자체적으로 준비하시는 것도 의미있는 참여가 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두 번 다 늦게 와서 촛불없이 했는데 좀 아쉬움이 많더라구요. 



3. 대자보를 준비합시다. 


이번 21일 집회는 대자보Day라고 합니다. 굳이 대자보를 쓰는 방법이랄 것은 없지만 경험상 처음 쓰시는 분들은 어려워하실 것 같아서 한 꼭지를 더 달아봅니다. 


  • 꼭 전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만 할 말이 많으신 분들은 전지 1매 정도 사셔서 매직펜으로 큼직큼직하게 글씨를 쓰시면 금방 채웁니다. 상대적으로 간결하고 적게 쓰실 분들은 흔히 구할 수 있는 A4용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 개인차일지도 모르겠지만 개인적 경험상 길다란 매직펜보다 각진 촉을 가진 뭉툭한 매직펜이 큰글씨를 정갈하게 쓰기 편한 것 같습니다. 긴 매직펜으로 쓰면 큰글씨일수록 굵기가 가늘어져서 가독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 이목을 끌기 위해 중요한 내용에는 색깔펜으로 밑줄을 긋거나 아예 붉은색이나 청색펜으로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 

  • 쓰실 때 미리 노트에 연습을 하고 옮겨 쓰시면 훨씬 수월합니다.

  • 상단에는 제목을 큼지막하게 쓰고, 보기 쉽게 문단을 구분하시면 많은 분들에게 쉽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하나 써서 가보려고 합니다. 전지를 사야 하니 가까운 알파문구 같은 곳을 찾아봐야겠네요. 




다음 촛불집회는 다가오는 토요일인 12월 21일 오후6시 청계광장에서 개최된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집회참여자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청계광장이 그리 넓은 곳이 아닌지라 좀 안타깝네요. 자세한 촛불집회 일정은 국정원사건 시국회의 공식홈페이지인  http://www.anti-nis.net/ 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Cybercat
Music2013. 12. 19. 01:11





2013년은 작년보다 더 복고열풍이 거셌다. 응답하라 시리즈, 밀리터리물 등 과거를 다시 재조명하거나 추억하는 영상들이 인기를 끄는건 어쩌면 그 당시의 것들을 대신할 만한 혁신적인 것들이 나오지 않아서일까. 오죽하면 정치조차도 복고열풍이 돈다고들 하겠는가. 


어쨌거나 한 시대를 풍미했던 디스코가 디지털시대에 들어서 다시 재조명된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게 비단 국내에서만 그런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건 Stayin` Alive Group이란 이들의 영상을 우연히 접하고 나서였다. 


Stayin` Alive Group의 Guy Shelby와 Ralph Benatar는 단지 디스코가 좋아서, 다들 함께 모여 당시에 유행했던 곡들을 메들리로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시작했다고. 이들의 노래와 영상은 최대한 70~80년대의 느낌을 살린 복고영상 그 자체다. 





Stayin' Alive Group - Bee Gees Tribute Medley


뭔가 쇼킹할 정도로 그때 그 느낌을 살린 Stayin` Alive Group의 Bee Gees 헌정메들리


이분들 진심으로 '쩐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가장 최신으로 나온 논스탑디스코. 이 영상이 더 마음에 든다.


조만간에 iTunes를 통해 이들의 메들리곡이 판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지난 13일에는 라이브 쇼도 성공적으로 치뤘다는 소식.






http://www.stayinalivegroup.com/



조만간에 iTunes로 나오면 다운받아서 운동할때 틀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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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Music2013. 12. 18. 07:54




Kenny Dorham - Old Folks


KBS Classic FM 주말새벽프로그램인 황덕호의 재즈수첩 시그널로 사용되고 있는 곡이다. 







Kenny Dorham - Quiet Kenny
Year: 1959
Label: Prestige

Trumpet: Kenny Dorham
Piano: Tommy Flanagan
Bass: Paul Chambers
Drums: Arthur Taylor

In the liner notes of Quiet Kenny, former Downbeat magazine publisher Jack Maher states that trumpeter Kenny Dorham's music is not necessarily the demure, balladic, rapturous jazz one might associate as romantic or tranquil. Cool and understated might be better watchwords for what the ultra-melodic Dorham achieves on this undeniably well crafted set of standards and originals that is close to containing his best work overall during a far too brief career. Surrounded by an excellent rhythm team of the equally sensitive pianist Tommy Flanagan, emerging bassist Paul Chambers, and the always-beneficial drummer Art Taylor, Dorham and his mates are not prone to missteps or overt exaggerations. One of Dorham's all-time best tunes "Lotus Blossom" kicks off the set with its bop to Latin hummable melody, fluid dynamics, and Dorham's immaculate, unpretentious tone. "Old Folks," a classic ballad, is done mid-tempo, while the true "quiet" factor comes into play on interesting version of "My Ideal" where Dorham gingerly squeezes out the slippery wet notes, and on the sad ballad "Alone Together." The rest of the material is done in easygoing, unforced fashion, especially the originals "Blue Friday" and the simple swinger "Blue Spring Shuffle" which is not really a shuffle. Never known as a boisterous or brash player, but also not a troubadour of romanticism -- until he started singing -- Dorham's music is also far from complacent, and this recording established him as a Top Five performer in jazz on his instrument. It comes recommended to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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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ybercat
카테고리 없음2013. 12. 18. 03:59


보시는 분들 배고프시라고 올려본 깐부갈릭치킨.





현재 본 블로그로 배정된 티스토리 초대장이 총 11장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시작해보고 싶으신 분들은 

댓글에 비밀글로 간단한 블로그 운영 목적과 이메일 주소를 달아주시기 바랍니다. 




[예시]


안녕하세요. 아무개입니다.

후라이드치킨식도락전문블로그를 개설하려고 합니다.

e-mail: ilovefriedchickenhellyeah@chickenout.com



형식 잘 지켜주시는 분에 한해 보내드릴려구요.

그냥 이메일만 달랑 쓰시면 미워할꼬얌. (헐)








Posted by Cybercat
정치/사회2013. 12. 18. 02:05



연일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대자보란 것이 워낙에 대학가에서만 향유되던 문화이니만큼 초창기에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만 돌다 끝나겠지 하며 찻잔속 태풍일거란 예측들도 있었던게 사실이다. 그런데 날이 지나면 지날 수록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는 대학문을 넘어 초중고생들로, 더 나아가 사회 전반에 호응을 얻으며 확산되어 가고 있다. '이건 아닌데'하면서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침묵을 지킬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만큼 "결코 안녕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리라. 


다른 한 편으로는 이런 대자보를 통한 발언이 정치선동이다, 학생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하는거냐는 지극히 꼰대스러운 반응들도 줄지어 나오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으로 조직화되지 못하게 된다면 단명할 움직임이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한심한 것은 대자보 문화의 하나인 반박대자보로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의 목소리를 비판하기 보다는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철거하는 등의 사보타주가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혹여나 있더라도 그들의 발언이 부당함을 입증하는 목소리보다 정부여당의 발언을 카피한 것들이 주류기에 반향은 그다지 없을 수 밖에 없다.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가 세상이란 연못에 돌을 던진 후 일어난 파문은 최초로 대자보를 쓴 주현우 학우의 말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임에 분명하다. 주현우 학우는 "시험기간에 일어난 철도노조대량해고사태에 참을 수 없어 취업준비생임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를 쓸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이 주현우 학우의 대자보에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이들에게 호응을 하고 있는걸까. 그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개별단위의 사회참여운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는 이 현상의 배경에는 어떤 것이 있는 걸까.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대자보에 쓰여진 언어가 이제까지 우리가 보고 들어왔던 것들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고려대학교 경영08학번 주현우 학우의 대자보





대자보에 대하여 


 대자보는 지금처럼 인터넷과 SNS라는 정보공유의 시스템이 없었던 과거 시절에 사람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을 하기 위해 사용한 벽보 형식의 매개체다. 개인별로 전달되는 정보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장소의 벽에 고정하여 전달하므로 인력과 자본이 많이 필요없는 가장 효율적인 의견 전달의 수단이었다.


그 양식은 간단하다. 비싼 돈을 주고 대량으로 인쇄를 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대체로 A0사이즈의 전지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논지를 일일이 손으로 써내려갔다. 당연히 손글씨 실력 여부에 따라 가독성이 천차만별이었다. 이후 컴퓨터와 개인용프린터가 공급되고 나서야 전지에 인쇄된 문구를 붙여 게재하는 양식으로 발전되었고 오늘날에 이른다. 


보통 대자보에 적히는 말들은 천차만별이지만 대체로 자신들의 입장과 처지를 정리하고 구호를 외치는 방식이다. 가령 부당하게 해고되었다면 해고된 경위와 과정을 고하고 사측의 부당한 조치를 규탄하고 해결하라는 '외침'으로 마무리 되는게 보통이다.


읽는 이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동참하자는 호소가 주를 이루는 대자보의 언어는 일각에서는 '운동권 언어'로 부르기도 한다. 대자보 문화가 사회참여를 주로하는 운동권에 의해 주로 향유되었기에 이러한 말이 만들어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에 사용된 언어가 단지 '운동권'에 의해서만 사용된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오히려 운동권에 의해 사용된다고 하는 단어들, 가령 '규탄한다', '물러가라', '사퇴하라' 등의 말들은 정치인들에 의해 더욱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대자보의 언어와 내용, 쓰는 주체의 다양성과 이용자의 경제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대자보는 한동안 사람들에게 외면받는 매체가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남의 일보다는 개인사에 치중하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 - 특히 IMF시절 이후로 개인이나 가족 신변 외에는 무관심한 이기주의가 팽배하게 되는 시기를 거치면서 대자보를 비롯한 사회참여의 목소리는 힘을 잃게 된다. 그 위에 사회참여를 억제해야 할 이유가 있는 이해관계자, 단체들은 이들의 메시지가 전달되기 힘들도록 대자보를 붙일 공간을 폐쇄하거나 지속적으로 사보타주를 하고, 목소리를 내는 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는 등 억압의 분위기가 형성된 것도 이에 일조한다. 




'여러분은 안녕들 하십니까': 질문의 위대함 


그런데 "안녕들하십니까"에 쓰여진 대자보는 다르다. 주현우 학우의 대자보는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너는 그래도 괜찮느냐'며 읽는 이에게 화두를 던지며 사회적 차원의 이슈를 개인의 이슈로 전환시켜 주었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 개인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니며 개인의 인간성, 상식 차원에서 생각해볼 때 전혀 옳지 않다는 점을 일깨워 준 것이다. 


이는 과거에 씌여진 대자보들에서는 보기 힘든 것이었다. 과거의 대자보들은 읽는 자들의 생각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말들로 가득했다. 이러이러한 일들이 발생했으니 너도 동참하라는 식이었다. 사회참여가 활발했던 과거였다면, 대자보에 쏟아부을 시간적 여유가 넉넉한 시대였다면 몰랐을까 지금은 굳이 대자보가 붙는 공간에 머무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더더욱 읽는 이로 흥미와 사고의 여지를 주지 않는 글에는 오죽하랴.


하지만 전지 두 장에 쓰여진 언어는 이제까지의 대자보의 언어들과는 차별된 고유한 언어였다. 사회 부조리에 대해 지적을 하는 점은 동일했지만. 문제점을 단순히 규탄하거나 함께 동참해 막아야 한다는 식의 마무리가 아니었다. 어디선가 사람이 죽어가고, 대량해고를 당하고, 사회적 부조리가 만연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침묵'해야만 하는 세대를 향해 과연 '안녕들 하십니까'라며 질문을 던짐으로써 읽는 이들로 생각하게 했다.


생각은 판단을 이끌고 또 대답을 불러 일으킨다. 읽는 이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주현우 학우의 언어는 이제까지 침묵을 지켜왔던 대학 지성인들로 하여금 일제히 '안녕하지 못하다'는 말로 화답하게끔 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지금도 대자보는 계속해서 붙고 있으며 그 영역 또한 비단 학교뿐만이 아니라 사회 곳곳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고백과 회개의 언어



고백과 회개라는 단어를 써서 조금 불편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점은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안녕들하십니까"의 대자보에 대한 답변 대자보들은 모두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며 이제까지 자신들이 어떻게 사회문제에 침묵해왔는지 고백하며 또 다른이들에게 안녕을 묻는 내용들이다. 


이는 기독교의 고백과 회개의 언어와 유사성이 깊다. 자신이 이제까지 저질러왔던 잘못에 대한 자각과 돌이킴을 주제로 하는 회개는 개인이 죄의식을 환기시키는 가운데 이뤄진다. 기독교에서는 성경말씀과 기도를 통해, 불교에서는 선각자들이 던지는 화두를 통해 개별 신도들의 인식을 전환시킨다. 주현우 학우의 대자보 글은 마치 '사회의 회개운동'과도 같다. 사회부조리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괜찮은 척 지냈던 한 사람이 괜찮지 않다고 고백하는 글에 다들 '나도 안녕하지 못하다'라고 함께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은 괜찮은 척 하지 않고 침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대자보에 적어 내려간다. 


고백의 언어는 매우 강력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대자보가 실명으로 게재되는 만큼 신뢰성면에서도 여느 권위자의 글보다도 힘이 있다. 사람들은 주현우 학우의 대자보 이후 게재된 대답하는 대자보들의 내용에 더욱 열광하고 성원을 보내고 있다. 대전에서 올라온 60세 노인의 응원의 글, 82학번 어머니의 미안하다는 글, 학교청소노동자들의 미안하다는 글이 계속해서 게재되고 있다. "안녕들하십니까"의 진정한 힘은 "나는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대답하는 목소리로부터 나오는 것이다. 



 




SNS를 통한 대자보 확산


과거의 대자보 문화와 지금이 다른 점은 바로 인터넷과 SNS를 통한 대자보 내용의 확산이다. 대자보는 정해진 지역의 벽에 일정시간 붙는 양식이므로 시공간적 제약을 받는 매체다. 그러나 인터넷과 SNS를 통해 해당 내용들이 사진으로 찍혀 이용자들에게 거의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있다. 시공간의 제약이 사라진 것이다. 굳이 대자보를 보기 위해 학교를 방문하지 않아도 인터넷이 되는 PC와 모바일기기를 가지고 있다면 어디서든 동일한 내용을 왜곡없이 확인할 수 있다. 최초 고려대학교 정경문에서 시작된 확산의 분위기는 채 며칠도 되지 않아 전국의 학교에서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은 해외 대학의 학생들도 한국의 이러한 움직임에 동참하고 있다. 


가장 혁신적인 부분을 지적하자면 주현우 학생의 대자보가 바이럴하게 퍼지자 그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페이스북에 '안녕들하십니까'라는 페이지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의 행동을 매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과거 학생운동이 하향식으로 조직되고 명령되는 체계였다면 이들의 움직임은 철저히 상향식이었다. 


페이지를 제작한 이들은 결코 페이지에 가입한 이들에게 미주알고주알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다. 자발적인 동참, 수평적 의사결정을 특징으로 하는 이들 모임은 '쓰고 싶은 이들은 씁시다'라는 권유 외에는 이렇다할 지시사항 조차도 없다. 그나마 있었다면 지난 14일 첫 오프라인 모임때 고려대학교에서 시청 밀양주민 故유한숙 어르신 분향소 참배 및 서울역 촛불집회참여까지 참여자를 인도하는 정도였을까. 18일 현재 25만6천여명이 가입한 이들 페이지는 여전히 가입자들의 자발적인 참여만을 동력으로 움직이고 있다. 








새롭게 표현된 저항의식: 익명이 아닌 실명 내걸은 개인들의 자발적 참여


오프라인 모임에 모인 그들은 누구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다. 미리 준비해온 피켓으로 자신의 '안녕하지 못함'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정경문에 모인 사람의 규모는 대략 삼백여명 정도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는 고려대 학생뿐만 아니라 타 대학 학생과 시민들도 함께 참여했다. 학교 깃발 아래 모이던 전통적 학생운동 방식과는 다르게 이 오프라인 모임은 소위 '번개모임'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굳이 주최측이라고 할 것도 없이 삼삼오오 공감하는 개인들이 모여 각자 준비해온 것들로 모임을 진행해나갔던 것이다. 


이들이 다함께 모여 불렀던 건 학생운동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 민중가요가 아니라 인디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졸업"이었다고 한다.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해'라는 후렴구가 반복되는 이 노래는 침묵과 순종을 강요받는 세상에 결코 안녕할 수 없는 우리 세대들의 아픔이 담겨있다. 민중가요의 투쟁의 외침을 통해 깃발 아래 집단속 익명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 때문에 상처받고 아픈 '나'라는 주체의식이 있는 이들이 대중가요를 노래하는 것이다. 이는 엄연히 이전 학생운동세대와 구별되는 새로운 정체성이다. 





나는 서울역 촛불집회 이후 무대 뒷편에서 있었던 "안녕들하십니까"의 마무리 모임에 참여했었는데, 최초 모였던 인원과는 다르게 많아야 40여명 정도의 인원이 함께 하고 있었다. 촛불집회를 마지막으로 자발적으로 모임을 마무리한다는 공지대로 집회가 끝나자 많은 이들이 바로 돌아간 것이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시위에 참여해본 일이 없었던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마무리 모임 내용 자체도 '이후엔 각자 알아서 뒷풀이 하세요'였다. 


이들의 모임은 처음부터 끝까지 개인의 것이었다. 누군가가 조직하고 명령하는대로 따라 움직이는 레밍즈같은 집단이 아니었다. 이날 촛불집회에선 주현우 학우가 대표발언을 했는데, 그가 발언한대로 함께 했던 이들은 주현우 학우의 의견에 동조해서가 아니라 '이런 사회 속에서 전혀 안녕할 수 없어서 나온 개인'들이었다. 안녕할 수 없는 이유도 전부 제각기 달랐다. 이제까지의 저항표출은 일정 규모의 집단성을 통해 이뤄졌다면, "안녕들하십니까"의 모임은 모임이면서도 개인의 개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집단 속에서 조금이라도 다를 수 있는 의견이 묵살되지 않고 그대로 표출될 수 있는 다수 개인의 발언장의 역할을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안녕들하십니까"란 모임이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조직으로 발전될 것이냐는 분석들도 꽤나 보였었는데, 이들의 모임이야 말로 디지털세대들의 새로운 저항표출의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공감'을 매개로 하여 '개인'이 살아있는 느슨한 모임을 통해서도 충분히 사회에 영향력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고 본다. 그리고 그 생명력도 '개인'들이 개인적 동기를 지니고 있는 한 상당히 긴 시간 지속될 수 있다. 굳이 주최자, 리더십이라고 할 사람이 없이 모임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리더이자 주최자이기 때문에 기존 운동집단들보다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안녕들하십니까"의 움직임이 기존의 사회운동과 결합되었을 때 미치는 파장력은 상당하다. "안녕들하십니까"에 동조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다. 그리고 이들 개개인이 생각하는 '문제' 또한 사회영역 전반에 걸쳐있다. 그렇기에 특정 방향성을 지닌 이익집단과는 달리 이들의 소소한 지지는 어느 사회문제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현재 박근혜정부의 철도민영화정책을 저지하기 위한 철도노조의 파업이 대표적인 사례다. 철도노조의 파업은 정부의 지도부 구속결정 등 전방위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그 기운을 잃지 않고 장시간 지속되고 있다. 17일 jTBC9시뉴스 설문조사결과는 52%이상의 참여자들이 철도노조지도부 구속에 대한 부정적 의견과 파업지지의 의견을 내비쳤다.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집단의 이름으로 불려졌지만, 현실에서는 대체로 개인들의 실명으로 게재된 대자보들이 본질이다. 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호소가 아니라 개인의 실명을 내건 개별적인 문제의식의 발현이며 실천이다. 개인의 익명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의견을 개진하는 용기와 지식인으로서의 참여의식은 이들의 대자보 사진과 SNS를 통한 공유로 세상이란 연못에 더욱 큰 파도을 일으킬 것이다. 




진정한 참여민주주의의 시작


나는 이러한 대자보를 통한 사회참여를 매우 긍정적으로 본다. 기존 정치권과 제도를 통해서는 상향식 의견수렴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이들의 질문과 고백의 릴레이는 너무나도 고귀하고 소중하다. 


여대야소상황과 권위주의 시대를 능가하는 박근혜 정부의 통치가 펼쳐진 1년이다. 새누리당과 정부는 자신들의 지지자들만을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정책으로 야기된 부조리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이 모조리 종북으로 몰리는 현실 가운데 함께 싸워줄 야당은 없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활동결과는 결국 새누리당2중대라는 비난을 면치 못할 정도로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부정선거규탄과 공공부문 민영화 반대, 쌍용자동차문제, 밀양과 제주강정문제해결 등등 이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에 민주당은 거의 응답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당내문제와 내년 지방선거에서 현상유지를 해볼까 하는 꼼수만 가득해 보인다. 대통령사퇴발언을 한 장하나 의원에 대한 당내 징계적 처분이 민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의견과 상관없이 이뤄진 민주당의 실정의 대표적 사례다. 다른 한 편 생길거라고 예고만 하고 있는 안철수의 새 정당은 어부지리를 노리는 듯 양비론적 발언만 지속하고 있다. 


결국 시민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정치집단은 사실상 전무한 상황이다. 그런 가운데 "안녕들하십니까"의 외침과 이에 대한 지지는 정치권을 변화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하게 될 것 같다. 이제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정치인들이 하나 둘 용기를 얻고 현정권에 대한 비판과 대안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후보, 전 복지부장관인 유시민 의원, 전 통일부장관 정동영등 대선패배이후 침묵을 지키던 이들이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1년간 박근혜의 반대편에 섰던 48%의 국민들의 목소리가 철저히 억압되는 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여러 방향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더이상 침묵을 지키지 않겠다고, 침묵하며 혼자서 앓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이름없는 개인들의 영향력이 기존 사회운동과 정치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것은 분명하다. 주현우 학우가 촛불집회때 말했던 것처럼 그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사회를 바꾸는 건 시간 문제다. 아무도 돌봐주지 않던 청년들의 아픔을 스스로 돌보기 시작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 기성세대화된 40~60대의 6월혁명세대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 '너희를 아프게 했던 건 우리의 침묵이었다'라고 고백한 한 누리꾼의 말처럼 많은 기성세대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힘을 주고 있다. 


정치는 어려운게 아니다. 정치참여는 더더욱 어려운게 아니다. 선택이 계속되는 우리의 일상생활 자체가 정치이다. 정치가 나쁜 것은 사람들이 정치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권력이 쉽게 상하는 것은 어느 누구도 견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청년의 질문과 수많은 시민의 고백의 대답이 큰 물결을 이루는 지금, 정치는 바른 길로 가고 있다. 





※공감하시는 분들은 SNS공유나 추천해주시면 큰 힘이 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12. 15. 11:43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생각난 것이 있어 자유롭게 적어본다. 


 2013년이 저물어가는 시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의 설교였다. 본문 말씀에는 사무엘상31장의 사울왕 일가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때는 경건하고 겸손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아는 자가 어느 때부터는 교만해져서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 마지막에 강조되었듯 죄보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사울왕이 그랬고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인물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제정일치적 역사가 오늘날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그리 다를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사건들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간의 투쟁의 결과로 본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스펙트럼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 


 성경은 절반은 믿는 자들을 통한 회복의 이야기, 그리고 절반은 믿지 않는 자들의 고난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사랑의 실천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있다. 몇 안되는 믿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이스라엘의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으로 이끈다. 그들의 외침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동일하게 사랑의 실천과 율법의 정의로 돌아온다. 이처럼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실천에 있다. 


 그런데 율법이 말하는 정의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모세5경에 담긴 수많은 율법들은 거룩하게 구별됨을 이야기하고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에 기준이 잡혀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백성, 곧 구원받을 자들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율법들은 어느 누구도 100% 지켜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상 율법에 의해 구원받을 자들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아들인 예수를 통해 율법의 굴레가 아닌 율법의 참 근본정신인 사랑을 통해 구원을 이룬다. 예수가 공생애를 통해 역설하였던 것처럼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율법을 통해 약자를 억압하고 핍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인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에 있다. 


 예수의 재림과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로 돌아와 보자. 오늘날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의 스펙트럼으로 조관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근본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약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돕고 사랑하고 이들의 회복을 위해 외치며 살고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너 믿어, 안그러면 큰일나'를 통해 이뤄지는게 아니다. 누군가가 예수의 돕는 손길, 예수의 외치는 입술이 될 때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은 마음을 돌이켜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나아온다. 모두가 불의를 말하는 곳에서 고독히 정의를 외칠 때 어두운 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은 그곳에서 빛을 발견하고 나아온다. 이것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시각은 믿는 자의 정의를 새롭게 한다. 믿는 자는 세상 가운데서 정의를, 사랑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부르짖는 자이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인 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게 된다. 한국에서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던 시절, 기독교는 희망의 길이자 구원의 길이었다. 전도하는 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그러한가. 


 오늘날 무엇이 정의인지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시대와 환경을 불문하고 분명 그 요소 가운데 약자를 보호하고, 탄압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억압받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회복시켜주는 것이 포함되어있다. 강자의 편에 서고 약자를 도외시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것을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기독교 정신의 기본이다. 바로 예수가 외치고 실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의 한 해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각각의 신앙인들의 한 해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외치는 자의 도리, 사랑을 실천하는 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믿지 않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돌이켜 봐야 할 시기이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12. 14. 06:30

이렇게 잠이 안오는 건 요근래 처음이다. 

해지고 나서 저녁이 다 돼서 마신 아메리카노 탓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억눌렸던 마음이 조금은 해방되는 기쁨을 누린 탓일까.

지금은 클래식라디오 채널의 재즈수첩 재방송을 들으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이 어딘가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함께 미래를 구상하고 전진해나간다는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런 행복감에 젖어 밤을 지새웠던 건 

재수때와 대학1학년때 가 전부였는데

이렇게 이런 새벽이 내게 다시 다가와줘서

정말 기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늙지 않은

청년의 꿈을 지피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아직 이렇다 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지금 품은 이 꿈을 더욱 키워나가자.




Posted by Cybercat
정치/사회2013. 12. 14. 02:57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조금 더 손보아서 올립니다. 사진은 페이스북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에 게재된 성균관대13학번 신민주 학우의 대자보 사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같은 학교를 06년도에 졸업한 선배 이동우입니다. 신민주 학우의 용기있는 대자보 글에 감동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측의 대자보 및 학생활동에 대한 사보타주는 여전한가 봅니다. 현재 학내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며 신민주 학우에게 답신합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97년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오고 학교 전반적 분위기가 보수화 일변도로 흘러가면서 결국 탈운동권 보수총학까지도 들어서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을 침묵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건 비단 세상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6월혁명세대가 정권을 쥐고 나서는 모든게 민주적으로 잘 풀릴거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문인지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 학점과 출세 이외의 것에는 적잖이 무관심해졌고, 덕분에 뭔가를 개선시켜보고자 했던 학생들의 움직임은 시작조차도 못해보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측의 잘못을 지적하며 총학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저 저는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만 하고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나 학우들의 복지문제에 함께 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고작 학교축제에 연예인 불러 다같이 노는 이벤트 위주의 활동들이 새롭고 더 나아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저는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생인데다 작금의 교내 사정을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 보면, 당시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학교가 학우들의 부르짖음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불의가 현저하지만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학우들이 신민주 학우처럼 부르짖고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많은 학우들은 당장에 기말리포트와 기말시험 준비에, 취업준비에 분주한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은 제가 학교 다닐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졸업하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철도파업에 이어진 수천여명의 부당대량해고, 밀양송전탑사건과 주민들의 잇달은 자살, 정부여당에 반대하면 종북인사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각종 사건들, 총체적 관권부정선거같은 불의로운 사건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아이돌의 노래나 춤, 막장드라마나 소비하고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갈 뿐입니다. 학교에서 보고 들었던 문제들에 침묵하고 인기 연예인이 행사로 오는 축제 정도에 만족하던 습성이 사회에서도 똑같이 발현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음을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종종 부당한 일에 입을 다뭅니다. 왜일까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란 생각 때문입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짓밟혀도 지금 당장은 내가 짓밟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내 안위 하나도 지키기 힘들다는 인식때문에 결국은 내 목을 조르게 될 일들을 당하는 친구들의 일에 침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으로 측은지심을 듭니다. 약자를 측은히 여겨 돕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군자의 기본이요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더욱 부유해질 수록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보다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해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법제화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학문은 더욱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건만, 그 학문을 배워도 그걸 학내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취업도 힘든 현실에 학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의에는 침묵하는 방법에 익숙해집니다. 지금 기말시험 기간처럼. 


 불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부역은 바로 침묵입니다. 불의에 대해선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그 침묵은 당장 지금의 나를 안녕하게 만들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궁극적으로 나를 안녕하게 해줄 정의로운 사회를 파괴하고 말겁니다. 그렇게 침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오늘을 보십시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안녕할 수 있겠는지요.


 신민주 학우님. 그리고 성균관대학생 여러분. 또한 이 글을 볼지도 모를 많은 '안녕하지 못한' 시민 여러분. 이런 현실 앞에 저는 결코 안녕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학우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저는 결코 떳떳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진정으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힘냅시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일때, 그리고 행동으로 나설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성균관대98학번 사학과 졸업생

 이동우 올림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3. 11. 27. 21:02



시청앞에 칼바람이 분다
몸을 움츠리고 걸음을 재촉하려니
옆에 덩그러니 잎을 다 떨군 나무가 말한다

어깨를 펴라 더는 움츠리지 말고
지금의 몸서리쳐지는 현실을 눈 똑바로 뜨고 바라보라

나는 나무들이 이 매서운 겨울을 어찌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무 곁에 서서 
또 한 그루의 나무가 되었다

사람들이 나무에 침을 뱉는다
지나가는 개도 오줌을 갈기고
더러는 똥을 누며 욕을 보인다

나는 그게 싫어 뿌리채 뽑혀나갔지만

출렁이는 가지를 회초리 삼아
칼바람을 매질하고 잠재우는 나무는

그 가지속에 움트는 봄을 품고
어깨를 펴고 당당히 겨울을 이겨내고 있었다


-대한문 플라타너스








Posted by Cybercat
Thoughts2013. 11. 24. 14:40

 오늘 예배 시간 설교 중 나이지리아에서 한 목사가 천사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에피소드로 소개되었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한 최후 심판을 연기했으며 즉시 온 세상에 회개의 복음을 전하라는 내용이었다. 담임목사님은 교회의 한 장로님이 카카오톡을 통해서 그 내용을 전달해줬고, 그 내용이 목사님께 큰 놀라움과 상당한 감동을 주었던 것 같다. 설교 내용도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각성에 대한 내용이었다.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의 자세는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 또한 내 신앙생활의 지향점을 계시록적 그리스도인에 포커스를 맞추고 살고 있기에 오늘의 설교는 참 듣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좋았다. 하지만 그 강조를 위한 내용이 뭔가 미심쩍었다. 



사실 같은 내용을 수일 전 페이스북에서 봤었다.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같은 매체를 통해서 많은 이들이 이 내용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내용마다 조금씩 말이 첨가되고 변형되고 있었다.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매체가 간소화되고 간편화되면서 정보의 유통은 대단히 빠르지만 내용상의 정확도는 떨어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꼭 출처를 명기하건만, 이 출처란게 아는 장로님, 아는 목사님, 아는 선교사님, 아는 친구, 믿을만한 내 친구 수준이었다. 사실 교회만큼 도시전설이 쉽게 유통되는 곳도 없다. 적당히 신비주의적이고 믿을만한 내용이면 삽시간에 교회 안에 퍼지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찾아봤다. 나이지리아의 어떤 목사가 천사를 만났으며 그 글을 누구에게 전했는가. 해당 글이 Copy & Paste식으로 전달되고 있기 때문에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를 통해 유통되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파된 것이 확실하다. 게다가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라 했기에 그 정도로 빠르게 전파되려면 인터넷의 힘이 아니면 안될 것이었다. 우선 한국에서 어떻게 이 글이 유통되고 있는지 구글링을 통해 알아봤다. 검색어는 "나이지리아, 목사, 천사의 메시지, 노인, 집사"로 했다. 


가장 먼저 나오는 페이지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한인교회인 필라등대교회의 목사 칼럼이었다. 2013년 11월 11일 글이다. 같은 내용이 그 교회의 집사님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http://lighthousekumc.org/ministry/?p=960)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칼럼(11/10) “천국에서 있었던 일:한 천사의 메세지”

Posted on November 11, 2013 by webmaster

(천국에서 있었던 일: 한 천사의 메시지)


한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글이 너무나 도전이 되어 함께 나눕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때가 진실로 가깝습니다…


지난주 나이지리아를 여행 중이었던 한 목사님이 바람부는 황량한 길을 홀로 걸어가시던 어떤 노인을 차에 태워드렸습니다. 조금 가던 중에 차안에서 그 노인이 말했다고 합니다.


“여보게, 자네는 어젯밤에 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가?” 목사님은 이 노인의 갑작스런 질문에 놀라서 차를 급하게 세우고는 물어보았습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십니까? 천국에 무슨 일이 있었다니요? 어떻게 천국에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아십니까?” 하고 되물었답니다.


그러자 노인이 대답하기를 “지난밤 천국에서는 성부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잔인함과 타락함에 화가 너무 나셔서 천사들에게 심판의 나팔을 불으라고 하셨답니다. 천사들은 일제히 나팔을 들었고,  하나님의 심판의 나팔을 불려고 하는 순간, 그때 성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던 성자 예수님께서 “저의 흘린 피를 기억 하소서”하시며 길이 참으시는 성부 하나님께 간청을 하셨었소. 성부 하나님께서는 참 성도들이 겪고 있는 아픔들과 악한 자들의 악을 더 이상 참으실 수가 없으셨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소…


“내가 그들에게 다시 한 번 마지막 기회를 주겠노라.”…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천사들에게 명하여 말씀하시되 “너희들은 세상으로 내려가 나의 심판의 첩경을 평탄케 하며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웠다 증거하라”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은 자신의 신분이 목사임을 아는 듯한 노인의 말에 놀라운 마음으로 “선생님, 어떻게 이런 것들을 아십니까?”하고 물었답니다.


그러자 그 노인이 대답하기를 “나는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그 천사들 중의 한명이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이 메세지를 전하시오. 낭비할 시간이 없소, 부탁 드리오” 하고 말 하고는 그 노인은 연기처럼 사라졌다고 합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이 이야기는 꾸며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정말 곧 오십니다. 제발 회개하십시오. 간청 드립니다. 이 메세지를 사람들에게 알리십시오. 복사해서 붙이고, 나누고, 전화하고, 메일에 적어 보내고, 텍스트를 남기십시오.


제발 한 영혼이라도 구하십시오!!! 나는 나의 본분을 다했으니, 이제는 여러분이 증인이 되어 이 말씀을 전할 차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깨어 기도하면서 임박한 심판을 알리는 복음의 증인된 사명을 다합시다!




같은 내용의 글을 같은 2013년 11월 11일, egloos의 한 블로거가 내용을 추가해서 올렸다. 이 분은 교회 청년이 지인분에게 받은 메시지라고 하며 괄호로 "호주 브리스번 한인교회에 계시는 김장호 집사님께서 보내주신 메시지"라고 추가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 분은 "방금 신뢰하는 목사님께 받은 문자"라며 같은 내용의 글을 전하고 있다. 이 분은 그 외에 성경에 나와있는 마지막때에 대한 이야기와 복음에 관련된 성경구절들을 게재하고 청년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http://sora07.egloos.com/m/3442806




2013년 11월 14일. 아르헨티나 중앙교회 홈페이지에서 같은 내용의 글이 볼리비아의 전강우 목사를 통해 약간의 첨언과 함게 게재되었다.
http://www.chungang.org.ar/?document_srl=137451&mid=mannam_libertad




2013년 11월 17일. 다음의 한 블로거가 필라등대교회의 칼럼을 Copy&Paste한 글을 게재했다. http://blog.daum.net/yunts/16832111



2013년 11월 8일. 노바스코샤 한인장로교회의 게시판에 서인숙님이 같은 내용의 글을 친분이 있는 선교사님을 통해 받아 게재했다.
http://www.halifaxkpc.ca/main/sub.html?Mode=view&boardID=www18&num=2246&page=4&keyfield=name&key=&bCate=



2013년 11월 8일, 페이스북의 컴파스라고 하는 페이지에서 11일의 이글루스의 글과 같은 내용의 글을 업데이트했다. 김장호 집사로부터 받았다, 신뢰하는 목사님에게 받았다는 말이 여기도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글루스의 유저가 이와 동일한 내용의 글을 카피해서 올린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pages/%EC%BB%B4%ED%8C%8C%EC%8A%A4-compass/184428221695845




2013년 11월 1일, 하나선교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Esther Lee의 글을 공유하기를 통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 바로 Esther Lee의 페이스북 페이지로 이동하여 글을 확인했다. Esther Lee가 업데이트 한 시간은 같은 날이었다. 그런데 이 글부터 글 내용 가운데 단서가 될 만한 내용들이 등장한다.  




Esther Lee는 페이스북 친구 김소연님으로부터 카카오톡을 통해 받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앞선 시기에 카카오톡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바로 그 내용 이전에 계속해서 공유되고 있는 이 이야기의 원출처인듯한 이의 이름이 소개되고 있다. 말 그대로라면 Kofi Okyire Appianing이란 이름을 한 이가 처음으로 이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전했으며 그 시기는 2012년 9월 21일 금요일 새벽 4시 19분의 일이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가지고 다시 구글을 통해 검색했다. 




2012년 10월 20일. 시기가 2013년이 아니라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Benson Alexander라는 구글플러스 사용자가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같은 영문의 글을 게재했다. 그의 글에는 Kofi Okyire Appianing의 이름이 글의 상단에 소개되고 있다. 구글 이메일을 통해 공유되고 있는 양식인 듯 하다. 
https://plus.google.com/115412866933359855828/posts/T9WheWXNdyu





그리고 바로 아래에 구글 그룹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된 글이 등장한다. 2012년 10월 1일의 일이다. 원본의 글이 2012년 9월 21일에 작성된 것이므로 가장 가까운 내용의 글이다. 기대했던대로 포워딩된 이메일 가운데 Kofi Okyire Appianing의 글이 게재되어 있었다. 


----- Forwarded Message -----
From:
 Kofi Okyire Appianing <
kappianing@yahoo.com>
To:
 
Sent:
 Friday, 21 September 2012, 11:19
Subject:
 THE TINE IS NEAR
 

WATCH OUT

THE TIME IS TRUELY NEAR....
A pastor was travelin jst Last week then
he saw an old man n gave him a lift.
 

While they were going the old man said
'my son, do you knw what happened in Heaven last night?
 
The pastor was so terrified and hurriedly parked and asked; 
'Sir, are you sleeping? Abi how did you get the
information about Heaven?
Old man: last night in Heaven God became very angry
wit man and asked the Angels to blow d trumpet. The angels picked up d trumphets and as they were
about to blow it Jesus fell down and begin to plead in
tears and the blood that came out of His hands and body
were very fresh n told God dat His death shouldn't be
in vain. God could not stand d pains of d saint and the
wickedness of the evil ones. So He said "AM GIVING THEM THEIR LAST CHANCE.".
Jesus then turned to the angels and told them to move
down in their numerous numbers to tell the world that
"TH END IS NEAR, JESUS IS COMING VERY SOON".
Man: (sweatin n cryin) sir, how did u knw dis? OLD MAN: I am 1 of the Angels sent 2 Nigeria. Please use
evry medium of communication to send this
message. No time to waste, Please! And the old man
disappeared. Brethren, this story is real, Christ is
coming Soonest. Please REPENT. 

I beg of you...Please pass this message round. 
Copy and paste it, share it, call, email it, text it. 
PLEASE SAVE A SOUL TODAY. 

I Have done my part, 

Its now your turn to spread the Gospel message round. 


반복적인 오타가 보이나 고의적으로 아프리칸 어메리칸들이 발음하는 대로 적은 흔적인 것 같다. 재인용하거나 다시 포워딩할 때 이러한 부분들은 재전송한 이들에 의해 수정되었다. 그러나 'Sir, are you sleeping? Abi how did you get the information about Heaven?'이란 문장에서 Abi란 사람의 이름같은 부분은 삭제되었다. 이 글이 인터넷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제일 오래된 내용의 글이며 인터넷에 공개적으로 유포가 되기 시작한 지점인 듯 하다. 



원본은 찾았다. Kofi Okyire Appianing이란 사람은 페이스북 개인페이지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활동은 2011년 5월 26일이다. 그의 친구들의 프로필을 보면 대체적으로 아프리카 가나 지역의 크리스천들인 것 같다. 

https://www.facebook.com/kofiokyire.appianing 



그렇다면 이 글이 최초로 번역되어 유포된 것은 어디일까. 구글검색창에서 한 페이지를 넘기니 비슷한 시기에 한국어로도 이 글이 공유된 흔적이 있었다. 



2012년 10월 14일. 가장 오래된 글은 놀랍게도 기독교관련 사이트가 아닌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으로 크게 회자되었던 그 사이트에 게재되어 있었다. 이 글 이전에 같은 내용의 글이 번역되어 인터넷에 게재된 것은 없었다. 이 번역자만이 유일하게 아는 누구로부터 받은 글이 아니라 출처를 제시했다. 출처로 게시한 페이지인 END TIMES PROPHECY란 블로그에도 2012년 10월 9일 동일한 내용의 글이 게재되어있으나 ctrl+f로 Nigeria로 검색해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깊숙한데 게재되어 있었다. 

http://www.ilbe.com/index.php?mid=jjal&listStyle=webzine&document_srl=270267473



이 글이 한국어로 유통되기 시작한 곳은 일베저장소였다. 그리고 이 글을 조회한 이들이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해 주변의 기독교인들에게 전하기 시작한 것으로 유추해볼 수 있다. 




글의 원본 내용과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는 글의 내용이 중간에서 바뀐 일 없이 대동소이한 만큼 이 글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주목할 만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난 주에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 한 노인이 나타나 목사의 차에 동승하더니 갑자기 천국에서 일어난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 운전자는 목사였는데 노인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 노인은 자신을 '나이지리아'로 보내진 천사 중 하나'라고 주장하고 연기처럼 사라졌다. 

  • 이 글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 사람들에게 심판이 가까워 왔다고 회개를 촉구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라고 하고 있다. 

  • 메시지 전달의 명분은 영혼 구원이다. 다시말해 이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 Abi란 이름은 이후에 전달되지 않고 있다. 단순한 오타로 간주하여 빼고 전달하고 있다. 



글의 내용의 임박성, 신비성은 차치하고서라도 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요한계시록과 성경 전체에 계시되어있는 마지막 심판에 대해 언급하고 그것이 임박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숱한 자연재해와 불안정한 국제정세, 날이 갈수록 살기 힘들어지는 각박한 세상 등 사람들은 이럴 때일 수록 마지막 때에 대해 주목하게 되는데 이 글이 사람들의 이러한 마음을 촉발 시킨 것 같다. 특이할만한 점은 글의 진위여부와는 상관없이 이 글이 전해주는 메시지, 즉 마지막 심판의 때임을 경고했다는 점 때문인지 수많은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러한 글이나 사례들을 읽을 때 언제나 궁금한 점은 어째서 세상으로 보내진 수많은 천사들 가운데 나이지리아의 노인으로 분한 천사의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글 가운데서는 예수가 세상으로 수많은 천사들을 보내어 마지막 때임을 선포하라고 했는데 다른 곳에서는 이러한 내용이 전달되고 있지 않다. 인터넷이 전세계에 공급된 마당에 나이지리아의 계시만 전달되고 있다는 것은 상당히 미심쩍은 일이다. (설마 이렇게 소식을 전하는 이들 모두가 천사라는 말은 하지않겠지...) 게다가 그 천사가 전했다는 내용의 핵심 틀은 이미 예수가 공생애를 통해 세상에 전한 말씀과 대동소이하다. 예수님 이후 수많은 전도자들이 전세계에 천년이 넘게 전해왔던 복음과 다를게 없다. 



더군다나 그 목사가 누구인지도 불분명하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도 불분명하며 노인의 정체는 더욱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소설같은 이야기를 믿는다. 게다가 이 글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배운 이들, 항상 성경의 자기정합성과 진리성을 주장하는 이들에 의해 진위여부의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전해지고 있다. 



성경의 사복음서에서 전해지는 예수의 행적과 제자들의 신비로운 체험은 적어도 위치와 시간이라도 최대한 알 수 있게끔 기록이 되어 있지만 이 나이지리아의 복음은 그조차도 없다. Kofi Okyire Appianing 글을 쓴 2012년 9월 21일 금요일의 지난 주란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최근의 글이라면, 그리고 시간과 장소를 밝힐 수 있는 상대적으로 근시간대의 내용이라면 더욱 자세한 내용들이 밝혀져 있었어야 했다. 



마지막 때에 대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각성과 회개는 기독교인들에게 필수적인 자기점검장치와도 같다. 최후 심판의 때는 하나님만이 아신다. 회개는 언제나 촉구해야 하는 것이며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기본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이러한 진위여부를 알 수 없는 내용에 의존한 것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그 목사가 등장해서 간증을 하더라도 신뢰한다기 보다 그저 그가 경험했던 내용이 성경에서도 수차례 언급되고 있는 말씀을 방증하는 정도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복음보다도 이 소문이 더 가치를 발하는 듯한 분위기다. 무엇보다 카톨릭도 아닌 개신교측 신도들과 교역자들이 이 나이지리아 천사의 이야기에 흥분하고 믿겨진다는 말을 하는 것은 천사, 성인, 성모숭배를 비판하는 개신교인들 답지 않다. 게다가 한국기독교가 이단으로 규정한 이단단체들 대부분이 이러한 신비주의적 내용들을 통해 변질된 신앙을 신앙인들에게 전하면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은가.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도 많이 나와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기억할 때이다. 



차라리 이 나이지리아 복음보다 글을 읽는 이들에게 오늘 들은 설교의 성경 본문을 전해주고 싶다. 우리 신앙인들이 마지막 때에 준비해야 할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다. 이것이 유일하게 신뢰할 말씀이다. 


무화과나무에서 배울 교훈(마 24:32-35; 눅 21:29-33)


28    "무화과나무에서 비유를 배워라. 그 가지가 연해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안다. 
29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문 앞에 가까이 온 줄을 알아라. 
30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 
31    하늘과 땅은 없어질지라도, 나의 말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 날과 그 때(마 24:36-44)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모르고,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 
33    조심하고, 6)깨어 있어라. 그 때가 언제인지를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34    사정은 여행하는 어떤 사람의 경우와 같은데, 그가 집을 떠날 때에, 자기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서, 각 사람에게 할 일을 맡기고, 문지기에게는 깨어 있으라고 명령한다. 
35    그러므로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저녁녘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무렵일지, 이른 아침녘일지, 너희가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36    주인이 갑자기 와서 너희가 잠자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37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 있어라."

[출처] 대한성서공회 http://www.bskorea.or.kr/infobank/korSearch/korbibReadpage.aspx?version=SAENEW&book=mrk&chap=13&sec=1&cVersion=&fontString=12px&fontSize=1


Posted by Cyberc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