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rsonal Log2013. 12. 15. 11:43

오늘 설교 말씀 중에 생각난 것이 있어 자유롭게 적어본다. 


 2013년이 저물어가는 시기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그리고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내용의 설교였다. 본문 말씀에는 사무엘상31장의 사울왕 일가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때는 경건하고 겸손하며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줄 아는 자가 어느 때부터는 교만해져서 죄를 범하게 된다. 그러나, 설교 마지막에 강조되었듯 죄보다 죄를 회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사울왕이 그랬고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인물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어쩌면 이스라엘의 제정일치적 역사가 오늘날 인간들이 살아가는 시대와 그리 다를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성경의 사건들을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 간의 투쟁의 결과로 본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오늘날에도 동일한 스펙트럼으로 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도구가 생긴다. 


 성경은 절반은 믿는 자들을 통한 회복의 이야기, 그리고 절반은 믿지 않는 자들의 고난의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사랑의 실천으로 믿지 않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 것에 있다. 몇 안되는 믿는 자들의 외치는 소리가 이스라엘의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으로 이끈다. 그들의 외침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동일하게 사랑의 실천과 율법의 정의로 돌아온다. 이처럼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믿는 자들의 실천에 있다. 


 그런데 율법이 말하는 정의란 결국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 자들이 되라는 것이다. 모세5경에 담긴 수많은 율법들은 거룩하게 구별됨을 이야기하고 부정한 것들을 멀리하는 것에 기준이 잡혀있다. 하나님에게 선택받은 백성, 곧 구원받을 자들이 되기 위해서 지켜야 할 율법들은 어느 누구도 100% 지켜낼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것이었다. 


 사실상 율법에 의해 구원받을 자들은 하나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은 율법이 아닌 아들인 예수를 통해 율법의 굴레가 아닌 율법의 참 근본정신인 사랑을 통해 구원을 이룬다. 예수가 공생애를 통해 역설하였던 것처럼 율법의 근본 정신은 사랑의 실천에 있다. 율법을 통해 약자를 억압하고 핍박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인 체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를 믿고 사랑을 실천하며 사는 것에 있다. 


 예수의 재림과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로 돌아와 보자. 오늘날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의 스펙트럼으로 조관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성경이 말하는 근본정신을 실천하고 있는가. 약자들과 핍박받는 자들을 돕고 사랑하고 이들의 회복을 위해 외치며 살고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회복과 구원의 역사는 '너 믿어, 안그러면 큰일나'를 통해 이뤄지는게 아니다. 누군가가 예수의 돕는 손길, 예수의 외치는 입술이 될 때 이뤄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믿지 않는 자들은 마음을 돌이켜 그곳에서 희망을 찾고 나아온다. 모두가 불의를 말하는 곳에서 고독히 정의를 외칠 때 어두운 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던 이들은 그곳에서 빛을 발견하고 나아온다. 이것이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이러한 시각은 믿는 자의 정의를 새롭게 한다. 믿는 자는 세상 가운데서 정의를, 사랑을 현실에서 실천하고 부르짖는 자이다. 교회 안에서만 열심인 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게 된다. 한국에서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던 시절, 기독교는 희망의 길이자 구원의 길이었다. 전도하는 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사랑을 실천하고 전했다. 하지만 지금은 과연 그러한가. 


 오늘날 무엇이 정의인지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다. 그러나 시대와 환경을 불문하고 분명 그 요소 가운데 약자를 보호하고, 탄압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며, 억압받는 자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회복시켜주는 것이 포함되어있다. 강자의 편에 서고 약자를 도외시하는 것은 정의가 아닌 것을 누구든 쉽게 알 수 있다. 이는 기독교 정신의 기본이다. 바로 예수가 외치고 실천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의 한 해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각각의 신앙인들의 한 해의 마무리는 어떠한가. 외치는 자의 도리, 사랑을 실천하는 자의 도리를 지키지 않고 믿지 않는 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다시 한 번 돌이켜 봐야 할 시기이다. 


Posted by Cybercat
Personal Log2013. 12. 14. 06:30

이렇게 잠이 안오는 건 요근래 처음이다. 

해지고 나서 저녁이 다 돼서 마신 아메리카노 탓도 있겠지만

여러모로 억눌렸던 마음이 조금은 해방되는 기쁨을 누린 탓일까.

지금은 클래식라디오 채널의 재즈수첩 재방송을 들으며 새벽을 맞이하고 있다.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같은 마음을 품은 이들이 어딘가에서 같은 소리를 내며

함께 미래를 구상하고 전진해나간다는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이런 행복감에 젖어 밤을 지새웠던 건 

재수때와 대학1학년때 가 전부였는데

이렇게 이런 새벽이 내게 다시 다가와줘서

정말 기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늙지 않은

청년의 꿈을 지피고 있는 나를 바라본다.


아직 이렇다 할 내세울 것도 없지만

지금 품은 이 꿈을 더욱 키워나가자.




Posted by Cybercat
정치/사회2013. 12. 14. 02:57




※페이스북에 올렸던 글을 조금 더 손보아서 올립니다. 사진은 페이스북 "안녕들 하십니까" 페이지에 게재된 성균관대13학번 신민주 학우의 대자보 사진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같은 학교를 06년도에 졸업한 선배 이동우입니다. 신민주 학우의 용기있는 대자보 글에 감동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가슴이 아픕니다. 학교측의 대자보 및 학생활동에 대한 사보타주는 여전한가 봅니다. 현재 학내 분위기가 어떠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며 신민주 학우에게 답신합니다. 저는 안녕하지 못합니다. 


 97년 삼성이 재단으로 들어오고 학교 전반적 분위기가 보수화 일변도로 흘러가면서 결국 탈운동권 보수총학까지도 들어서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을 침묵하고 보낼 수 밖에 없었던 건 비단 세상의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절차적 민주화가 이뤄지고 6월혁명세대가 정권을 쥐고 나서는 모든게 민주적으로 잘 풀릴거라는 낙관주의가 팽배했었던 때였습니다. 


 그때문인지 저를 비롯한 많은 학생들은 학점과 출세 이외의 것에는 적잖이 무관심해졌고, 덕분에 뭔가를 개선시켜보고자 했던 학생들의 움직임은 시작조차도 못해보는 상황이었습니다. 학교측의 잘못을 지적하며 총학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농성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저 저는 잘 해결되리라는 생각만 하고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나 학우들의 복지문제에 함께 소리를 내는 것 보다는 고작 학교축제에 연예인 불러 다같이 노는 이벤트 위주의 활동들이 새롭고 더 나아보였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빠지지는 않을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고 저는 졸업을 했습니다. 


 졸업생인데다 작금의 교내 사정을 잘 모르는 제 입장에서 보면, 당시와 다를 바 없이 여전히 학교가 학우들의 부르짖음에 대응하지 않는 이유는 불의가 현저하지만 침묵할 수 밖에 없는 이들이 많기 때문일거란 생각이 듭니다. 많은 학우들이 신민주 학우처럼 부르짖고 정의를 바로 세우고자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바로 그 많은 학우들은 당장에 기말리포트와 기말시험 준비에, 취업준비에 분주한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정은 제가 학교 다닐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대로 졸업하고 사회에서도 똑같이 행동하게 됩니다.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철도파업에 이어진 수천여명의 부당대량해고, 밀양송전탑사건과 주민들의 잇달은 자살, 정부여당에 반대하면 종북인사로 몰아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각종 사건들, 총체적 관권부정선거같은 불의로운 사건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아이돌의 노래나 춤, 막장드라마나 소비하고 하루를 겨우겨우 살아갈 뿐입니다. 학교에서 보고 들었던 문제들에 침묵하고 인기 연예인이 행사로 오는 축제 정도에 만족하던 습성이 사회에서도 똑같이 발현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저 또한 그렇게 살아왔음을 여러분께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종종 부당한 일에 입을 다뭅니다. 왜일까요. 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장 급한 일이 아니란 생각 때문입니다. 내 옆에 누군가가 짓밟혀도 지금 당장은 내가 짓밟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내 안위 하나도 지키기 힘들다는 인식때문에 결국은 내 목을 조르게 될 일들을 당하는 친구들의 일에 침묵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녀야 할 덕목으로 측은지심을 듭니다. 약자를 측은히 여겨 돕는 마음을 갖추는 것이 군자의 기본이요 덕목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더욱 부유해질 수록 약자에 대한 측은지심보다 이들을 더욱 효과적으로 착취해내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법제화하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방법을 학교에서 배우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우리가 배우는 학문은 더욱 사람을 이롭게 하기 위한 것이건만, 그 학문을 배워도 그걸 학내에서 실천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합니다. 오히려 취업도 힘든 현실에 학내에서 일어나는 작은 불의에는 침묵하는 방법에 익숙해집니다. 지금 기말시험 기간처럼. 


 불의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부역은 바로 침묵입니다. 불의에 대해선 침묵해서는 안됩니다. 그 침묵은 당장 지금의 나를 안녕하게 만들수는 있을겁니다. 하지만 그 침묵은 궁극적으로 나를 안녕하게 해줄 정의로운 사회를 파괴하고 말겁니다. 그렇게 침묵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오늘을 보십시오.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안녕할 수 있겠는지요.


 신민주 학우님. 그리고 성균관대학생 여러분. 또한 이 글을 볼지도 모를 많은 '안녕하지 못한' 시민 여러분. 이런 현실 앞에 저는 결코 안녕할 수 없습니다. 오늘 학우 여러분들이 겪고 있는 현실에 대해 저는 결코 떳떳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여러분들과 함께 진정으로 안녕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힘냅시다. 이런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일때, 그리고 행동으로 나설 때 비로소 새로운 세상이 빛을 발하게 될 것입니다. 




 성균관대98학번 사학과 졸업생

 이동우 올림



Posted by Cybercat